39. 눌(訥)선사가 여산 동림사(東林寺)에 갔던 일
태평주 무호(太平州 蕪湖) 길상사(吉祥寺)의 눌(訥)선사가 처음 여러 곳을 행각하다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이르니, 당시 그곳은 법석이 융성하여 뛰어난 선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에 눌선사는 조각(照覺)선사의 초상화에 찬을 지어 자신을 소개하였다.
새하얀 눈썹 위로 치솟고
골격은 꼿꼿하니
코끼리는 주위를 맴돌고
사자는 으르렁댄다
철우의 기틀을 타고
비로의 도장을 차고는
향로봉에 앉아서
혼자서 모든 것을 누르니
대궐에서 명을 내려도 가지 않았고
백련사에서 맑은 바람을 떨치도다.
雪眉昻藏 犀骨挺峻
象王回旋 獅子奮迅
駕鐵牛機 佩毘盧印
坐斷爐峰 巍巍獨鎭
黃金闕下詔不來 白蓮社裏淸風震
조각선사는 이 시를 보고 기뻐하여 그에게 특별한 예우를 하였다. 눌선사는 후일 원통 수(圓通秀)선사를 시봉하여 마침내 그의 법제자가 되었고 노년에는 원통사의 많은 승려들이 그를 의지한 까닭에 총림에서는 그를 '눌숙부[訥叔]'라 일컬었다. 그가 한번은 이런 게송을 지었다.
산천경개 놀이 삼아 풍월을 읊으며
세상만사 모두 잊어 이 마음 한가롭더니
까닭없이 타파하여 부질없이 시끄러우니
산으로 돌아가는 흰구름을 마주하기 부끄럽네.
嘯月吟風水石間 忘機贏得此心閑
無端打破空狼藉 羞對白雲歸舊山
눌선사는 「선여집(禪餘集)」을 저술했다. 그 가운데에는 경대부들과 옛 선사의 훌륭한 말씀이 실려있으나 총림에서는 이를 비전(秘傳)해 오고 있다.
40. 방자한 행락객, 남강군수를 일깨워주는 글 / 진교 과(眞敎果)선사
여산(廬山) 서현사(棲賢寺)의 진교(眞敎果)선사는 남강 군수(南康郡守)가 손님들과 함께 산에 놀러 왔다가 방자한 행위를 하자 「기객문(欺客文)」을 지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사람이 남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필시 그의 심오한 도덕과 아름다운 언행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한마디 말을 내놓으면 천리 밖의 사람이 감응하여 부지런히 실천하고 하나의 행동을 세우면 백세 후까지도 그를 우러러 잊지 못하는 법이다. 이런 이는 태평성대에소 이름을 숨기고 관청에서도 빛을 감추고 순박한 인간성을 회복하여 하루종일 어리석은 사람처럼 지낸다. 비록 천지가 지극히 크다 하지만 그의 뜻과는 비교할 수 없고 일월이 지극히 밝다하지만 그만큼 통달할 수는 없다. 큰 재물과 높은 벼슬을 마치 털끝처럼 가볍게 버리고 찬란히 빛나는 사업을 천균(千鈞)처럼 보존하여 힘써 닦으며 부지런히 행한다. 가야 할 곳에 가고 들어야 할 바를 들어서 온갖 지혜의 근원을 깨닫고 배울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진실로 우주 밖을 밟고 만사 가운데 비밀히 움직여 마치 빈골짜기에 산울림이 되돌아오듯 세사에 응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내 깊이 사랑하는 바이다.
헛된 명성을 날리고 남다른 옷을 입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사람 위에 있는 자라 하여도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길손이 어떻게 나를 속일 수 있는가? 그는 못하는 짓이 없고 나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거짓말장이 길손이여! 어찌 그리도 지혜가 없는가.
과선사는 「보교편(輔敎編)」에 주석을 썼는데, 홍구보(洪駒父)가 여기에 후서(後序)를 붙이고 그의 초상화에 글을 쓰기도 하였다.
봉우리 앞에 학이 우니
울음소리 하늘에까지 들리고
폭포수 아래서도
생각은 샘처럼 솟구친다
저멀리 바라보면 의연하시나
가까이 마주하면 온화하신 분
쌍검산이 높이 솟고
향로봉에 연기 피어 오르니
이 사람의 그 덕망은
이 산과 함께 영원히 전하리!
