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바로봅시다』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 4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 4
★ 사람은 한 번은 죽습니다. 많은 생물 가운데서 유달리 인간만이 자기가 언
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모든 종교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스님의 생사관(生死觀)을 듣고
싶습니다.
"생사란 모를 때는 생사입니다. 눈을 감고 나면 캄캄하듯이 하지
만 알고 보면, 눈을 뜨면 광명입니다.
생사라 하지만 본래 생사란 없습니다. 생사 이대로가 열반이고,
이대로가 해탈입니다. 일체 만법이 해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윤회
를 이야기하는데 윤회라는 것도 눈감고 하는 소리입니다. 사실 눈
을 뜨고 보면 자유만 있을 뿐이지 윤회는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몸
을 받고 또 받고 하여 이어지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윤회라고
하는데 아는 사람이 볼 때는 그것은 모두 자유다. 그 말입니다.
대자유! 눈을 뜨고 볼 때는. 그래서 생사가 곧 해탈이고 생사 이
대로가 열반입니다. '생사 곧 해탈'이라고 하겠지요. 생사란 본래 없
습니다. 현실을 바로만 보면, 마음의 눈만 뜨면 지상이 극락입니다.
이 현실 그대로가!"
★ 가령 친족을 버리고 이 육신을 버릴 때 어떤 각오로 임해야 할까요. 더 쉬운
말씀으로 풀어 주십시요
"혹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 생명 자체를 사람에 비유하면
이 육신은 옷이지요. 옷이 떨어져서 벗었다 하여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지요. 70, 80년이 되어서 옷이 다 떨어지면 딴 옷을 입게 됩니
다. 옷을 아무리 바꿔 입는다 해도 사람은 본래 사람 그대로이니 옷
을따라갈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옷을 볼 필요도 없고, 옷이 떨어
져서 아무리 바꿔 입는다 해도 하나 아까울 것 없고, 평생 입은 옷
이니 옷이 오래되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바꿔 입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닙니까. 육신을 옷에 비하면 결국 영과 육을 구분해 보는 것이 아
닌가 이렇게 혹 생각할지 모르나, 알고 보면 옷도 또한 절대이니 분
리할 것 없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옷을 갈아
입는다 해도 자유한 생활, 해탈이라는 것은 변동이 없습니다. 사람
은 항상 그 사람이지."
★ 스님께서 다음 생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요
"사실 '다음 생'이란 본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옷을 가지고
그 한계성을 잡아서 옷이 다 떨어지고 새 옷을 갈아입을 그때를 이
다음 생이라 하는데, 그러나 그 사람 자체에서 볼 때는 옷 떨어졌다
고 이 다음 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본시 과거도 현재도 없고 미래
도 없고, 항상 그 사람은 그 사람일뿐이지요. 내가 늘 생각하는 것
은 가장 빈천한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노력을 해서 어떻게 하면 모
든 상대, 무정물(無情物)까지도 부처님같이 받들고 부처님같이 모실
수 있나 하는 이것이 세세생생(世世生生)의 원이고, 또 그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스님께서는 현재의 이 생활에 만족하시는지요
"대궐 속에 있는 사람이 어디로 가려 하겠소."
★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다가옵니다. 새해를 맞으며 이 풍진 세상 살아가는
데 길잡이가 될 시원한 법문을 들려주십시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볼 때는 전생도 없고 내생도 없고, 항상 금
생뿐입니다. 새해라는 것도 달력을 만들어 놓고 그것 바뀌는 것일
뿐, 새해 구해 구별할 것 없이 중생이 본래 부처다, 우리가 본래 광
명 속에 산다, 광명 속에 살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 이대로가 광명입
니다. 그런 좋은 광명을 눈감고 못 보며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둡다, 어둡다' 하지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눈을 바로 떠라, 마음의 눈을 밝게 뜨자, 그리하여 일체 모든 상대
세계가 절대 세계 아닌 곳이 없으니 미래겁이 다하도록 모든 부처
님을 모시고 받들고 섬기자, 이 말만 하고 싶습니다.
눈을 뜨고 보면 우리 모든 존재가 광명 세계 속에 살고 또 자체
가 광명인데, 이것을 우리 불교에서는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 합니
다. 그 본지풍광을 바로 보고 바로 알아서 모든 상대를 부처님으로,
부모로, 스승으로 모시고 섬기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극락 세계를 딴 데 가서 구할 것 없습니다. 현실 이대로
가 절대 아니냐 말입니다. 근본요는 어떻게 하든지 하루바삐 이 영
원하고 무한한 절대 광명에서 마음 눈을 뜨고 광명을 한시바삐 보
자 이것입니다. 그러면 본시 마음의 병이 있는가? 이것을 한번 생각
해 봐야 되는데, 본시 마음에는 병이 없습니다. 아까도 명경 이야기
를 했지만, 본시 명경은 환하게 온 천지 모든 것을 다 비춥니다. 그
런 거울에 먼지가 앉으면 아무것도 비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
지입니다. '마음의 눈'이라고 하니 무슨 마음을 새로 만들고 새 눈
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본래 눈을 되찾자, 이것입니다. 거울의 먼
지를 닦으면 본래 거울 그대로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
떻게 하면 마음 거울에 낀 때를 닦아내고 본 마음을 찾을 수 있나?
제일 빠른 것은 참선을 해서 화두를 바로 깨치면, 그때는 거울에
있는 일체 때가 다 벗겨져 버립니다. 본 거울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광명을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엇이냐 하면, 이 거울에 묻은 때는 욕심 때문에
묻어 있는 것인가 욕심을 버리자 이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
은 무엇이냐 하면 남을 돕는다는 말입니다. 자꾸 남을 돕는 생활을
하면 차차로 업이 녹아서 없어집니다. 욕심이 다 없어져 버리면 마
음거울에 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온 천지광명을 비출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행복한 것은 천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가 본시 천당에 살고 있고, 본시 극락에 살고 있고, 본시 해탈한 절
대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나쁜 것인가, 흙덩이인가, 똥덩
어리인가 착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전체가 다 진금(眞金)입니다.
본시 순금인 줄만 알아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만 알아도 얼마나
행복하느냐 말입니다. 천하부귀를 다 누린다 해도 내가 본시 진금
인 줄 아는 이 소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근본 가치
는 본시 이대로가 절대라는 것, 광명이라는 것, 이것을 알았으니 욕
심을 버리고 남을 돕자 이것입니다."
★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더욱더 귀가 밝고 눈이 밝아져 찬란한 광명 속에서
본지풍광을 드러내며 날마다 좋은 날 이루기를 빌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스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