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77. 허명을 굴복받는 일/ 황룡 혜남(黃龍慧南)

쪽빛마루 2015. 1. 12. 09:23

77. 허명을 굴복받는 일/ 황룡 혜남(黃龍慧南)

 

 혜남(慧南)스님은 오랫동안 늑담 회징(泐潭懷澄)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회징스님은 그가 이미 깨쳤다 하여 분좌(分座) 설법케 하니, 남서기(南書記)의 명성은 일시에 자자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자명(慈明)스님의 회하에 이르러 야참(夜參) 법문을 듣고 기세가 꺾여버렸다.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리라 생각하고 세 차례나 침실 밖까지 찾아갔지만 세 차례 모두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러자 “대장부가 의심이 있는 데도 끊어버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라고 개탄하고는 곧바로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 자명스님은 곁에 있던 시자를 불러 가까이에 자리를 마련해 준 후 앉으라 권하였다.

 “저는 실은 의문이 있사옵기에 성의를 다하여 결단을 구하오니, 스님께서는 크게 자비를 내리시어 법보시를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그러자 자명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대중을 거느리고 행각하여 많은 선림에 명성이 자자하니, 깨닫지 못한 곳이 있다면 서로가 이야기하면 될 것인데 굳이 입실(入室)할 것까지야 있겠는가?”

 스님이 재삼 간청해 마지않자 말하였다.

 “그렇다면, 운문 삼돈봉(雲門 三頓棒)의 인연에서 당시 동산 수초(洞山守初)스님은 실제로 몽둥이 맛을 보아야만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실제로 몽둥이 맛을 보아야 할 분수가 있었습니다.”

 “서기의 이해가 이 정도라면 이 노승은 그대의 스승이 될 수도 있지!”

 이에 자명스님은 절을 올리도록 하였으니 혜남스님이 평소 자부했던 바가 여기에서 꺽인 것이다.

 나는 일찌기 영원(靈源)스님에게, “예전에 회당(晦堂)스님이 몸소 적취암(積翠庵)에서 들은 이야기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하여 옛말과 아울러 여기에 기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