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 강설

[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15. 덕산, 목을 내놓다

쪽빛마루 2014. 2. 17. 05:27

 

[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15. 덕산, 목을 내놓다.
꿈같고 허깨비같은 사소함에 목매지 마라

 

 

헛된 선객들에 몽둥이 들던 덕산
치기가득 학인엔 목 내밀고 웃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눈 깜빡할 새 도망쳐버리는 봄날을 놓치기 싫어 아름드리 벚나무가 늘어선 직지사로 나섰다. 훈훈한 바람에 날리는 새하얀 눈발과 개울가에 수북이 쌓인 꽃잎이 가히 장관이었다. 곱게 단장하고 꽃놀이 나선 할머니들은 연신 깔깔대느라 바쁘고, 막걸리 한 사발 걸쳤을 영감들은 흥타령이 늘어졌다. 흐뭇한 웃음을 베어 물고 그 꽁무니를 따라 거닐다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간만에 친구를 만났으니, 꽃놀이도 뒷전이다. 찻집으로 찾아든 둘이는 살가운 친구사이를 확인하는 절차인양 사돈에 팔촌까지 들먹이며 서로의 안무를 꼬치꼬치 캐묻고, 미주알고주알 신상을 털어놓았다. 그러다 친구가 뒷목을 잡고 말했다. “요즘 목 디스크로 고생해. 거북이목 증후군인가, 뭐 그런 거 있잖아.”


간만에 농 받아줄 친구가 생겼다 싶어 한마디 던졌다. “뭐 그렇게 목이 빠져라 보고 다니다가 병까지 얻었냐?”
다행히도 친구는 너털웃음으로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러게, 살다보니 이일저일 목맬 일이 많네.”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말이다. 늙어가는 부모님에, 커가는 아이들, 써야할 돈은 점점 많아지는데 벌이는 늘 시원찮고, 직장이며 가정에서 이 눈치 저 눈치에 목이 늘어지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게다. 뒷맛이 씁쓸했다. 이럴 땐 맞장구가 제격이다.


“자식이, 엄살은. 마, 요즘 개장수에게 끌려가는 똥개 신세 아닌 놈이 누가 있냐?”


그렇게 화려한 봄날을 가슴 아파하며 둘이서 흐드러지게 한나절을 보냈다.


‘경덕전등록’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촛불은 인연 따라 생겼다 인연 따라 사라지는 법이다. 그 촛불이 항상 타오르리라 생각하고,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촛불은 어둔 밤에나 유용한 것이다. 그 촛불을 대낮에 들고 다니며 “내가 가진 이 촛불 좀 보세요, 부럽죠”라고 떠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용담 스님 덕분에 자신의 지혜가 촛불과 같음을 깨달은 선감은 한껏 머리를 낮추고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천하 선사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날, 선감은 보물처럼 짊어지고 다니던 자신의 주석서를 법당 앞에서 태워버렸다.


“현묘한 변론이 끝없다 해도

드넓은 허공에 날리는 터럭 하나요,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몽땅 갖춘다 해도

드넓은 바다에 던져진 한 방울 물이구나.”
 

밑바닥 깔린 집착까지 털어낼 때
세상사에 끄달리지 않고 여여해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선감은 위산 영우(潙山靈祐)선사를 참방하였고, 다시 30년을 한조각 구름처럼 떠돌다 깃들었다. 그러다 당나라 무종(武宗) 때 법난(法難)을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에서 숨어살았고, 선종(宣宗)이 즉위한 대중(大中) 초에 무릉(武陵) 태수 설정망(薛廷望)의 초청으로 덕산정사(德山精舍)에 주석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선가의 영웅 덕산 선감(德山宣鑑, 782~865)선사이다.


호방한 성품에 예절과 격식 따윌 아랑곳하지 않은 덕산은 학인을 제접할 때도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진실하고 간절했던 물음도 세월 지나 돌아보면 코웃음이 절로 나오는 법이다. 헌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로 자신을 치장하고 우열을 겨루려 덤비는 짓이겠는가. 덕산 스님은 그런 이들에겐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곤 했었다. 허나 범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룻강아지도 있는 법이다. 용아 거둔(龍牙居遁)이 그런 자였다. 덕산을 찾아온 용아는 당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학인이 막야검(鏌鎁劍)을 들고 와서 스님의 목을 베려 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덕산은 목을 쭉 내밀었다.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덕산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이 없었다. 그 앞에서는 내로라하던 선객도 입도 떼기 전에 터지기 일쑤였다. 그런 덕산을 벙어리로 만들고 몽둥이에 손도 못 대게 하였으니, 용아는 기세가 등등했다. 해서 가는 곳마다 덕산을 꺾었다며 자랑이 늘어졌다. 그 자랑은 동산 양개(洞山良价)선사 회상에 와서도 그치질 않았다. 소문을 들은 동산은 용아를 불러 물었다.


“자네가 덕산 스님의 목을 베었다지?”
“네.”
“그래, 덕산 스님은 뭐라 하시던가?”
“덕산 스님은 아무 말씀도 못하셨습니다.”


용아의 당돌함에 동산 스님은 한숨까지 내쉬었다.
“말이 없었다는 소리는 그만두고, 덕산 스님의 떨어진 머리나 노승에게 가져와 봐라.”


동산의 깨우침에 허물을 뉘우친 용아는 덕산 스님이 계신 곳을 향해 절을 올리며 크게 참회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 소식을 전해들은 덕산은 콧방귀를 꼈다.
“동산 노인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아, 이놈이 죽은 지가 언젠데 다시 살려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


과연, 천하의 덕산이다.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냐”는 한마디에 이것저것 따져볼 것도 없이 목을 쭉 내밀었으니, 밑바닥에 깔린 집착까지 몽탕 털어낸 자가 아니고선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처사다. 한 회상을 이끄는 선지식을 새파랗게 젊은 놈이 별것 아니라며 떠들고 다녀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동산이 대신 설복해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도 쓸데없는 짓한다며 콧방귀를 꼈으니, 이익·손해·비방·찬양·칭찬·꾸짖음·괴로움·즐거움의 팔풍(八風)에 나부끼지 않는 쇠말뚝이 아니고선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처사다.


용담의 입김 한번에 “물질적인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일체는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말이 아니라 사실로 확인하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달은 덕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용담의 입김 한번에 “이 세상엔 본래 나도 없고, 나의 것도 없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깨닫고 아는 자마저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대낮에 들고 다니던 촛불을 끈 덕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배운 자라면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하리라. 희대의 천재라 칭찬받았던 구마라집(鳩摩羅什)의 제자 승조(僧肇)도 서른 살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노래하지 않았던가.


흙 물 불 바람/ 이 몸에 본래 주인은 없고/
육체와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의식/
나라고 여겼지만 본래 공한 것/
시퍼런 칼날 아래/ 목을 쭉 내미니/
휘두르게/ 봄바람을 베듯이.


이것저것 이일저일 목매고 살아가며, 이렇게 되면 어쩌나 저렇게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를 면치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또 숙여질 뿐이다. 떠도는 험담 한마디에도 발끈하는 심사를 부끄러워하며, 그저 목을 매지 않고 목을 내놓고 살아갈 날을 고대하고 고대할 뿐이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출처 : 법보신문 201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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