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6. 약산, 칼을 버리다
[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6. 약산, 칼을 버리다
주워들은 성현 말씀 보검인양 쓰는 건 폭력
옛 선사는 환부를 도려낸 의사
교만한 자에겐 백정의 칼일 뿐
앵무새 입 닫고 가슴을 열어야
평안의 싹이라도 틔울수 있어
|
지혜는 칼과 같다. 칼은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위험한 도구이다.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 손에 쥐어지면 치료의 도구가 되고, 백정 손에 쥐어지면 살상의 도구가 되며, 철부지 손에 쥐어지면 자해의 도구가 된다. 지혜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지혜의 가치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벽암록’에 다음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유엄(惟儼)이 스승 석두의 회상을 떠나 호남성 예주 약산(藥山)에 머물 때 일이다. 화상이 하루는 경을 보고 있었다. 마침 방 앞을 지나던 백암(栢巖)이 그 모습을 보고는 불쑥 안으로 들어와 비웃었다.
“화상, 원숭이 짓 그만하시지요.”
아득한 과거에 500마리 원숭이가 아라한에게 공양을 올리려고 강에 비친 달을 건지다 모조리 빠져죽었다는 이야기가 ‘본생담’에 나온다. 이에 착안하여 대승에서는 실상(實相)의 그림자에 불과한 언어와 문자에 집착하는 수행자들을 흔히 원숭이에 빗대곤 하였다. 스승을 문자나 탐하는 어리석은 수행자라고 면전에서 비판할 정도니, 백암은 꽤나 기개가 충천하고 언변에도 능한 사람이었나 보다. 시선을 돌린 약산은 보던 경을 덮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몇 시쯤 되었는가?”
“정오입니다.”
약산이 고개를 숙이며 혀를 찼다.
“아직도 저런 티가 남았다니……”
발끈한 백암은 스승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청에 날을 세웠다.
“저는 없다는 것마저 없습니다.”
무언가 ‘있다’고 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무언가 ‘없다’고 하면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백암은 ‘없다는 것마저 없다’고 선언하였으니, 유와 무를 아득히 초월해 꽤 그럴싸한 경지를 맛본 듯도 하다. 허나 약산은 도리어 얼굴을 찡그렸다.
“넌 차~암 똑똑하구나.”
스승의 방으로 쳐들어와 시비까지 걸었는데, 그냥 물러설 백암이 아니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화상의 높으신 뜻은 어떻습니까?”
스승의 턱밑까지 고개를 들이민 격이다. 성정이 급한 스승이었다면 주먹이 날아갔을 게다. 허나 약산은 뒤로 비스듬히 몸을 빼며 빙긋이 웃었다.
“나는 절름발이, 곰배팔이에 백 가지 추태, 천 가지 옹졸함을 지니고
그저 이렇게 지낸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맞닥뜨려 스승에게마저 양보하지 않은 용기는 가상하지만, 백암은 모른다. 나름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지혜의 칼을 뽑아 한껏 기량을 드러냈지만, 백암은 모른다. 스승과의 한판 승부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지만, 백암은 모른다. 무엇을 모를까?
오랜 세월 연마한 자신의 지혜가 붓다의 지혜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을 백암은 모른다. 게다가 상대는 석두의 도끼질에 지혜를 담아둘 창고가 박살나고, 창고지기마저 혼비백산 자취를 감춘 약산이었다. 약산에겐 지켜야 할 ‘나’도, 이겨야 할 ‘너’도, 승부를 겨룰 ‘지혜의 칼’마저도 없다. 그런 약산에겐 하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다는 사실을 백암은 모른다.
백암만 모를까? 나는 몰랐다. 그간 붓다의 가르침을 올바로 배워 널리 전해보겠노라고 긴 시간 애를 썼다. 붓다의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 생애를 걸겠노라고 간간이 다짐도 했었다. 돌아보니, 그 결기와 끈기엔 제법 가상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몰랐다.
붓다는 골수까지 염증이 퍼진 환자를 연민해 노련한 솜씨로 환부를 제거하고, 새살이 돋게 하고, 환자 스스로 평안을 회복하도록 도운 훌륭한 의사였다는 걸 말이다. 붓다가 전한 지혜는 오로지 탐욕과 분노와 무지, 그로 인해 야기되는 번민과 고통을 잘라내는 용도로만 사용된 칼이라는 걸 말이다.
해서 치기와 교만을 다스릴 새도 없이 몇 마디 주워들은 성현의 말씀을 보검인양 차고 다니며 승부를 겨루고 우열을 다투었다. 붓다의 심장이 얼마나 따뜻한지, 달마의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지 느낄 새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멀쩡한 가슴에 상처를 내고, 평안의 땅은커녕 걸핏하면 갈등과 투쟁의 늪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내가 지혜랍시고 내세웠던 건 사실 폭력이었다.
성현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아무리 정확하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파한들 그건 스스로를 망치고 타인을 파괴하는 백정의 칼일 뿐이다.
붓다께서는 나와 같은 이들을 두고 ‘몽둥이를 든 자’라 하셨고, 번뇌의 화살이 심장에 박혀 신음하는 자라 하셨고, 말라가는 웅덩이에서 파닥거리며 공포에 떠는 물고기와 같다고 하셨다. 붓다의 가르침을 30년이나 배우고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숫타니파타’에서 붓다는 마간디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것을 주장한다고 정한 것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온갖 사물에 대한 집착을 집착이라고 분명히 알고,
온갖 편견에서 과오를 보아 고집하지 않으며,
성찰로써 마음의 평안을 보는 자이다.”
붓다는 마음의 평안을 가르친 분이다. 약산이 “곰보 째보에 온갖 추태 다부리며 그냥 이렇게 산다”며 빙그레 웃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붓다의 평안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붓다와 약산은 남보다 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 나려고 기를 쓴 사람이 아니다. 그 길에 평안은 없다.
붓다와 약산은 잘나고 못난 구석이 물거품처럼 쉽게 부서지고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다. 이것이 참 지혜다. 그래서 비교하고 겨누어 자신을 괴롭히고 남을 괴롭히던 짓을 멈춘 사람이다. 이것이 참 수행이다.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수행해야 비로소 평안의 땅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약산의 평안을 훗날 천동 정각(天童正覺)이 멋들어지게 노래하였다.
쩔뚝쩔뚝 질~질~
남루한 행색에 봉두난발
잘난 구석 하나 없고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침묵하네,
스스로 고향땅 편하단 걸 알고 당당하네,
누가 배불뚝이 바보라 하건 말건
온 법계를 몽땅 삶아 밥을 지어서는
콧물 질질 흘려가며 배터지게 먹는구나.
똑똑하면 교만하기 쉽고, 말 잘하면 들뜨기 쉽고, 잘나면 싸우기 쉽다. 그런 사람은 쉽게 만족할 줄 모르고, 남의 말에 귀기우릴 줄 모르고, 모든 생명체를 존중할 줄 모른다. 그는 살벌한 싸움판의 고독한 승자는 될 수 있어도 시골장터의 어우러진 흥타령은 끝내 부를 수 없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이들이 도리어 붓다와 약산의 미소를 쉽게 품을 수 있다.
신경림 선생도 ‘파장(罷場)’이란 시에서 노래하지 않았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입을 닫고, 가슴을 열어야 하리라.
평안의 열매는 언감생심이다.
그래야 평안의 씨앗이라도 싹틀 수 있으니까.
[출처 : 법보신문 2012.02.21]
☞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목차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