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104. 깨달음으로 가는 길

쪽빛마루 2010. 1. 27. 11:27

104. 깨달음으로 가는길



깨달음을 얻어가는 수행에도 단계가 있다. 성철 스님은 스스로 체험한듯 깨달음에 다가가는 수행의 단계를 자세히 설명하며 선방 스님들의 정진을 재촉했다. 물론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의 방법은 화두를 정하고 참선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이 말하는 단계 중 비교적 낮은 차원은 동정일여(動靜一如) .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항상 화두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보통 참선한다고 좌복(참선용 긴 방석) 위에 앉아 있을 경우엔 화두를 생각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 움직이다 보면 화두를 까맣게 잊고 지내게 마련이다.

성철 스님은 그런 경우에도 화두가 머리 속에 한결같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음쯤으로 성철 스님이 강조한 단계는 몽중일여(夢中一如) . 꿈 속에서도 화두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경지란 말이다. 다음이 숙면일여(熟眠一如) . 깊은 잠에 빠져 있더라도 화두는 머리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숙면일여는 다른 말로 오매일여(寤寐一如) 라고도 한다.

성철 스님의 육성 법문 중 먼저 깨달음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영혼이 있어 윤회를 거듭합니다. 동시에 무한한 고(苦) 가 따릅니다.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무한한 괴로움이 항상 따라다니는 이것이 이른바 생사고(生死苦)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한한 괴로움을 어떻게 해야 벗어나며 해결할 수가 있는??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 곧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이 현실에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대해탈.대자유의 무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누구든지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발하면 곧 부처가 되므로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불성(佛性) 을 지니고 있기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으며, 그것이 곧 해탈의 세계이지 극락이나 천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성철 스님은 그 같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상황을 영겁불망(永劫不忘) 이라 불렀다.

"일상생활에서 배운 기술이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한번 얻게 되면 영원토록 잊지 않습니다.

현재의 생애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난 내생에서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영겁불망(永劫不忘) 입니다. 대자유에 이르는 길, 곧 영겁불망에 이르는 길 중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참선입니다.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參究.참선을 통한 진리탐구) 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이 안되려야 안될 수가 없습니다. 영겁불망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가능합니다.

숙면일여(熟眠一如) 하면, 곧 잠이 아무리 깊이 들어도 절대 매(昧) ,어둡지 않고 여여불변(如如不變) 하게 되면 그것이 곧 영겁불망입니다."

이같은 깨달음의 결과는 수의왕생(隨意往生) 이다. 즉 윤회에 따라 다시 태어나더라도 스스로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다음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반대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수업수생(隨業受生) , 즉 업(業) 에 따라 다시 태어날 운명이 정해진다. 자신의 자유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성철 스님이 이같이 수의왕생, 영겁불망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던 고승의 예로 자주 인용했던 인물이 바로 중국 당나라의 원택(圓澤) 스님이다.

원택 스님은 스스로 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나겠다고 예고하고 죽은 뒤 예고했던 대로 태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성철 스님은 바로 그 깨달음의 전범이었던 고승의 이름을 나에게 주었다. 당시 나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받았다.

법명을 받고 인사차 들렀던 해인사의 지효 스님이 내 법명을 듣고 "뭐라고 원택이라고"하며 놀라면서 되물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전생이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미뤄 영겁불망에 이르렀던 고승이 내 전생의 주인공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