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27. 어부 6수(漁夫六首) <終>

쪽빛마루 2015. 1. 13. 08:00

27. 어부 6수(漁夫六首)

 

1. 만회(萬回)

 

백옥 각대(角帶) 구름도포 까까머리 드러내고

일생동안 껄껄대던 일 그 무슨 까닭일까

아침저녁나절 만리길 돌아오니

의심말라. 대천세계가 터럭 끝에 걸려 있음을

 

밭갈이 모르면서 밭이랑 나눠받고

손님을 마주하면 북 두들길 줄 아는구려

문득 노안(老安)스님과 귓속말 주고 받고

돌아서 밀치고 떠나가니

나의 구문(毬門) 길 막지를 마오.

 

玉帶雲袍童頂露

一生笑傲知何故

萬里廻來方旦暮

休疑慮大千捏在毫端聚

 

不解犂田分畝步

却能對客鳴華鼓

忽共老安相耳語

還推去莫來攔我毬門路

 

 

2. 약산(藥山)

 

학처럼 고고한 정신,

구름처럼 드높은 격조

사람에게 밀려오는 그 기상은

서리내려 천지가 환하듯 하도다.

 

소나무 아래서 보던 경문

다 보지 않았는데

저녁노을 뉘엿하니

푸릇한 연기는 바람에 날리고

시냇물이 누각을 빙 두르니

진기한 보재누각이로다.

 

오직 환히 비출 뿐.

새어 나가지 않아서

영묘하게 살아갈 길

눈앞에 이루었는데

그 누가 기필코 이어줄까.

우뚝한 봉우리의 한마디 소리를

달빛 아래 맑은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노라.

 

野鶴神情雲格調

逼人氣韻霜天曉

 

松下殘經看未了

當斜照茶煙風撼流泉繞

閨閣珍奇徒照耀

 

光無滲漏方靈妙

活計現成誰管紹

孤峯表一聲月下聞淸嘯

 

 

3. 보공(寶公)

 

독룡강(獨龍崗) 아랫길을 오가노라니

지팡이 끝 쓸쓸하고 세간살림 어수선하구나

뒷일을 미뤄건대 눈앞에 선하여라

비결이 아니라면 한 생각에는 고금이 없음을 알지어다.

 

가소롭다 늙은 양무제여 병고도 많기도 할사

웃음 속에 주는 약이 모두가 이리나 호랑이들

촛불 한 자루도 그대에게 건네주지 않고서

애오라지 너를 놀려주노라.

약오르거든 아가씨의 속바지를 벗으시오.

 

來往獨龍崗下路

杖頭落索閑家具

後事前觀如目覩

非讖語須知一念無今古

長笑老蕭多病苦

笑中與藥皆狼虎

蠟炬一枝非囑付

聊戱汝熱來脫却娘生袴

 

 

4. 양공(亮公)

 

하늘꽃은 옥가루되어 법회에 휘날리나

물결 속에 달그림자 어떻게 건지겠소

옆집 노스님의 주석(注釋)을 훔쳐 보고

머리돌려 허공을 보니 뛰어나게 말할 줄 아네

돌아와 학인들에게 거듭거듭 하소연하되

이제까지의 견해는 모두 그대를 속인 터라하네.

강 건너 저 산은 저문 비에 누웠는데

훌쩍 떠나시니 천봉만학에 찾을 곳 없으리.

 

講處天華隨玉塵  波心月在那能取

旁舍老僧偸指注  廻頭覷

虛空特地能言語  歸對學徒重自訴

從前見解都欺汝  隔岸有山橫暮雨

翻然去  千巖萬壑無尋處

 

 

5. 향엄(香嚴)

 

그림떡으로 요기한다 사람들 비웃으니

남양 언덕 작은 암자에 쓸쓸히 돌아온다

대나무 치는 소리에 바야흐로 분명히 깨치고

서서히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아도

본래 면목을 숨길 곳이 없구나.

 

문득 위산을 바라보며 자리를 펴니,

노스님 그 모습 완전히 드러나네.

값진 이 은혜 부모님보다 더 크시니

걸림없고 내밀한 ‘소리 이전의 귀절’을 알아차려야 하리.

 

畫餠充飢人笑汝

一庵歸掃南陽塢

擊竹作聲方惺悟

徐回顧本來面目無藏處

 

却望潙山敷坐具

老師頭角渾呈露

珍重此恩逾父母

須薦取當當密示聲前句

 

 

6. 단하(丹霞)

 

매끄러운 돌바위 길[石頭]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돌아온 후 어찌 망아지[馬祖]에게 짓밟힘 당하랴*

한마디 말에 온 몸의 뼈마디 바리바리 쏟아지니

쓸모 없는 법이 없으면 신령하게 밤낮으로 광명이 통하리라

 

不怕石頭行路滑

歸來那受駒兒踏

言下百骸俱潑撤

無剩法靈然畫夜光通達

 

옛 절의 차가운 날씨에 온 몸이 떨려오니

 

한밤중에 목불상을 모두 불태워*

등짝이 따끈따끈 단꿈 꾸는 기분은 통쾌하도다.

무턱대고 지독시리 매 때린다면

원주(院主)의 수염을 모조리 뽑아주리라.

 

古寺天寒還惡發

夜將木佛齊燒殺

炙背橫眼眞快活

憨抹撻從敎院主無鬚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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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하스님은 처음 마조(馬祖)스님을 뵈었으나 마조스님은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라 하며 석두 희천(石頭希遷)스님을 찾아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석두스님을 찾아 머리를 깎고 다시 마조스님께 왔다. 마조스님이 “어디를 갔다 왔느냐?”하자 “석두에 갔다 왔읍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마조스님이 다시 “석두에 가는 길은 미끄러운데 넘어지지나 않았느냐?”하니 “미끄러져서 넘어졌다면 다시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하였다.

 

* 단하스님이 혜림사(慧林寺)에 묵게 되었을 때 목불상으로 불을 때니 원주가 따지자, 사리를 찾는다고 하였다. 목불상에 무슨 사리가 있겠느냐고 하자 그렇다면 양쪽에 있는 불상마저 태워야겠다고 대꾸했다. 원주는 그 뒤에 눈썹이 빠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