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란 무엇인가] 간화선 수행 - 9. 번뇌망상과 화두 들기
[간화선 수행]
9. 번뇌망상과 화두 들기
“화두 들면 본래 불성으로 돌아가”
모든 존재는 본래 부처의 모습이다.
그것은 자연(自然)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연법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그렇게 법이 드러나 있다’, ‘스스로 그렇게 법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냇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새는 지저귀고 꽃은 피고 진다. 비유하자면 그게 자연 그대로 본래 부처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보면 중생의 모습으로 병들고 신음하고 있다.
근심과 걱정은 물론이요 시기 질투하고 억울해 하며 마음을 병들게 한다.
순간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경계가 들어오는 순간 경계에 휘말려
본래 부처로서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놓쳐 버리고 만다.
그래서 중생의 모습으로 화내고 싸우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한없이 늙어간다.
우리가 이렇게 중생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된 원인은 번뇌망상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번뇌망상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번뇌망상의 모습과 원인을 알면, 그것을 치유하는 길은 바로 나오고,
그렇다면 본래 부처로서의 성품을 자연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번뇌란 괴로움이요 아픔이며, 집착하고 성내는 것이며, 욕심 부리고 갈등하는 것이다.
망상의 사전적 정의는 병적으로 내린 잘못된 판단과 확신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바라보는 망상이란 잘못된 판단과 확신이긴 하지만,
그 병적으로 내린다는 그 병이 비정상적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인에게 아주 확연하게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즉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판단과 확신으로
괴롭고 아프며 갈등하면서 살고 있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번뇌망상은 왜 발생하는가.
그 원인은 자기 생각에 집착하여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게 행동하여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늘 깨어 있으면 두렵지 않고
마음 평정 찾아 세상 관조
생활 속의 간화선은 이 번뇌망상의 작용을 화두로 녹이고
나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바로 보게 해준다.
잡념, 망상이 떠오르는 순간,
그 자리에 화두를 들면 망상은 자취를 감추고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말해 화두를 들고 있으면 번뇌망상이 찾아올 리가 없다.
화두를 들고 있는 순간 나는 진리와 연결되어 그 자리에서 역력히 깨어 있게 된다.
조작하고 시비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게 된다.
화두에 깨어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깨어 있으니 어떤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정을 찾고 고요한 마음자리에 서서 세상을 공으로 관조한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견오온개공하는 순간 번뇌는 곧 보리요, 생사는 곧 열반이다.
따지고 보면 그 번뇌의 뿌리도 부처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부처의 마음이 조작하고 시비하고 분별하는 작용으로 인해 번뇌로 화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순간 화두를 들라.
아니 번뇌망상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화두에 깨어 있으라.
〈신심명〉의 첫구절은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이다.
도에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을 싫어할 뿐이라는 것이다.
간택하지 말라, 비교하고 선택하고 가리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은 마음을 조작적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시비 조작하는 것은 번뇌망상 탓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 화두를 들라. 도에 이르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고 말하지 않는가.
조계종 포교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