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상(上) 1. 어사중승 왕수를 맞이함/ 홍수 소수(洪壽小壽)스님
임간록(林間錄)
상(上)
1. 어사중승 왕수를 맞이함/ 홍수 소수(洪壽小壽)스님
항주(杭州) 흥교사(興敎寺) 홍수 소수(洪壽小壽 : 944~1022)스님은 처음 천태 덕소(天台德韶 : 891~972)국사를 시봉하였는데, 대중운력을 하다가 장작개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친 후 게를 지었다.
부딪쳐 떨어진 건 딴 물건이 아니고
여기저기 있는 건 티끌이 아니니
산하대지 온누리가 그대로
법왕(부처)의 몸을 드러내도다.
樸落非他物 縱橫不是塵
山河及大地 全露法王身
덕소국사는 소수스님의 게송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개법(開法)을 하자 납자들은 앞을 다투어 스님을 스승으로 섬겼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왕수(王隨)가 전당(錢唐)에 부임하면서 스님에게 문안을 가는 길에, 호상(湖上)까지 가서는 말에서 내려 시종을 가라 하고 홀로 걸어서 스님의 침실을 찾아갔다. 때마침 스님은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 햇볕을 쬐며 태연스레 앉아 있다가 대뜸 그를 보고 물었다.
“관리의 성은 무엇이오?”
“왕가입니다.”
왕수가 절을 올리자, 스님은 그에게 방석을 밀어주며 땅바닥에 깔고 앉게 한 후,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수가 떠나자 문도 하나가 스님께 따졌다.
“왕의 신하가 찾아왔는데 어찌하여 극진히 대접하지 않습니까? 이 일은 우리 모든 대중에게 관계되는 것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저 “알았다, 알았다”할 뿐이었다.
뒷날 왕수가 다시 절을 찾아오자 대중들은 큰 범종을 울리고 많은 스님들이 달려 나와 맞이하였으며, 스님 또한 마중 나가 소나무 아래 서서 그를 맞이하였다. 왕수가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는 가마에서 내려와 스님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지난날 만났을 때처럼 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번거롭게 예의를 갖추십니까?”
이에 스님은 곁에 있는 스님들을 돌아보고는 걸어가면서 말하였다.
“중승(中丞)께서야 나의 뜻을 알지만 사중의 대중들이 눈을 부라리는데야 어떻게 하겠오?”
스님은 천성이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니 참으로 본연의 납승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