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止觀)의 참 뜻은 무엇인가?
지관(止觀)의 참 뜻은 무엇인가?
지(止)는 본체로서 백천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안주하는 것이며, 관(觀)은 작용으로서 갖가지 수행이 일제히 나타나는 것이다. 본체는 작용 밖에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지(止)는 관(觀)속에 있으며, 작용은 본체 밖에 따로 있는것이 아니니, 관(觀)은 지(止)가 있는 곳으로 귀결된다. 본체는 요동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수미산이 허공 속에 서 있는 것과 같고, 작용은 어둡지 않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해가 깊은 골짜기(暘谷)에 걸려있는 것과도 같다.
지(止)에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파도가 근원자리에서 사라지고 , 관(觀)에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광채가 고경(古鏡)에서 소멸한다. 수미산이 허공 속에 있어도 지(止)의 본체는 본래 스스로가 이지러짐이 없으며, 양곡(暘谷)이 솟아오르는 햇빛을 간직한다 하더라도 관(觀)의 작용은 원래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근원이 공적해지면 파도도 없어지는데 지(止)가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또 거울이 깨지면 비치는 작용도 없어지는데 관(觀)이 어디에 의탁하겠는가? 그렇다면 거울과 근원이 본래 허깨비이고 본체와 작용이 원래 공(空)하여 주관 · 객관이 함께 없어지면 지(止) · 관(觀)도 또한 고요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혼침과 산란 때문에 생사의 바다에 빠지고, 모든 부처님들은 지(止) · 관(觀) 때문에 열반의 언덕에 안주한다'고 하였읍니다. 이른바 지(止)로써 산란을 고요히 중지시키고 항상 관조하며, 관(觀)으로써 혼침을 관조하여 항상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고요와 관조가 쌍으로 나타나고, 정(定과 혜(慧)가 융합하여 지(止)가 극치에 이르면 관(觀)이 원만합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무엇에 의지하겠읍니까?
분명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지 · 관의 명칭이 혼합되었다면 정 · 혜의 본체를 어떻게 나눌 수 있겠읍니까? 이론과 실제가 잘못됐으므로 당신의 말씀은 옳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슬프다. 왜 듣지도 못했읍니까?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일승만 진실이고 나머지 이승은 진실이 아니니라' 하지 않았읍니까? 지관 · 정혜 · 적조 · 체용 등은 이치가 본래 다름이 없는데 명칭만을 달리 붙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진실로써 방편에 나아간다면 2변(二邊)이 각각 성립되지만, 방편을 돌이켜 진실로 귀결한다면 '하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방편과 진실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이론과 실제는 저절로 오류가 됩니다.
신령스런 비춤은 상대가 끊겼고 진실한 깨달음은 의지함이 없는데, 실로 일념(一念)이 홀연히 일어난 것을 연유하여 만법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자못 알지 못했다고 하겠읍니다. 또 미혹과 깨달음을 구별하여 생각하지 않는다면 잘못이 어찌 두사람에게만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성인이 베푼 가르침이 백천가지로 모두 다르지만 근기와 사람 됨됨이에 알맞게하여 허망을 버리고 집착을 제거하게 할 뿐입니다. 이는 모두가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삼매(方便三昧)의 지력(智力)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찌 일찌기 그 사이에 정해진 의식이 있었겠읍니까? 그러나 일찌기 정해진 의식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요컨대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지(止)로써 산란을 그친다 하나 산란하는 까닭을 모르겠으며, 관(觀)으로써 혼침을 관찰한다고 하나 혼침하는 원인을 모르겠읍니다. 가령 중단될 수 있는 산란이라면 마음 밖에 법이 있게 되며, 관할만한 혼침이라면 법 밖에 마음이 있게 되리라. 이른바 산란이란 공적한 영원(靈源)을 말미암지 않고는 스스로 발생하지 못하며, 혼침도 원담(圓湛)한 진체(眞體)가 아니라면 무엇을 말미암아 스스로 일어나겠읍니까?
또 공적하고도 신령스런 근원자리는 동 · 정이 다르지 않은데 원만하고 담적한 진체인들 명 · 암이 어찌 다르겠읍니까? 가령 지(止)가 동 · 정이 끊어진 근원에 나타난다 해도 한 줌의 흙을 수미산에 보태는 것과 같으며, 관(觀)을 명 · 암을 떠난 본체에 더한다 해도 작은 등불로 양곡(暘谷)을 비추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또 한결같고 진실하고 지극한 본체를 확연히 밝힌다면 만법의 허깨비 명칭은 자연히 풀립니다. 지금의 이 생각을 떠나지 못했는데 수행의 계단이나 사다리가 어찌 필요하겠읍니까? 지 · 관을 혼침 · 산란한 장소에서 융합하며, 정 · 혜를 생멸이 일어나는 때에도 완전하게 해야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파도 속에서 맑은 물을 관찰한다면 청 · 탁을 누구라서 구분하겠으며, 5색(五色) 속에서 둥근 구슬을 본다면 염 · 정에 미혹할 수가 없읍니다. 지극하도다, 이 뜻이여. 세상에서는 혹 들어본 사람이 드물구나! 증득해야만 알게 되고, 깨닫지 못하면 헤아릴 수 없읍니다. 말 이전에 알아차린다 해도 이미 옆길로 샌 것입니다. 의식으로 헤아리고 구하려 한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격이니 무슨 도움이 있겠읍니까!
東語西話 續集 上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