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참선경어參禪警語

제2장 옛 큰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평하는 글(11.~20)

쪽빛마루 2014. 12. 14. 06:45

11. 지식을 배움은 참선이 아니다

 

 서록사(瑞鹿寺) 본선(本先 : 941~1008)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문답을 하거나 그 뜻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일, 또는 대어(代語: 남이 대답치 못한 말에 나더러 대신 대답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나 별어(別語 : 이 기연에 대해 나는 다른 말을 붙이겠다) 등을 배우는 일을 가지고 참선한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경론(經論)에 나오는 그럴듯한 이론이나 조사(祖師)스님들의 파격적인 언어에 천착하는 일을 가지고 참선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위에서 열거한 공부에 그대들이 비록 무애자재하게 통달했다 하더라도 불법(佛法) 중에 나름대로 어떤 경지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런 이들을 '쓸데없는 지식만 좇는 무리' 라고 부른다. 그대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는가? 똑똑함만 가지고는 생사문제와 대적할 수 없다는 말을! 쓸데없는 지식[乾慧]만으로 어찌 고통의 수레바퀴를 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요즘 납자들은 모두 위와 비슷한 사람들이니 이른바 '진짜 금은 내던지고 기와조각을 줍는 사람'이다. 진실되게 참구하려 하지 않고 구두삼매(口頭三昧)를 마음대로 하니 마치 향엄 지한(香嚴智閑) 스님이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한 일과 같다. 이렇듯 총명하면 불법에 통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마는 직접 보아낸 경지가 없었으니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소식' 에 대해서는 어찌 해보지 못하였다. 자, 말재주를 배우는 무리들은 한번 말해 보아라! 그렇게 공부하여 과연 어떤 일들을 건지려 하는가?

 

 

12. 진실되게 참구하라

 

 

 본선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참구를 하려거든 모름지기 진실되게 참구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된다. 길을 갈 때에는 길 가는대로 참구하고, 서있을 때는 서있는대로 참구해야 한다. 앉거나 잠잘 때, 또는 대화하거나 묵언하며 다른 어떤 일들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이러저러한 모든 때에 참구하게 되거든, 이제는 자신에게 물어보아라! 지금 참구하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며, 또한 참구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를. 여기까지 되었으면 모름지기 스스로 명백하게 보는 바가 있어서 비로소 깨달음의 경지를 얻게 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작심삼일의 무리'라고 부르니, 깨닫겠다는 뜻이 원래 없었던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참구하는 이도리가 대체 무슨 도리이며 참구하는 이 사람은 또 누구인가'를 절실하게 참구하는 일이다. 이도리, 이 사람을 참구해 알아내지 못하면 그저 허송세월하는 것일 뿐 참선한다고 할 수 없다.

 

 

 

 

13. 위급한 상황에서 살 길을 찾듯 하라

 

 파초산(芭蕉山) 혜청(慧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앞에는 만길 낭떠러지이고 뒤에서는 산불이 타 들어오며 양옆은 가시덤불인 상황을 만났다고 하자. 앞으로 나아가자니 낭떠러지로 떨어지겠고, 되돌아가자니 타서 죽게 되겠고, 옆으로 몸을 돌리자니 가시덤불에 찔리게 되어 있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헤쳐나갈 수가 있을까? 만약 빠져나갈수가 있다면 살 길이 열리게 되지만, 빠져나가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는 상황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다만 모름지기 위태롭다느니 죽는다느니 하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비로소 하나의 살 길이 트인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어떻게 할까?'하고 생각을 짜냈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 혜청스님의 이 말씀은 공부에 가장 긴요하다. 그런데 납자들이 흔히 지식을 찾다가 심오한 이론 속에 도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어서 이와 같은 철저한 참구에는 마음을 두지 않으니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하겠다.

 

 

14. 선문답으로는 도를 믿지 못한다

 

 운문(雲門 : ?~947)스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거짓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남의 이론이나 우려먹고 한 무더기 닳아빠진 옛말이나 주워 챙겨가며, 가는 곳마다 꼴사납게 마구 짖어대면서, 나는 선문답을 5번이고 10번이고 이해했노라 과시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답을 하고 이런 식으로 겁(劫)을 지나도록 논해보았자 꿈속엔들 도를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운문스님이 그 당시 대놓고 꾸짖은 사람은 열에 하나 둘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도 나도 다 그러하다. 이런 사람이 언제 한번 피부에 닿듯이 절실하게 참구해 보았겠는가. 설혹 꼼짝않고 좌선하고 있을 때라도 마음이 혼침(昏沈)하지 않으면 산란(散亂)한 상태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 뱃속에 들어 있는 올가미가 토해도 나오지 않고 칼로 베어도 끊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리한 납자라면 운문스님께서 거론한 이런 말씀을 듣는 순간 매우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이니, 그래야만 비로소 되었다고 할만하다.

