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96. 연수스님의 「종경록」

쪽빛마루 2015. 1. 12. 09:32

96. 연수스님의 「종경록」

 

 내 지난날 동오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서호(西湖) 땅 정자사(淨慈寺)에 머물게 되었는데 살림채 동서편의 회랑쪽에 웅장하고 화려한 두 채의 누각이 있었다.

 그 곳 노승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명 연수(永明延壽)스님은 현수(賢首) · 자은(慈恩) · 천태(天台)의 3종(三宗)이 서로 얼음과 불같이 어울리지 못하여 불법의 완전한 뜻을 알지 못하겠기에, 문도 가운데 종법(宗法) 대의에 정통한 자를 선발하여 양 누각에 머물게 하고, 많은 경전을 널리 읽혀가면서 서로 의문점을 토론하도록 하였다. 스님 자신은 심종(心宗)의 저울이 되어 그들을 공평하게 달아주었다. 또한 대승경론(大乘經論) 60부와 인도 · 중국의 어질고 명망있는 스님 3백 분의 말씀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증명하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백 권의 책으로 완성하여 세상에 전하면서 「종경록(宗鏡錄)」이라 이름하였으니, 그 법보시의 이로움이란 참으로 크며 훌륭하다 하겠다.

 오늘날 천하의 명산대찰에서 그 책이 없는 곳이 없는 데에도 학인들은 죽을 때까지 한차례도 펴보지 않은 채, 오로지 배불리 먹고 실컷 잠자며 근거없는 말로 유희를 삼고 있으니, 그들을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라 하겠는가. 부처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