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바로봅시다』계성(戒性)이 본래 청정하다.
계성(戒性)이 본래 청정하다.(1981년 9월, 통도사 합동수계식)
계성이 본래 청정하므로 계상이 항상 무구합니다.
청정무구한 이 무상정계는
대천세계를 부수어 가루를 만들지언정 추호도 파괴하지 못하며,
무변허공(無邊虛空)을 붙잡아 단청을 그릴지언정
찰나도 전지(傳持)할 수 없습니다.
이는 개개가 원만하고 찰찰(刹刹)이 구족하여 연화대 위의
만덕존상이나 무간지옥의 극고중생이
호리(毫釐)도 차이가 없이 절대평등하여 담담적적하고
휘휘황황하니 참으로 신묘불가사의합니다.
이는 사방 제불이 일시에 출현하여
미래겁이 다하도록 설명하려 하여도 설명하지 못하며
다만 대사대활하여 통개하여
심안이 확연철증(廓然徹證)할 뿐입니다.
홀연히 크게 웃고 바라보니 철수(鐵樹)에 홍화(紅花)가 찬란하고
빙산에 맹화가 염염합니다.
이에 부처와 조사는 삼천리 밖에 물러서고
곤충과 미물이 겁외(劫外)의 풍광을 구가합니다.
생사와 열반은 몽중작몽(夢中作夢)이며
정찰(淨刹)과 예토(穢土)는 안리공화(眼裏空華)이니
오직 탕탕무애(蕩蕩無애)한 일대활로에
우유자재(優遊自在)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충천(沖天)의 예기(銳氣)가 충일(充溢)하여 있습니다.
각자 신명을 불고(不顧)하고 용맹정진하여
심안을 활개하여 이 무상정계를 친증(親證)합시다.
계율을 생명보다 더 중하게 지킵시다.
1981년 11월 6일, 해인사종합수계사림 회향식
계율을 생명보다 더 중하게 지킵시다
계율을 지킴은 영원한 자유해탈의 길이요
계율을 파함은 무한한 생사고통의 길입니다.
계율을 지키다가 죽는 것은 참된 삶이요
계율을 파한 삶은 아주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스님들은 영원히 살기 위하여
계율을 굳게 지켜 죽을지언정
계율을 파하고 살려하지 않았습니다.
신라 때 자장스님은 인품이 훌륭하여
나라에서 대신으로 모시려 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임금이 크게 노하여 칼을 보내어 머리를 베어 오라 하였습니다.
자장스님은 기꺼이 목을 내밀어
"나는 계율을 지키며 하루를 살다 죽을지언정
계율을 파하고 백년 동안 살지 않겠노라"고 말하므로
임금도 탄복하여 크게 존경하였습니다.
자장스님은 중노릇을 잘하여 가장 큰스님이 되어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만고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영원한 해탈을 성취해 무수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계율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