 

 

15. 안이한 마음을 먹지 말라

 

 운문스님이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안이하게 시간을 보내지 말고 매우 자세하게 공부해야 한다. 옛 스님들은 마음속에 번거러움이 뒤엉킬때 설봉(雪峯 : 822~908)스님의 '온누리가 전부 내 몸이다'하신 말씀과, 협산(夾山)스님의 '온갖 것에서 나를 찾아내고 시끄러운 저자거리에서 천자를 찾아내 보라'하신 말씀을 오로지 생각하셨다. 또한 낙포(洛浦)스님의 '티끌 하나가 일자마자 온누리를 그 속에 거두어들이고, 하나의 털끝에 사자의 온몸을 거둬들인다'는 말씀만을 생각하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위의 모든 말씀을 철저하게 깊이 생각하라. 세월이 오래 가면 자연히 깨닫게 되는 점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위의 세 분 스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들을 도에 들어가도록 이끄는 말씀이니, 중요한 것은 '그대들 자신이 깨달으려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 의지가 없다면 도깨비굴 속에서 살아날 꾀를 내보는 꼴이다. 그대들이 만일 도에 들어간다면, 자연히 마음이 가라앉고 조용해져서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있는 줄도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있는 줄도 알지 못하게 된다. 자, 이제는 찾아보느냐 찾지 않느냐 이 두 갈래 길뿐이다.

 

 

16. 법신에 대한 두 가지 병통

 

 

 운문스님이 말씀하셨다.

 "빛이 통과 하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의 병통이 있기 때문이다. 사방 깜깜한데 앞에 무엇인가가 있는 경우와, 또 모든 것이 공(空)임을 철저히 알고도 암암리에 어떤 것이 있는 듯하다[似有]고 보는 경우가 다 그 원인이다.

 또한 법신(法身)에도 두 가지의 병통이 있다. 하나는 법신을 깨닫고자 하나 그것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기가 법을 깨닫겠다는 견해가 아직도 남아 있어 법신 쪽에 빠져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록 법신을 깨닫고자 하나 그것을 놓아버려서도 안되니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무슨 소식이라도 있으면 병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 병은 오로지 알음알이에서 살길을 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한 번도 앉은 그 자리에서 번뇌망상을 끊지 못하여 법신을 깨닫지도 못했으며,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 숨을 토해내지도 못해 보았으니 만일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망념이 생겨나게 되면 마귀, 도깨비가 자기 속에 들어앉게 되는 꼴이다.

 

 

 

 

17. 지혜와 근기가 뛰어나야 한다

 

 현사(玄沙 : 835~908)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般若)를 배우려는 모든 보살은 모름지기 공부할 만한 근기(根機)와 지혜가 뛰어나야만 될 수있다. 만일 지혜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이곳- 번뇌의 사바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근기가 뛰어나다 함은 , 한 가지를 들으면 천 가지를 알아듣고 무량한 법문[大總持]을 깨치는 이를 말한다. 앞서 '벗어난다'는 말은 처음부터 방편으로 하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본래부터 얽매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8. 둔한 근기는 절실하게 노력하라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근기가 둔한 사람이라면 다만 밤낮으로 애써 공부하고 고단함도 잠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마치 부모 상(喪)을 당했을 때처럼 해야 한다. 이렇게 다급하고 절실하게 일생을 공부하다가 보면 문득 선지식의 도움을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참구해야 무엇인가가 구체적으로 되어나가는데, 하물며 지금 같아서야 누가 이러한 공부를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온누리 사람이 다 이 공부를 감당해낼 수가 있다. 오직 무지(無知)하고 신근(信根)을 갖추지 않은 사람을 빼고는 , 설사 석가 부처님이 빛을 놓아 대지를 뒤흔드는 위의를 보이신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어찌 하겠는가?

 

 

 

 

19. 남의 말을 외우려 하지 말라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납자들은 오직 말을 외우는 데 힘써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다라니를 외는 것과 같아서 제자리걸음으로 전진하려는 격이다. 이렇게 입속에서는 어린애 반벙어리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어떤 사람에게 붙잡혀서 질문이라도 받게 되면 꼼짝없이 피할 곳이 없다. 그리하여 당장 성을 내면서, '그대는 나더러 지금 선문답을 하라는 것인가?'라고 하니, 이런 사람에게는 공부하는 일이 매우 고통스러울 뿐이다. 알겠느냐!"

 

 

 나는 이렇게 평한다.

 남의 말이나 외우는 일을 '잡독(雜毒)이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이것은 바른 견해를 막기 때문이다. 보통 세간에서 글 읽는다 하는 사람도 글 자체를 외우는 경우는 많으나, 내용을 소화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출세간법을 참구하려는 납자가 남이 흘린 침이나 받아먹어서야 되겠는가?

 

 

20. 거짓 위의로 법을 보여주는 잘못

 

 현사스님이 말씀하셨다.

 "선상(禪床에 앉아 있으면서 선지식(善知識)이라 불리우는 어떤 화상(和尙)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법을 물으면, 몸을 흔들고 손을 움직이며 눈을 깜박거리고 혓바닥을 내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을 쏘아보곤 한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런 무리들은 온몸이 마(魔)이며 온몸 그대로가 병통이니, 죽을 때까지도 시끄러운 속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