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자명스님의 문도들/ 선(善)스님
78. 자명스님의 문도들/ 선(善)스님
복주(福州) 선(善)스님은 자명스님의 으뜸제자이다. 당시 뛰어난 스님으로는 도오오진(道吾吾眞)스님과 양기 방회(楊岐方會)스님을 손꼽았으나, 그들도 모두 선스님을 추앙하였다.
일찌기 금란사(金鑾寺)에 이르니, 가진 점흉(可眞點胸)스님은 자명스님을 친견했다는 자부심 때문에 천하에는 특별히 마음에 새겨둘 만한 인물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와 이야기 한 후 그가 깨치지 못했음을 알고서 비웃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산길을 걷다가 가진스님이 불법을 거론하면서 기봉을 발휘하자 선스님은 조약돌 하나를 주워 바위 위에 놓고서 말하였다.
“그대가 여기에다 일전어(一轉語)*를 놓는다면 그대가 자명스님을 친견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겠다.”
가진스님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리자 선스님은 큰소리로 꾸짖었다.
“머뭇거리며 생각하느라 기봉이 멈췄으니, 알음알이[情識]를 벗어나지도 못하였는데 어떻게 꿈엔들 노스님을 친견하였겠는가. 가거라!”
이에 가진스님은 매우 부끄러워하고 두렵게 생각하여 상화산(霜華山)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명스님은 가진스님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진짜 행각인이란 반드시 시절을 알아야 하는데 무슨 바쁜 일이 있기에 여름 해제가 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곳에 왔는가?”
“선형[善侍者]이 독한 마음으로 사람을 절식시키기에 다시 스님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인가?”
잿마루 위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달은 떠서 강물 속에 부서진다.
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자명스님은 눈알을 부라리고 소리치며 꾸짖었다.
“머리털이 하얗고 이빨이 엉성히 빠져서까지도 오히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생사를 떠날 수 있나!”
가진스님은 감히 머리를 바로 들지 못하고 양 볼의 눈물이 턱까지 흘러내릴 뿐이었다. 한참 후 다시 물었다.
“모르겠읍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자명스님이 대답하였다.
잿마루 위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달은 떠서 강물 속에 부서진다.
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가진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가진스님은 맑은 기품이 뛰어나고 기변(機辯)이 민첩하여 총림에서는 스님을 두려워하였는데, 취암사에서 개법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설법하였다.
“천하 불법이란 한 척의 배와 같은데 사형 대녕 도관(大寧道寬)은 뱃머리에 앉았고 납작머리 혜남은 중간에 있고 가진(可眞)은 노를 잡으니, 동쪽으로 가는 것도 나에 달렸고 서쪽으로 가는 것도 나에 달렸다.”
한편 선스님은 얼마 후 칠민(七閩) 지방으로 돌아왔는데 미치광이처럼 꾀죄죄한 모습으로 거리를 방황하니,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혹자는 만년에 봉림사(鳳林寺)의 주지를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 일전어(一轉語) : 한마디로 상대를 완전히 깨치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