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빼어난 기상으로 주변을 압도함/ 유정(惟政)스님
66. 빼어난 기상으로 주변을 압도함/ 유정(惟政)스님
여항(餘杭)의 유정(惟政 : 986~1049)스님은 산사의 주지로서 그 풍모가 가장 높은 분이었다. 당시 시랑(侍郞) 장당(莊堂)이 전당(錢塘)의 태수로 재직하였는데 스님과는 도를 나누는 벗이었다.
스님이 그를 찾아갈 때는 의례 황소를 타고 소뿔 위에 물병을 걸고 다니니, 저자 사람들은 다투어가며 구경하였지만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관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소 등에서 내려와 하루종일 웃고 이야기하다가 떠나오곤 하였는데 어느날 장공이 스님을 만류하여 말하였다.
“마침 과객이 있어 내일 관아에서 모임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야 술을 마시지 않으시겠지만 나를 위하여 하루만 머무시면서 법담[淸談]을 나눴으면 합니다.”
스님이 이를 허락하자 장공이 몹시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 이튿날 장공이 스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맞이하려 하였는데 한수의 게를 남겨두고 떠나간 뒤였다.
어제는 오늘 일을 약속하였지만
그 대 문을 떠나 지팡이에 기댄 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중이란 산골에 있는 것이 마땅할 뿐
관리의 잔치자리엔 어울리지 않으오.
昨日會將今日期 出門倚杖又思惟
爲僧只合居巖谷 國士筵中甚不宜
좌석에 모인 손님들은 모두 그의 높은 인품을 추앙하였다.
또한 산중에 살면서 지은 게는 다음과 같다.
다리 위엔 만산 층층
다리 밑엔 강물 천리길
오로지 새하얀 왜가리만이
나를 찾아 변함없이 반겨 이르네
橋上山萬層 橋下水千里
唯有白鷺鷥 見我常來此
겨울엔 화롯불을 싸 안지 않고 갈대꽃으로 동그란 담요를 만들어 그 속에 발을 넣고 있다가 길손이 찾아오면 그 속에다 함께 발을 파 묻고 끝없이 법담을 나누니, 그의 빼어난 기상은 사람을 압도하였다. 가을과 여름 밤이면 달구경하기를 좋아하여 큰 대야를 연못 위에 띄워놓고 편히 앉아 스스로 대야를 돌리면서 시를 읊고 웃으며 아침녘까지 늘 그렇게 놀았다. 구봉(九峯)의 감소(鑑昭)스님은 일찌기 유정스님 문하에 객승으로 있었는데 성품이 평범하고 진솔하여 때묻고 꾀죄죄한 모습이었으나 자질구레한 일을 일삼지 않는 사람이어서 항상 스님을 비웃어 왔다. 어느날 저녁 누우려 할 때 스님이 사람을 보내어 감소스님을 부르니, 마지못하여 이맛살을 찌푸리며 스님을 찾아갔다.
유정스님이 말하였다.
“저처럼 좋은 달이 떠 있는데도 삶에 시달리며 정신이 없으니, 한가이 저 달을 마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감소스님은 그저 그렇겠다고 대꾸하였다. 이윽고 행자를 불러 무엇인가를 잘 익혀 오라고 분부하였다. 감소스님은 마침 뱃속이 출출했던 때라 약식이려니 생각했는데 한참 후에 내어놓은 것은 귤껍질을 다린 차 한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