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를 바로봅시다』내가 부처가 된때 2

쪽빛마루 2011. 11. 9. 12:17

 

내가 부처가 된때(2)

 

 

그렇게 되면 마음의 눈은 영영 어두워집니다. 캄캄하게 자꾸


더 어두어집니다. 그런 욕심을 버리고 마음 눈을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라는 것, 나라는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한번 생각해 보


십시오, 누구나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자나


깨나 나뿐 아닙니까? 그 생각을 완전히 거꾸로 해서 자나깨


나 남의 생각, 남의 걱정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행


동의 기준을 남을 위해 사는 데에 둡니다. 남 돕는 데에 기


준을 둔단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삼독이 녹아지는 동시에 마음의 눈이 자꾸자꾸 밝


아집니다 그리하여 탐, 진, 치 삼독이 완전히 다 녹아 버리면 눈을


가리고 있던 것이 다 없어져 버리는데 눈이 안 보일 리 있습니까?


탐, 진, 치 삼독이 다 녹아 버리는 데에 가서는 눈이 완전히 뜨여서


저 밝은 광명을 환히 볼 수 있고 과거 무량아승지겁부터 내가 부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대해탈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어떤 것이 불교입니까?" 하고 물으면 이렇게 답합니다.


  "세상과 거꾸로 사는 것이 불교다"


  세상은 전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나를 위해 남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지만, 불교는 '나'라는 것을 완전히 내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사


는 것입니다. 그리니 세상과는 거꾸로 사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렇


게 되면 당장에는 남을 위하다가 내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지만,


설사 남을 위하다가 배가 고파 죽는다고 해도, 남을 위해서 노력한


그것이 근본이 되어서 내 마음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밝아지는 동


시에 무슨 큰 이득이 오느냐 하면 내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라는 것을!


  자기는 굶어 죽더라도 남을 도와주라고 하면 "스님도 참 답답하


시네, 스님부터 한번 굶어 보시지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


지만 70평생을 산다고 해도, 80살을 산다고 해도 잠깐 동안입니다.


설사 100년을 살면서 지구 땅덩어리의 온 재산을 전부 내 살림살이


로 만든다고 해봅시다. 부처님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해서 또


무량아승지겁이 다하도록 온 시방법계를 내 집으로 삼고 내 살림살


이로 삼았는데, 그 많은 살림살이를 어떻게 계산하겠습니까?


  인생 100년 생활이라는 것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하고 잘산다고


해도 미래겁이 다하도록 시방법계, 시방불토에서 무애자재한 그런


대생활을 한 그것을 비교한다면 이것은 티끌 하나도 안 됩니다. 조


그마한 먼지 하나도 안 됩니다. 내용을 보면 10원짜리도 안 됩니다.


  그러나 10원짜리도 안 되는 이 인생을 완전히 포기해서 남을 위


해서만 살고 어떻게든 남을 위해서만 노력합니다. 그러면 저 무량


아승지겁, 억척만겁 전부터 성불해 있는 그 나라에 들어가고 그 나


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10원짜리 나를 희생하여 여러


억천만 원이 넘는 '참나'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괜찮은


장사가 아닙니까 장사를 하려면 큼직한 장사를 해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것은 공연히 10원, 20원 가지고 죽니 사니 칼부림


을 하는 그런 식 아닙니까?


  아주 먼 옛날 부처님께서는 배고픈 호랑이에게 몸을 잡아먹히셨


습니다. 몽뚱이까지 잡아먹히셨으니 말할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배고픈 호랑이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 내용


에는 큰 욕심, 큰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물거품 같은 몸뚱이 하나


를 턱 버리면 그와 동시에 시방법계 큰 불국토에서 미래겁이 다하


도록 자유자재한 대해탈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것도 그런 것입니다. 나중에 크면 임금이


될 것이지만 이것도 가져 봐야 별것 아닙니다. 서 푼 어치의 값도


안 되는 줄 알고 왕위도 헌신짝같이 처버리고 큰 돈벌이를 한 것


아닙니까?