鶴鳴峰前 聲聞于天
瀑布之下 思如湧泉
望之毅然 卽之溫然
雙劍屹立 香爐生煙
之人也之德也 與玆山而俱傳
강서종파(江西宗派)중에 가정평(可正平)이란 스님이 있는데 그가 바로 과선사의 제자이다.
41. 진정(眞淨)스님이 보련장주(寶蓮莊主)의 공양에 가면서
진정(眞淨)스님이 보봉사(寶峰寺)의 주지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홍명(洪明)스님과 일조(一祖)스님이 시자실에 함께 있었는데 일조스님이 잠시 휴가를 청하였으나 진정화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상사일(上巳日 : 3월 3일)에 모든 시자를 불러 보련장주(寶蓮莊主)의 공양에 함께 갔었는데 진정화상이 벽 위에 게를 썼다.
원부 2년(1099) 3월 3일
봄 떡에 검은밥을 겸하였네
진정이 불법 믿는 자 만나는 길에
홍명과 일조가 함께 왔네.
元符二年三月三 春餠撮餤桐飯兼
眞淨來看信道者 洪明一祖相隨參
일조스님이 웃음을 감추고 도반에게 말하였다. "알고 보니, 노스님께서 내 이름을 게송에 넣어주려고 휴가를 주지 않았구나."
홍명스님이란 바로 홍각범(洪覺範)이며 일조스님은 바로 초연(超然)선사다. 초연선사는 앙산사(仰山寺)의 동도주(東道主)가 되었고 대혜(大慧), 죽암(竹菴), 심허(心虛), 양진(量珍), 포납(布衲)선사에게도 3월 3일 아침에 달경교(獺徑橋)를 노니면서 보련장(寶蓮莊) 이야기를 하였었다. 후세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옛 사람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42. 자칭 '머뭄없는 늙은이' 경산사 본(本)수좌
경산사의 본(本)수좌는 스스로를 무주수(無住叟)라 하였는데 동여(桐廬) 진거사(陳居士)가 가르침을 구하자 게를 지어 주었다.
참선과 입정이 원래 부처가 아니며
더러움과 미치광이가 마귀 아니네
한마디에 초탈하여 말해낼 수 있으면
동여강 위에 파도가 뒤집히리.
修禪入定元非佛 垢汚佯狂不是魔
一句脫然如道得 桐廬江上逆翻波
대혜(大慧)스님이 이 게송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본수좌가 세상에 나와 신주(信州) 박산사(博山寺)의 주지로 있을 무렵 게를 지어 오거사(烏巨寺)의 행(行)화상에게 보냈다.
오거산 정상에 늙은 호랑이
발톱과 이빨을 칼날에 비하랴
삼구(三衢) 거리에 가만히 앉았으나
포효하는 한소리에 천지가 텅 비도다.
烏巨山頭老大蟲 爪牙何啻利如鋒
等閒坐斷三衢路 哮吼一聲天地空
그가 파양(鄱陽) 천복사(薦福寺)의 주지로 옮겨 갔을 때 처음 주지[開山]인 복호(伏虎)선사를 찬하였다.
사람인데 사람은 없고 범이 있으며
범인데 범은 없고 사람이로구나
악독은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고
'물아(物我)'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그가 사람인 줄 모르고
그가 범인 줄 모른다
다만 도가 있을 뿐이니
사람과 범이 여기서 여여하도다.
人無人而虎也 虎無虎而人也
毒惡無所發乎中 物我無所形乎外
莫知其爲人也 莫知其爲虎也
蓋道之所在而已 人虎於是乎如如也
그는 또한 평소에 송으로 고금의 인연을 풀어 밝힌 것이 무려 30여개나 있다. 그가 입적한 후 시자승이 이를 감추어, 지금은 다만 화정사(華亭寺) 선자(船子)화상 이야기에 대한 송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평생 화정봉에 살면서
안개낀 강물 위에서 비단 고기를 낚았네
구멍난 도롱이와 삿갓에 배 또한 파선이라
이제는 강나루에 아무것도 없구나!
生涯來往華亭上 釣盡煙波獲錦鱗
蓑笠旣穿船亦破 更無一法在江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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