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선림보훈禪林寶訓

42. 선과 교에서 모두 무상(無上)의 도를 말하다 <終>

쪽빛마루 2014. 12. 22. 19:40

42

선과 교에서 모두 무상(無上)의 도를 말하다
뇌암 도추(懶庵道樞)스님


 

1.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깨닫기를 기약하고 진실한 선지식을 찾아 의심을 해결하여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알음알이[情見]가 다하지 못하면 바로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다. 알음알이가 다한 곳에서는 모름지기 그것이 다한 까닭을 참구해야 한다. 이는 마치 사람이 집안에 있으면서 하나라도 미비한 일이 있는지를 근심하는 것과도 같다.
 위산(潙山)스님은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인연따라 일념(一念)에 돈오(頓悟)하는 본래 이치를 얻긴 했으나, 그래도 시작없이 흘러온 습기(習氣)는 한꺼번에 다 없애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납자들에게 현전(現前)하는 업식(業識)을 말끔히 제거하게 하는 것이 수행이며, 따로 수행문이 있다 하여 그리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위산스님은 고불(古佛)이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혹 그렇지 않았더라면 죽는 마당에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여전히 끓는 물에 떨어지는 새우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2.
 율장(律藏)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승물(僧物)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주상주승물(常住常住僧物)*, 둘째는 시방상주승물(十方常住僧物)*, 세째는 현전상주승물(現前常住僧物)*, 네째는 시방현전상주승물(十方現前常住僧物)*이다."
 상주승물은 털끝만큼이라도 범해서는 안된다. 그 죄가 가볍지가 않다고 예나 지금이나 성인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말씀하셨는데도 듣는 사람들이 더러는 반드시 믿지도 않으며, 믿는다 해도 꼭 실천하지는 않는다.
 나는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할 때나 혹은 물러나 은둔할 때나 언제고 이 문제를 절실히 염두에 두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을까 두려워 게송을 지어 자신을 경책하였다.

 

시방승물 산처럼 무거운데
만겁천생인들 어찌 쉽게 돌려주랴
모든 부처님 말씀 믿지 않으면
뒷날에 어떻게 지옥을 면하랴
사람몸 얻기 어려우니 잘 생각하라
축생이 되었을 땐 세월이 길리라
쌀 한 톨 탐하기를 우습게 알면
부질없이 반 년의 양식 잃으리라


十方僧物重如山  萬劫千生豈易還
金口共譚曾未信  他年爭免鐵城關
人身難得好思量  頭角生時歲月長
堪笑貪他一粒米  等閑失却半年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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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상주승물: 여러 스님들이 사는 집 · 집물(什物) · 수목 · 전원 · 노비 · 쌀 · 보리 등의 물건으로서, 자체가 당처에 국한되어 다른 경계로는 통용될 수 없다. 이는 받아서 쓰기만 할 뿐 나누어 파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므로 상주상주(常住常住)라는 반복된 표현을 썼다.

* 시방상주승물: 사중(寺中)에서 스님들께 공양하는 익힌 음식 등의 물건을 말한다. 이 물건은 여러 곳에 다 갖춰 쓸 수 있으며 제자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선현률(善現律)」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종을 치지 않았는데도 음식을 먹는 것은 투도죄(偸盜罪)를 범한 것이 된다."

 요즈음 모든 사찰에서는 동시에 음식을 먹는데, 음식이 다 되면 종과 북을 친다. 이는 시방승(十方僧)이 모두 함께 공양할 자격이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 현전상주승물: 이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일물현전상주(一物現前常住)며, 둘째는 승중현전상주(僧衆現前常住)이다. 이 물건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승려 대중에게만 베풀기 때문이다.

* 시방현전상주승물: 죽은 스님의 물건을 말한다. 이는 본처에 있는 현재의 스님만이 나누어 가질 수 있다.

 

3.
 「열반경(涅槃經)』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떤 사람이 대열반에 대한 설법을 듣고서 한 구절 한 글자마다 그대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생각[相]을 내지 않고, 나는 설법을 듣노라 하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부처님은 이러이러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 어떠어떠하게 설법하리라는 생각들을 모두 내지 않는다면 이러한 의미를 모양없는 모양[無相相]이라 한다."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와서 문자를 세우지 않았던 것은 앞서 말한 무상(無相)의 뜻을 밝힌 것이지, 대사 자신이 새로운 뜻을 제시하여 따로 종지를 세운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학자들은 이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선종(禪宗)은 별도의 종지이다"라고 말하며, 선을 으뜸으로 여기는 자는 교(敎)를 비난하고 교를 으뜸으로 여기는 자는 선을 틀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두 갈래로 종지가 갈라져 서로가 시끄럽게 헐뜯으며 그만두질 못한다.
 아 - 아, 지식이 천박하고 고루하여 한결같이 이 지경이 되었다. 이는 어리석지 않으면 미친 자이니, 매우 탄식할 만한 일이다. 「심지법문(心地法聞)」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