 


 


  근래에 와서 순치황제 같은 사람은 만주에 나와서 수년동안


전쟁을 하여 대청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중국 본토 이외에도


남북만주, 내외몽골, 티베트, 인도차이나에 이르는 대제국


을 건설한 것입니다.그래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눈을 떠


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해탈도를 성취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아


이들 장난도 아니고 10원짜리 가치도 안 되는 것임을 알게된 것입


니다. 그래서 순치황제는 대청제국을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고 그


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금산사라는 절에 가서 다른 것도 아니고 나무하고 아궁이에


불이나 때는 부목이 되었습니다. 대청제국을 건설한 순치황제


같은 사람이 절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나무해 주고 스님네 방에


불이나 때주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공부를 성취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습니다.


  순치황제가 출가할 때 "나는 본시 서방의 걸식며 수도하는 수


도승이었는데, 어찌하여 만승천자로 타락하였는고"하고 탄식하였


습니다. 만승천자의 부귀영화를 가장 큰 타락으로 보고 그 보위를


헌신짝같이 차버린 것입니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욕심이 커서 그렇습니다. 대청제국이란 그것


은 10원짜리도 못 되고, 참으로 눈을 바로 뜨고 보면 시방법계에서


자유자재하게 생활할 터인데 이보다 더 큰 재산이 어디 있겠습니


까? 지나간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습니다.


 


  6.25사변 때 서울대학에서 교수하던 문박사라고 하는 이가 나


를 찾아와서 하는 말입니다.


  "스님네는 어째서 개인주의만 합니까? 부모형제 다 버리고 사회


와 국가도 다 버리고 산중에서 참선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혼


자만 좋으려고 하는 그것이 개인주의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요?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스님네들이 개인주의가 아니고 당


신이 바로 개인주의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는 사회에 살면서 부모형제 돌보고 있는


데, 어째서 제가 개인주의입니까?"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당신은 여태 50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부


모 내 처자 이외에 한번이라도 남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양심대


로 말해보시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순수하게 남을 위해 일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스님네가 부모형제 버리고 떠난 것은 작은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한 것입니다. 내 부모 내 형제 이것은 '작은


가족'이고 이것을 버리고 떠나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모


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내 손발을 묶는, 처


자권속이라고 하는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오직 큰 가족인 일체 중


생을 위해서 사는 것이 불교의 근본입니다. 내 부모 내 처자 이외에


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당신이야말로 철두철미한 개인주


의자 아니오?"


  "스님 해석이 퍽 보편적이십니다"


  "아니야 이것은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고 해인사의 팔만대장


경판에 모두 그렇게 씌어 있어요 '남을 위해서 살아라' 하고 보살


의 육도만행 6바라밀의 처음이 무엇인고 하니 베푸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것, 그것이 바로 보시예요,


팔만대장경 전체가 남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러니 승려가 출가하는 것은 나 혼자 편안하게 좋으려고 그러


는 것이 아니고 더 크고 귀중한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리는 겁니


다. 그래서 결국에는 무소유가 되어 마음의 눈을 뜨고 일체중생을


품안에 안을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뜨려면 반드시 탐내는 마음 이것을 버려야


하는데, 탐욕을 버리려면 '나만을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하는 이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불공


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앞에 갖다 놓고 절하고 복 비는 것이 아니


고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돕는 것이 불공이라고


  부처님께서 [보현행원품]에 아주 간곡하게 말씀하시지 않았습


니까? 당신 앞에 갖다 놓는 것보다도 중생을 잠깐 동안이라도


도와줄 것 같으면 그것이 자기 앞에 갖다 놓는 것보다도 여러 억천


만 배 비교할 수 없는 공덕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결국 마음의 눈을 떠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영원한 큰 살림살이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을 도와


주는 것이 부처님에게 갖다 놓은 것보다 비유할 수 없을 만큼 큰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일본에 '나카야마 미키'라는 여자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굉


장한 부자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사람이 공부를 해서 마음의 눈을


떠버렸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자기 살림살이는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큰살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남편에게 말했


습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당신 마누라였는데 오늘부터는 내가 당신 스승


이오! 내가 깨쳤어! 내가 하나님이니까 내 말을 들으시오"


  "이 사람이 미쳤나? 왜 이러지? 그래, 어떻게 하라는 거요?"


