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동안스님의 「십현담」
97. 동안스님의 「십현담」
동안 상찰(同安常察) 스님은 「십현담(十玄談)」을 지어 ‘정중묘협(正中妙挾)’*의 뜻을 세상에 알렸는데 그 문장이 절묘하고 아름다워 총림에 빛났다. 그러나 세월이 점차 오래됨에 따라 그 본뜻을 많이 잃게 되어, 지금의 「전등록」에 실려 있는 것은 제목까지도 틀린다. 그러나 달관 담영(達觀曇潁 : 989~1060)스님이 편집한 「오가종파(五家宗派)」에서만은 이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내 일찌기 구본(舊本)을 얻어 「오가종파」와 비교해 보니, 약간의 차이가 없지 않았다.
「전등록」에서는 스님의 법계(法系)를 구봉 도건(九峯道虔)스님의 법제자로 기록하였는데, 달관스님은 운거 도응(雲居道膺)스님의 법제자라 하였다. 달관스님이 어디에 근거하여 그러한 사실을 얻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청량 법안(淸涼法眼)스님은 스님과의 시대가 멀지 않으며 스님의 찬을 지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전등록」의 내용과 같은 점으로 살펴본다면 「오가종파」의 논거 또한 의문시된다.
「십현담」의 문장 순서를 살펴보면 그 제목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모두 연결되어 지어졌다. 앞의 다섯 수(首)는 그 요지이며, 뒤의 다섯 수는 이를 실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10수 가운데 8수는 모두 두 글자로 된 제목을 붙였다. 그 뜻이야 비록 일관되지만 귀절이 중첩되어 기복(起伏)이 있다.
첫 게는 심인(心印)이라 하는데 끝 귀절에,
“무심이라도 오히려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無心猶隔一重關]”하고
다시 조사의 뜻[祖意]이라는 게를 지어 그 첫머리에,
“참된 기틀이 어찌 있느니 없느니 하는 일에 떨어지랴[眞機爭墮有無功]”
하였으며 이에 다시 진기(眞機)게를 지어 그 첫머리에,
“어찌 티끌 경계에[塵機] 속박을 주겠는가[豈與塵機作繫留]”하였다. 이에 다음으로는 진이[塵界]게를 지어 그 중간 귀절에
“삼승이 나뉘어질 때 부득이 이름 붙이네[三乘分別强安名]”
하고는, 이어서 삼승(三乘)을 차례로 지은 것이다.
여기까지가 곧 요지이다.
6칙(六則)에 이르러서는 반본(反本 : 근본으로 돌아감)이라 하고 끝 귀절에서는,
“귀향의 노래를 무어라고 부를까?[還鄕曲調如何唱]”
라고 하여, 다시 환향(還鄕)게로 이었다. 그리고 그 게의 끝 귀절에서는,
“더이상 법당에 받쳐 올릴 물건 하나 없어라[更無一物獻尊堂]”
라고 하였다. 이는 정위(正位)의 자리이니 그렇다면 묘협(妙挾)은 아니다. 그러므로 또한 회기(回機 : 기선을 돌리다)게를 지은 것이다. 묘한 기틀은 종지를 잃게 되어 아직도 지견이 남아 있으니, 이것이 큰 병폐라 하여 다시 전위(轉位)게를 지은 것이다. 전위란, 이른바 이류(異類)에서 이류로 가는 것이니, 모두 치우친 것이다. 모름지기 정도(正道)로 돌아가서 혈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하기에 또 다시 일색과후(一色過後)게를 지은 것이니, 여기까지가 실천에 옮기도록 하려는 뜻이다.
「오가종파」에서는 ‘일색과후(一色過後)’는 그대로 썼지만 ‘진이(塵異)’는 ‘진중유이(塵中有異)’라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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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중묘협(正中妙挾) : 평등한 본체 속에 천차만별의 묘용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모든 존재의 실태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