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 강설

[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20. 위산, 꿈 풀이를 하다

쪽빛마루 2014. 2. 17. 05:30

[성재헌의 ‘선사, 애물단지를 깨다’]


 

20. 위산, 꿈 풀이를 하다.
꿈 붙들고 왈가왈부는 모두 헛 소리일 뿐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뒷집 할매에게 게으름뱅이라고 통박을 먹었다. 할매가 만만치 않은 수다쟁이니 조만간에 이 소문은 온 동네로 퍼지지 싶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만날 집에서 뭘 하는지 골목에 그림자도 비치질 않고, 간간이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와도 얼굴도 내밀지 않고, 아저씨는 어디 갔냐고 물으면 아내가 늘 하는 소리는 “자 예~~”이고, 어쩌다 오후에 예리한 눈길에 포착되는 모습은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이니, 게으름뱅이라 혀를 찰만도 하다.


“아이고 할매, 저 밤새도록 일하다 날이 훤해야 잠들어요.”하고 변명을 할까 싶다가, 부엉이노릇이 자랑인가 싶어 그냥 멋쩍게 웃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새벽에 잠이 깨었다. 상큼한 새벽공기로 남은 졸음 털며 툇마루에 앉았다. 대문을 타고 오른 인동초 향기가 마당에 그득했다. 간만에 바른생활사나이로 돌아오고 오월의 상큼한 새벽공기까지 맛보았으니 이만하면 가슴이 뿌듯할 만도 한데…, 머리가 어수선했다. 간밤 꿈자리 탓이다.
 

위산영우 선사 꿈 해몽 부탁에
앙산, 물대야 들고와 얼굴 씻겨


꿈속에서도 월요일이었다.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았을 때였다. 갑자기 컴퓨터 옆에 놓인 손바닥만 한 달력이 대문짝만하게 눈에 들어왔다. 월요일마다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동그라미를 왜 그려 놓았을까, 그것도 빨간색으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차 싶었다.


그랬다, 월요일마다 강의가 있었다. 그것도 명문이라는 Y대였고, 선배가 특별히 알선한 강좌였다. 그 강의를 2주나 빼먹고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치밀하게 일상을 경영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이다. 강의시간은 1시부터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2주 동안의 무성의에 다시 1주의 불성실, 면목이 없다.


그래도 총알택시를 타고가면 최소한 의무는 이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웬걸. 거울을 보니 추리닝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머리는 산발이지 않은가. ‘이 꼬락서니는 또 뭐야.’ 옷을 갈아입고 세수에 면도라도 하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다.


집으로 돌아와 씩씩거리며 추리닝을 벗는데, 이건 또 뭔가? 추리닝 윗도리 주머니가 불룩했다. 손을 쑥 집어넣어보니 시퍼런 만 원짜리가 한 움큼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왼쪽 주머니에도 돈이 한 다발이다. ‘어, 여기도 있네.’ 이번엔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동전이 구리가 아닌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이었다.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그 바쁘고, 어수선하고, 불쾌하고, 화가 치민 순간에도 뜻밖의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입이 찢어졌다. 그렇게 숨은 돈을 찾아 추리닝을 뒤적거리다 잠이 깨었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툇마루에 앉아 꿈 해몽에 돌입했다. 꿈이란 억압된 욕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과거경험을 새롭게 디자인한 그림이라 하지 않던가. 꿈속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다시 쪼개 요리 조리 재조립을 시작했다.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몇 년을 설렁설렁 지내다가 매주 닥치는 강의와 원고에 스트레스가 쌓였나보다. 그 정도 스케줄조차 능숙하게 소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역량에 짜증이 났었나보다. 그래도 남 눈엔 초라하게 보이기 싫었나 보다.


‘그럼, 그 돈다발과 황금은 또 뭘까?’ 어제 저녁 아내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고지서 한 장이 떠올랐다. 아들 녀석 수업료와 학생회비를 5월29일까지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탈탈 털어도 먼지밖에 나오지 않는 주머니의 현실을 꿈속의 횡재로 만회하려 했었나보다. 간밤 꿈자리의 찜찜한 여운을 털어볼 요량으로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았지만 영 개운하질 않다. 이럴 때, 속 시원하게 꿈 풀이를 제대로 해줄 사람이 없을까?
 

꿈 아쉬움·불안에 지배당하면
두눈 뜨고도 허망한 꿈 꾸는 것


‘위산록(潙山錄)’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위산 영우선사 말년의 이야기다. 하루는 스님이 선상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계신데 앙산 혜적(仰山慧寂)이 문안인사를 드리러 찾아왔다. 부스스 눈을 뜬 위산 스님은 곧바로 벽을 향해 돌아 앉으셨다.


그러자 앙산이 근심스런 목소리로 여쭈었다. “스님, 왜 그러십니까?”


어록을 읽다보면 선사들의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은근히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쭉 내밀고, 양팔을 잔뜩 벌린 채 뒤뚱거리는 노인이 생각난다. 그 뒤태를 보면 누구나 웃음을 터트리지만 그 앞태를 보면 누구나 숙연해진다. 왜냐하면 체면 염치 불구한 그 노인네의 손아귀 끝에는 막 걸음마를 배운 돌배기 손자가 있기 때문이다.


‘저 놈이 다리에 힘이 붙었나?’ 싶어 손을 놓으면서도 ‘그래도 엎어지면 어쩌지?’하는 염려에 성큼 떼지 못하는 노인네의 마음, 선사들 역시 제자들에게 그런 노파심이 절절했다. 해서 욕망과 망상에 사로잡힌 눈길을 돌려보겠다고 공옥진 여사처럼 곱사등이 똥 누는 시늉까지 마다하지 않고, 제자들의 역량이 얼마나 늘었나 싶어 찰리 채플린처럼 멀쩡한 평지에서 미끄러지는 슬랩스틱도 마다하지 않는다. 위산 스님도 그랬다.


위산 스님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더니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자네가 해몽 좀 해주게.” 그러자 앙산이 물 한 대야를 들고 와 스님의 얼굴을 깨끗이 씻겨드렸다.


멋진 꿈 풀이다. 험했건 달콤했건 꿈은 꿈일 뿐이다. 그걸 붙들고 왈가왈부하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다. 이만한 해몽이 있을까? 꿈만 그럴까? 험했건 달콤했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걸 붙들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동안엔 끝내 아쉬움과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또한 아쉬움과 불안에 지배당하고 있는 한,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어도 허망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조금 있다가 이번엔 향엄 지한(香嚴智閑)이 찾아와 문안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위산 스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혜적이 나를 위해 해몽을 해주었다네. 그러니 자네도 해몽을 해보게.” 그러자 향엄이 차 한 잔을 달여와 스님께 바쳤다.


위산 스님이 가만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견해가 지혜제일 사리불보다 훌륭하구나.”


두 아들이 제 힘으로 당당히 섰을 뿐 아니라 허리 굽은 아비의 지팡이노릇까지 했으니, 위산 스님은 꽤나 흐뭇했을 게다.


‘정신 차리라’며 물 떠오고 차 끊여줄 앙산과 향엄이 나에겐 없으니,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현오가 보내온 녹차를 한잔 마셔야겠다. 그 향기면 정신이 번쩍 들지 싶다.

 

 

[출처 : 법보신문 201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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