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28. 교학승을 무색케 함/ 가진 점흉(可眞點胸)스님

쪽빛마루 2015. 1. 12. 08:59

28. 교학승을 무색케 함/ 가진 점흉(可眞點胸)스님

 

 취암(翠巖)의 가진 점흉(可眞點胸)스님은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며, 함부로 사람을 인가하지 않았다. 남창(南昌)의 장강사(長江寺)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의 장로 정(政 : 武昌)스님 또한 자명(慈明)스님의 법제자였다. 본래 강설(講說)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스님의 교학[義學]을 따르는 납자가 많았다.

 어느날 가진 점흉스님이 그를 보고는, 바지를 걷어부치고 양쪽 장단지를 드러낸 채 느릿느릿 걸어가니,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묻자, “앞 행랑 뒤편 시렁이 온통 칡덩쿨로 뒤덮여 있으니 옷이 걸려 나자빠질까 두려워서이다”고 하였다. 정스님은 한참동안 껄껄껄 웃은 뒤에 이어 물었다.

 “진형! 나와 그대는 동문 동참(同門同參)인데 어찌하여 사람만 만나면 나를 욕하는가?”

 가진스님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내 어찌 그대를 욕하랴? 내, 감춰둔 주둥이 하나는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꾸짖으려고 준비해 둔 것인데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말에 정스님은 어찌할 줄 모르고 가버렸다.

 혜남(慧南)스님을 만나자 가진스님은 말하였다.

 “내 뒷날 네거리에서 밥장사를 하면서 황벽산에서 오는 중이 있으면 반드시 시험해 보겠다.”

 “굳이 훗날 그럴 것이 있느냐? 내가 황벽산의 중이 될터이니 지금 물어보아라!”

 “요사이 어디를 떠나 여기에 왔는고?”

 “황벽산!”

 “이야기 듣자하니, 그곳 큰스님은 발을 땅에 대지 않고 걷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스님은 어디에서 그 소식을 들었는고?”

 “누가 전해 주었지.”

 혜남스님이 웃으면서 “도리어 그대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구나”라고 하니, 가진스님도 크게 웃고 가버렸다.

 가진 점흉스님이 납자들에게 즐겨 묻는 말은, “ 노조(魯祖 : 寶雲)스님은 당시 찾아오는 사람마다 ‘무슨 까닭에 벽을 향하여 참선만 하느냐’고 물었는데 무슨 뜻이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機語]에 깨치는 자가 없자 스스로 게를 지었다.

 

천산 만산을 채 모두 끊을 수 있지만

사람에게 시비를 없애라고 권하는건 더욱 어렵군

요사이 지양 땅에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과연 그 당시에는 스스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 맞구려.

 

坐斷千山與萬山  勸人除却是非難

池陽近日無消息  果中當年不自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