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74. 세 번 묻고 답하기

쪽빛마루 2010. 1. 19. 20:13

74. 세 번 묻고 답하기


제대로만 하면 떡을 찌는데 30분 정도, 길어야 1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거의 하루 종일 불을 땠는데, 떡쌀은 익지 않고 성철스님에게 꾸중만 들은 꼴이다. 은근히 화도 났다.

애꿎은 '떡 잘 하는 아주머니' 에게 항의성 전화를 걸었다. 먼저 자초지종 설명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자꾸만 '그럴 리가 없는데예' 라며 믿기지 않아 한다.

아주머니가 한참 무엇을 생각하더니 "스님, 그럼 물반을 내렸심니꺼?" 라고 물었다. 금시초문이다.

"언지요, 보살님(여신도)이 일러주신 순서에는 물반 내린다는 말이 없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주머니의 답답한 마음이 전화소리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그럼 물반도 내리지 않고 여지껏 불만 땠다는 말씀입니꺼? 쌀가루에 물반 안 내리고는 불을 백년을 때도 떡이 안된다 아임니까."

그즈음에서 나도 화가 났다.

"아니,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았심니꺼?"

시골의 불심(佛心) 깊은 아주머니, 스님의 역정에 대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다.

"스님, 죄송합니더. 떡을 만들라카믄 너무 뻔하게 다 아는 거라서…, 지가 그만 그걸 말씀드리는 걸 잊어뿌렸심더."

알고보니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다.

떡을 만들려면 쌀가루를 빻을 때 방앗간 주인에게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방앗간 주인이 쌀가루에 물을 뿌려준다. 바로 '물반 내린다' 는 것이다. 그래야 떡쌀이 익는다.

스님이 찾아와 아무 말 않고 쌀을 빻아 달라고 하니, 방앗간 주인이 생식(生食) 할려는 줄 알고 물반을 내리지 않고 빻아준 것이었다.

사태의 진상을 파악한 아주머니는 연신 '지송합니데이'를 연발했다. 부랴부랴 응급대책을 물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쌀가루 위에 골고루 물을 뿌리라는 것이다.

물을 부으면서 물방울을 손으로 흩어 골고루 뿌려야 하는데, 그나마 익숙치 않은데다 물을 너무 많이 뿌려버렸다.

다시 불을 때니 금방 김이 오르고 그렇듯 익지 않던 새하얀 쌀가루가 금방 익어버렸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켜켜이 쌓아둔 쌀가루가 코처럼 질퍽한 떡이 되어 엉켜 있었다.

"큰스님이 떡 하는 줄 아는데, 나중에 떡 어떻게 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나?"

우선 걱정부터 됐다. 성철스님은 자신이 시킨 일에 대해 세 번을 꼭 묻곤 했다.

처음에는 "내가 시킨 거, 니 잘 했나?" 라고 묻는다. 대개 처음에는 "예, 시키신대로 잘 했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성철스님은 좀 지나서 다시 불러 묻는다.

"내가 시킨 거, 니 정말 잘 했나?" 그때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없지않나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 "예, 시키신 대로 잘 하기는 했습니다만…." 정도로 끝을 약간 얼버무리게 된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또 성철스님이 불러 "니 참말로 잘 했나?" 하고 물으면, 내가 정말 큰스님 뜻대로 잘 한 건지 못 한 건지 판단이 흐려지고 만다.

그러니 자연히 "시키신대로 하기는 했습니다만…" 하고 영 자신 없는 말투가 되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마지막에 가서 긴가 민가 하게 되면 영락없이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른이 시키는 일에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어찌 하느냐' 는 것이다.

야단 맞기가 겁나 이리저리 둘러대며 횡설수설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더욱 더 불같은 호령이 떨어진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한결같이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큰스님 모시기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런데, 큰스님이 시킨 일은 아니지만 이런 엉터리 떡을 만들었다고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아까운 양식을 버렸다가는 정말 절에서 쫓겨난다.

결론은 하나다. 혼자서 다 먹는 것이다. 다섯 되나 되는, 그것도 질펀하게 흘러내리는 떡을 혼자서 며칠간 먹어치웠다.

그런 곤욕을 치른 이후에는 떡 찌는 것은 확실히 배워 여러 스님들에게 떡을 해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친 김에 약밥을 만드는 것도 배워 가을에 거둔 밤과 대추를 듬뿍 넣어 별식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에도 음식 만들기를 익히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시루떡 사건 같은 곤욕은 치르지 않고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고추장 만들기와 같은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음식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