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108. 색다른 가르침

쪽빛마루 2010. 1. 29. 14:47

108. 색다른 가르침




절집안을 뒤집어 놓은 성철 스님의 법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는 '불공(佛供) '이다. 흔히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고들 하는데, 성철 스님은 그 개념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의 법문 중 불공의 의미에 대한 부분을 옮겨보자.

"부처님이 얘기한 불공은 결국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많은 물자를 당신 앞에 갖다 놓고 예불하고 공을 드리고 하는 것보다, 잠시라도 중생을 도와주고 중생에게 이익되게 하는 것이 몇 천만배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나에게 돈 갖다 놓고 명과 복을 빌려하지 말고, 너희가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른다면 내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생을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뜻입니다."

법문을 하던 성철 스님이 당시 이와 관련돼 들려준 일화가 있다. 6.25전쟁 직전 경북 문경 봉암사에 머물 때도 성철 스님은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하루는 향곡 스님의 청에 따라 부산지역 신도들을 상대로 같은 내용의 법문을 했다.

"불공이란 남을 도와주는 것이지 절에서 명(命) 도 주고 복도 준다고 목탁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절이란 불공 가르치는 곳이지 불공 드리는 곳이 아닙니다. 불공은 절 밖에 나가 남을 돕는 것이지요."

많은 신도들이 감명 깊게 법문을 들었다며 돌아갔다. 문제는 그 직후. 부산.경남 지역 스님들의 모임인 경남 종무원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성철 스님의 법문이 결국은 '절에 돈 갖다 주지 말라는 말인데, 그러면 우리 중들은 모두 굶어 죽으라는 소리냐'는 아우성이었다. 얼마 후 서울 종무원에서도 같은 항의와 함께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는 경고가 전해져왔다. 그렇다고 주장을 굽힐 성철 스님이 아니다.

"언제 죽어도 죽는 건 꼭 같다. 부처님 말씀 전하다 설사 맞아죽는다고 한들 무엇이 원통할까, 그건 영광이지. 천하의 어떤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해도 나는 부처님 말씀 그대로를 전할 뿐 딴소리는 할 수 없으니, 그런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 하시오!"

성철 스님은 해인사 스님들을 상대로 한 법문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중간에서 소개하는 것이지, 내 말이라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승려란 부처님 법을 배워 불공 가르쳐 주는 사람이고, 절은 불공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불공의 대상은 절 밖에 있습니다. 불공 대상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다 불공 대상입니다. 승려들이 목탁 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과 복을 빌어 주는 것이 불공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당시 성철 스님은 불공의 의미와 관련, 기독교의 봉사활동을 자주 비교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기독교 사람들은 참으로 종교인다운 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불교인은 그런 기독교도들을 못따라 갑니다. 불교의 자비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남에게 베푸는 것인데, 참 자비심으로 승려노릇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자비'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승려가 봉사정신이 가장 약할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불교계의 사회적 봉사활동은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반면 기독교계의 각종 활동은 당시에도 상당히 활발했었다. 성철 스님은 기독교계의 모범적인 봉사활동으로 갈멜수도원의 예를 들곤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갈멜수도원은 수도자들이 정월 초하룻날 제비뽑기로 역할을 분담, 양로원.고아원.교도소 등에서 어렵게 생활을하는 사람들을 위해 1년간 매일 기도를 했다고 한다. 수도원의 운영 역시 철저한 자급자족 원칙에 근거, 수녀들이 닭을 치고 과자를 만들어 운영비를 마련했다.

성철 스님은 갈멜수도원의 이같은 기도, 즉 남을 위한 기도를 '기도의 근본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또 먹고 사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하고, 대신 기도는 전부 남을 위해서 하는 삶을 '참 종교인의 자세'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