  "우리 살림살이를 전부 다 팝시다. 이것 다 해봐야 얼마나 되나


요 모두 다 남에게 나누어 줍시다. 그러면 결국에는 참으로 큰 돈벌


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큰 돈벌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다 팔아서 모두 남에게 줘버렸습니다. 이제 내


외는 빈손이 되었습니다. 밥은 얻어먹으면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이익이 되는 것, 남에게 좋은 것, 남 돕는 것을 찾아다니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몸으로 일본 역사상 유명한 큰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돈벌이는 크게 한 것입니다. 우선의 조그만 살림살이를 나


눠주고서는.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도 큰 살림살이 한번 해봐야겠다'


이렇게 작정하고 집도 팔고 밭도 팔고 다 팔 사람 있습니까?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 재산 온통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나누어준다면 그렇게만 되면 내가 목탁 가지고 따라다니면


서 그 사람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예불하며 모실 것입니다. 그런 사


람이 있다면.


  설사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못 하더라도 우리의 생활 방침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남을 위하는 이것


이 참으로 나를 위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참으로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해 욕심부리는 것은 결국 나를 죽


이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꾸 노력하면, 참으로 남을 돕는 생활을


할 것 같으면 결국에는 마음의 눈을 떠서 청천백일을 환희 볼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것을 많이 할 것 없이 한 가지라도 남


을 돕는 생활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가 앞으로 바른 길로 서려면 승려도 신도도 모두 생활


방향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느냐 하면 남을 돕는 데로 완전히 돌려


져야 합니다. 승려가 예전같이 산중에 앉아서 됫쌀이나 돈푼이나


가지고 와서 불공해 달라고 하면 그걸 놓고 똑딱거리면서 복 주라


고 빌고 하는 그런 생활을 그대로 계속하다가는 불교는 앞으로 영


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절에 다니는 신도 역시 그렇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전혀 상관


없이 살다가 내 자식은 어디가 조금만 아파도 쌀 한두 되 짊어지고


절에 가서는 "아이고 부처님 우리 자식 얼른 낫게 해주십시오" 하


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참된 부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승려도, 신도도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 발


전이 없습니다. 산중에 갇혀서 결국에는 아주 망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불교 승단에는 승려 전문 대학이 없다는 것


입니다. 마을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마을 사람들도 논을 팔아서라


도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합니다.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 가장 큰 재


산일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승려를 자꾸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데 어떻게 포교하며 또 어떻게 남을 지도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나중에는 법당의 기왓장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들을 교


육시키자' 하는 것이 내 근본생각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종단적인


차원에서 꼭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억천만 겁 전부터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에 살


고 있는데 왜 지금은 캄캄 밤중에서 갈팡질팡하는가?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서 그런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을 뜨는 법은 무엇인가?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해서 깨치든지 아니면 남을 돕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떡장사를 든, 술장사를 하든, 고기장사를 하든 무엇을 하


는 사람이든지 화두를 배워서 마음속으로 화두만 하면 되는 것입니


다 그러니 마음속으로 화두를 하고 행동은 남을 돕는 일을 꾸준히


할 것 같으면 어느 날엔가는 마음 눈이 번갯불같이 번쩍 뜨여서, 그


때에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에 살고 있다는 그 말씀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참으로 인간 세상과 천상의 스승이 되어서 무량대불사


를 미래겁이 다하도록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춤뿐이겠습니까? 큰 잔치가 벌어질 텐데


  그렇게 되도록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