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

44. 제4편- 2장 자유로 가는 길. 2. 큰 의심

쪽빛마루 2011. 1. 30. 11:15

2. 큰 의심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불교의 근본은 자기개발에 있읍니다.
초월적인 신은 부정합니다.
부처도 믿지 말고 조사도 믿지 말며,
석가도 필요없고 조사도 필요없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곧 자기 자신이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자기개발을 완전히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그 문자만 많이 독송하면 무심삼매를 얻을 수 있는가?
아닙니다.
"널리 배워서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진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옛 사람들도 말하기를
"도의 길은 날로 덜어가고 학문의 길은 날로 더해간다"고 했읍니다.
참으로 깨치는 길은 한 생각 덜어서 자꾸자꾸 덜어나가야 하고
학문을 하려면 자꾸자꾸 배워 나아가야 합니다.
도(道)와 학(學)은 정반대의 처지에 서 있읍니다.
듣고 보고 하는 것은
무심삼매를 성취하는 데에서는 설비상과 같은 그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본 목표인 대도를 성취하여 성불하는 데에서
이론과 문자는 장애물이 되지 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과 언설을 다 버리고 오직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으로써 성불하였지
이론과 문자를 배워서 성불하였다는 소리는 없읍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면 중도(中道)를 깨달았읍니다.
그 깨달음을 얻으려면
선정을 닦아서, 곧, 참선을 해서 무심삼매를 성취해야 됩니다.
무심삼매를 거쳐 진여삼매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물며 망사이 죽 끓듯하는 데에서
어떻게 진여삼매를 성취하여 중도를 증득한 부처님의 경계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면 교(敎)라는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방문입니다.
약처방이란 말입니다.
그것에 의지해서 그대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습니다.

밥 이야기를 천날이고 만날이고 해봐야 배부르지 않듯이,
약처방만을 천날 만날 외어봐야 병은 낫지 않습니다.
약을 직접 먹는 것이 실천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닦는 좌선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친 것이 이 좌선입니다.
지금도 저렇게 좌선하시며 앉아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