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산방야화山房夜話

참선을 어느 정도 했을 때 주의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쪽빛마루 2014. 11. 30. 17:38

참선을 어느 정도 했을 때 주의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객승이 또 물었다.
 "참선하는 사람 중에는 초발심(初發心)을 위배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말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마음 속으로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게 마련이고, 반면에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마음이 편안한 법입니다. 이것은 사람 사는데 흔히 있는 일로써, 천하고금이 동일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참선하는 납자라면 마음으로는 늘 뭔가 부족하다 싶어야 하고, 마음을 편히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무언가 부족하게 여길 때, 가없는 성인의 도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고, 무궁한 결실 또한 이때 보게 됩니다. 마음이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인연에 따라 더러워지
기도 깨끗해지기도 합니다. 한 순간에도 별별 것을 다 생각할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업(業)이 되고,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미혹에 빠지니 두고만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까지 객승과의 대화가 미치자 어떤 늙은 비구가 일어나 말했다.
 "지난날 세속에 있을 때는 「법회경」7권 중에 네 권을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생각하기를 머리 깎고 승복을 입은 후에는 출가 전 외우지 못했던 나머지 세 권을 반드시 외우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출가한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나머지 세 권을 마저 외우기는커녕, 출가 전 외워두었던 네 권마저도 잊어버릴 줄을 누가 알았겠읍니까?"
 이 말을 듣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세속을 벗어나야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매양 뭔가 부족힘을 느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그 생각에 4권이라도 외울수 있었읍니다. 이윽고출가의 목적이 이루어지자, 마음이 방일해져 외워두었던 것까지 모두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근본을 살펴보면, 요즘 참선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읍니다. 또한 세상 어디에도 자기 집이 없이 한 몸으로 만 리를 떠돌아다닐 때는 깨달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오직 참선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눈밝은 스승이 교묘한 질문거리를 만들어 애매한 곳을 물으면, 총명한 재주를 동원해 언어와 문자로 이리저리 따집니다. 어쩌다 그렇게 해서 한 번 인가(印可)를 받으면, 거기에 안주해서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마음이 펀해져 허망한 견해가 생겨, 말할때는 깨달은 듯하나 새로운 경계가 또 나타나면 다시 미혹된다는 것을전혀 생각지 못한 처사입니다. 옛 사람이 해탈했던 경지에도 물론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 지난날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 깨달음을 구하던 마음마저도 몽땅 잃고 만 것입니다. 아! 성현의 학문이 어찌 여기서 머물겠습니까?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고, 스스로 도를 깨달았다고 만족하는 생각을 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괴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