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산방야화山房夜話

방편이나 점수로도 깨달을 수 있읍니까?

쪽빛마루 2014. 11. 30. 17:17

방편이나 점수로도 깨달을 수 있읍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참선으로도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방편을 사용해서 깨달을 수 있는지요? 예를들면 점수(漸修)하여 깨닫지 못하면, 향후 세계에서라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다시 깨칠 수 있겠읍니까 !"
 나는 말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깨달음이란 당사자가 직접 체험해야 하는일입니다. 남물에게 의지해서 될 수도 없는 일이고, 낚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 때문에 미혹에 빠지는 것도 제 스스로 그렇게 단드는 것이고, 깨우침도 반드시 자신에 의해 달성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비록 석가모니 부처님과 달마대사라 할지라도 그대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요즈은 스승들도 참선하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많이들 걱정합니다. 그러므로 근기(根機)에 알맞는 방법을 쓰고, 방편을 자세하게 베풀어 후학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들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해야 할 큰 문제로는 삼지 않고, 선(禪)을 신속하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고작 방편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알음알이로 고금의 공안을 통하고서 관문을 뚫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사(生死)라는 기장 크고 견고한 관문은 뚫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통과한 것은 고작 언설(言說)의 관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것은 수행에 무익한 정도가 아니라, 자키의 본분을 스스로 해치는 짓입니다. 만약 진실하게 생사대사를 끊으려는 올바른 사람이라면 비록 달마대사가 세간에 출현해서 모든 불조의 핵심되는 도리를 가져다 8식(八識) 가운데 놓아준다해도, 뿌리까지라도 모두 토해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반드시 본인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반푼어치도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없읍니다. 비록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직 정념(正念)만을 견고하게 지니고, 살아도 깨달음과 함께 살고, 죽어도같이 죽겠다는 태도로 절대로 알음알이를 갖고 이해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이와같이 뜻을 지킬 수 있다면 한 생 두 생이 흘렀다 해도 깨닫지 못할까 절대로 근심할 필요가 없읍니다. 개중에는 고요하고 묵묵히 죄선하다가 번뇌 망상이 쉴 때, 문득 그럴듯한 도리를 깨닫게 되면 획철대오 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 경전 속에서 증거를 대고, 마음속에는 그 사이비 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에 의한 깨달음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읍니다. 생사문제를 견성(見性)하지 못했으면서도 자기가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해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깨달았다고 인가(印可)해주길 바라지만, 이
것이 결국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또 어떤 무리는 6식(六識)을 자기의 주인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리고는 옛 사람이 잘모르고 한말을 끌어다 증거로 삼습니다. 참선을 하더라도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자는 생사의 언덕에서 꼼짝도 못할뿐 아니타, 밝은 대낮에도 눈을 부릅뜨고 혹 좋지 못한말이라도 들으면 그냥 화가 나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비방이라도하면 근본무명(根本無明)이 일어나 상대방과 다투면서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데, 이런 것은 미친 사람이나 하는 짓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평생 도를 배웠으나 깨닫지 못하면, 더 이상 깨닫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미 정념을 잃어버렸다면, 훗날에도 깨달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티끌이나 모래처럼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수행을 해도 깨달을 수가 없읍니다. 이것은 좋은 전답을 갖고도 김을 매지 않으며, 오곡이 저절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므로, 이런 사람은 절대로 깨달을 수 없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