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참선경어參禪警語

제1장 처음 발심한 납자가 알아야 할 공부(26.~30)

쪽빛마루 2014. 12. 14. 06:41

26. 더 이상 마음 쓸 곳 없는 경지

 

 참선할 때 더 이상 마음 쓸 곳이 없는 경지, 즉 만 길 낭떠러지나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초승달 그림자가 물소뿔에 새겨지는 경지* 에 이르게 되면 늙은 쥐가 쇠뿔 속에 덜컥 걸려 들어가듯* 어찌할 수 없이 저절로 정(定)에 들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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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문결각(蘿紋結角): 나문(蘿紋)은 주름살 무늬나 혹은 와문(渦紋)을 말한다. 결(結)은 단단히 매여짐. 무소가 초사흘달을 보면 뿔에 달의 그림자가 새겨진다고 함.

범부가 깨달음을 얻고 불신(佛身)으로 전화하려는 경지.

*노서입우각(老鼠入牛角) : 옛날에는 쇠뿔에다 기름을 먹여 등잔불로 썼는데 쥐가 그리 걸려들어가면 꼼짝없이 나올 수 없으니, 공부가 다 되어 저절로 깨치게 되는 순간을 비유함.

 

 

27. 민첩하고 약은 마음을 경계하라

 

 참선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민첩하고 약은 마음이다. 그것은 공부에 있어서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는 약이니 조금이라도 먹었다 하면 아무리 좋은 약으로도 구할 수 없게 된다.

 진정한 납자라면 소경이나 귀머거리 같아야 한다.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알음알이[心念]가 생기거든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라. 이렇게 해야 비로소 공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28. 자신과 세계를 하나로 하라

 

 진정하고 절실하게 공부하려면 자기 심신과 바깥 세계를 불에 구운 쇠말뚝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갑자기 폭발해서 끊어지고 부러지기만을 기다려, 다시 그것을 주워 모아야만 비로소 공부가 되었다 할 것이다.

 

 

29. 사건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경계하라

 

 공부할 때에는 잘못됨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설사 수행을 하다가 잘못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한 생각에 잘못임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기본이자 생사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이며, 마(魔)의 그물을 깰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석가 부처님께서는 외도(外道)의 법(法)에 대하여 하나하나 몸소 경험해 나오셨다. 이것은 오직 사견(邪見)의 소굴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잘못인 줄 안 즉시 떠난다'는 태도를 가지고 범부에서부터 부처자리에 이르셨던 것이다.

 이 뜻이 어찌 세간을 벗어난 출가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속인들도 생각을 잘못했을 때가 있거든, 오직 '잘못인 줄 알았으면 바로 버린다'는 이 뜻만 소화해 낼 수 있으면 곧 청정한 선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잘못을 안고 그 속에 정착하여 옳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알려 하지 않는다면 비록 산 부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30. 시끄러운 경계를 피하려 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시끄러운 것을 피하려 해서는 안된다. 고요한 곳을 찾아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도깨비굴 속에 앉아 살아날 궁리를 하는 셈이다.

 옛사람이 이른바 "흑산(黑山) 밑에 앉아 있으면 사수(死水)가 젖어들어올 때 어느 쪽으로 건너겠는가?"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환경과 인연의 굴레 속에 있으면서 공부해 나가야 하니 그래야만 비로소 힘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문득 한 귀절의 화두가 눈썹 위에 붙어 있게 되면, 걸어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옷 입고 밥 먹을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나 오직 그 화두의 귀결처만을 밝힌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얼굴을 씻다가 콧구멍을 더듬어 만져보니 원래 지극히 가까운 곳에 붙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 힘을 얻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