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란 무엇인가] 간화선 수행 - 10. 화두 참구를 잘 하는 길
[간화선 수행]
10. 화두 참구를 잘 하는 길
“줄기차게 들어야 마음에 걸려”
화두를 들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웬만한 수행이 되지 않고서는 화두를 잡념 없이
지속적으로 들고 나가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어떤 입문자는 말하길,
수차례 참선을 해도 화두가 전혀 들리지 않아 인내력만 테스트했다고 실토한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아! 나는 백날 해도 안 되는구나’ 하면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내가 화두를 드는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화두 참구는 활쏘기와 같다.
끊임없이 정진해 나가면 과녁 정중앙에 꽂힌다.
첫째, 화두를 들어야겠다는 신심과 발심이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본래 부처라는 확고한 믿음과
화두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백약이 별무소용이다.
둘째 화두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셋째, 화두가 진정한 의심으로 마음에 들어와 박혀야 한다.
정말 자신이 들고 있는 화두에 무엇으로도 풀 수 없는 의심이 생겨
간절하게 달구어지지 않으면 화두는 결코 의심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앞선 연재글에 설명을 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화두가 안 들리면 다음의 요령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신심 발심 없으면 ‘백약무효’
‘의심 끝자락’ 끝까지 밀어야
넷째, 전제(全提)와 단제(單提)를 섞어서 든다.
‘이 뭣고’ 화두의 실례로 보겠다.
이 뭣고 화두의 전제는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밝고 또렷또렷(昭昭靈靈)한 주인공 이 놈이 무엇인고?’
‘부모 미생전 나의 본래 면목이 무엇인고?’ 등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 보듯이 전제는 화두의 전체 내용을 일컬으며,
단제는 ‘이 뭣고’만 드는 것이다.
‘이 뭣고’하면서 단제를 들다가 잡념과 번뇌망상이 들어오려고 하면
그 자리에다 전제로 바꾸어 화두를 들어나간다.
그러다 잡념이 들어오지 않으면 다시 단제로 바꾼다.
다섯째, 단제만 들면서 ‘이 뭣고’할 때는
‘이-’를 약간 길게 하면서 마음속으로
‘이-’하는 그 놈이 ‘뭣꼬?’하며 의심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조금 막연하지만 ‘이- 뭣-고’ 하면서 의심을 길게 이어간다.
그렇게 의심을 길게 가져가면서 그 의심을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뼈속과 핏줄까지 스며들듯이 온 몸과 마음으로 의심한다.
일곱째, 화두 의심의 끝자락을 단전이면 단전,
퇴음부면 퇴음부까지 밀밀하게 빈틈없이 밀고 들어간다.
그러나 절대로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있는 힘을 다주고 급하게 화두를 들다보면
열기가 머리로 올라와 머리가 찌근찌근 아프고,
그것이 진전되면 머리가 빠게 질 듯하다. 심한 경우는 구토까지 난다.
그러면 몸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물론 건강상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화두를 빈틈없이 밀고 들어가되 너무 힘을 주지도 말고 빼지도 만 상태,
적절한 중도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들어나가야 한다.
여덟째, 여러 대중들이 모여 함께 좌선을 하는 방법과 혼자서 하는 것을 병용한다.
여러 대중들이 함께 모여 참선하면 서로 물어가면서 탁마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지도자가 있어 문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홉째,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지속적인 실천 외엔 왕도가 없다. 마치 활쏘기와 같다.
처음부처 활쏘기의 신궁이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다 보면 화살은 과녁의 정 중앙에 꽂히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서 쉼 없이 화두를 들어나가야 한다.
일단 앉는 것이 중요하다.
앉는 것이 습관이 되면 5분, 10분은 금방이다.
어느새 30분, 1시간이 흐른다.
이렇게 해서 조용한 데서 화두 드는 것이 힘을 받으면
누구를 기다리거나 전철을 타고 갈 때도 화두를 들어보라.
그 다음 걸어가면서도 화두를 들어 본다.
이렇게 줄기차게 하면 화두가 마음에 탁 걸리는 날이 올 것이다.
조계종 포교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