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20. 불안 청원(佛眼淸遠)선사 / 1067~1120

쪽빛마루 2015. 2. 7. 08:14

20. 불안 청원(佛眼淸遠)선사

      / 1067~1120

 

 스님의 법명은 청원(淸遠)이며, 오조 법연스님의 법제자로 공주 이씨(邛州 李氏) 자손이다. 어려서는 유학을 공부하다가 오조 법연스님의 회하에 있으면서 항상 기백을 뽐내었다.

 스님이 오조스님께 법을 물을 때마다 오조스님은 “나는 모른다. 나는 너만 못하다” 또는 “네 스스로 깨닫는 것이 좋겠다” 하니, 오랫동안 오조스님 회하에 있었지만 들어갈 방도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물었다.

 “스님의 문은 너무나 높고 가파라서 저로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스님 밑[座下]에 제가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원례(元禮)수좌의 경지가 나와 같느니라.”

 스님은 곧 그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날씨가 차가운 때라 원례수좌는 불 옆에 앉아 있었다. 스님이 알고 싶은 것을 말하자 수좌는 스님의 귀를 잡아 끌고 가면서 말하였다.

 “나는 모른다. 나는 너만 못하다. 네 스스로 깨치는 것이 좋겠다.”

 “깨우쳐 주기를 원하였는데 서로 돌려가며 놀려만대니 이것이 어찌 학인을 가르치는 법이라 하겠습니까?”

 “네가 만일 깨닫는다면 비로소 오늘의 이 곡절을 알게 될 것이다.”

 스님은 부끄러워하며 급히 지객(知客)의 처소로 돌아와 밤새 좌선하며 끙끙 앓았다. 추위를 느끼고 화롯불을 뒤적이다가 크게 깨치고는 단박에 두 노스님의 마음 씀씀이를 보게 되었다.

 “깊고 깊은 곳을 헤쳐보니 이 조그만 불씨가 있구나. 내 일생사도 이와 같을 뿐이다.”

 그리고는 등불을 켜고 「전등록」을 읽다가 파조타(破竈墮)스님의 인연에 이르러 자신의 깨침과 환하게 부합되어 송을 지었다.

 

그윽한 밤새는 슬피 우는데

옷 걸치고 밤새껏 앉아 있었네

화롯불 뒤적이다 평생일 깨쳐보니

부엌귀신 궁하게 만든 파조타스님이었네

일은 밝은데 사람이 제 스스로 길을 잃으니

간곡한 이야기를 그 누가 화답할꼬

생각하니 길이길이 잊을 수 없는데

문을 열어제치니 지나는 사람 없구나.

忉忉幽鳥啼  披衣終夜坐

撥火悟平生  窮神歸破墮

事皎人自迷  曲談誰能和

念之永不忘  門開少人過

 

 원오스님이 스님이 깨쳤다는 말을 듣고 5경(五更)에 문을 두드렸다. 스님이 깨친 바를 말하자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 ‘청림이 흙을 나른다[靑林搬土]’하는 화두에 대해 ‘쇠수레를 탄 천자가 천하에 내린 칙명’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객(知客 : 불안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석궁중에 사면령을 내렸다.”

 “기쁘다! 사형에게 활인구(活人句)가 있었다니!”

 뒷날 설당 도행(雪堂道行 : 1089~1151)스님이 이 인연을 송하였다.

 

나는 모른다, 나는 너만 못하다 함이여

우습다. 온갖 꽃이 방앗공이에 피었구나

선재동자 부질없이 일백 성을 찾아다니니

언제나 자기 집을 밟아보려나.

我不會兮不如儞  堪笑千花生碓觜

善財謾向百城遊  何會蹈著自家底

 

 불감 혜근(佛鑑慧懃)스님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불(佛)이다 법(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킨 인연을 송하였다.

 

오색구름 그림자 속에 신선이 나타나

손에는 붉은 비단부채를 들고 얼굴 가리니

얼른 눈을 뜨고 신선을 보아야지

신선의 손에 든 부채를 보지 마시오.

彩雲影裏仙人現  手把紅羅扇遮面

急須著眼看仙人  莫看仙人手中扇

 

 스님이 이 송을 듣고 몹시 기뻐하자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이 송은 어디에나 쓸 수 있는 송이다.”

 

 스님이 용문산(龍門山)의 주지로 있을 때 한 스님이 독사에게 물렸다. 스님이 방장실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서 말하였다.

 “이미 용문사의 스님인데 어찌하여 뱀에게 물렸느냐?”

 대중들이 여러 가지로 답하였으나 모두가 맞지 않았는데 고암 선오(高庵善悟 : 1074~1132)스님이 말하였다.

 “과연 대인상(大人相)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말에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오스님이 당시 소각사(昭覺寺)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감탄하였다.

 “용문산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동산스님의도가 쓸쓸하지 않겠다.”

 스님의 「삼자성문(三自省文)」이 세상에 전해오고 있다.

 

 찬하노라.

 

말이 없을 땐 신비롭고

말을 할 땐 사리에 맞는 분

 

하늘에서 내린 골격은 영기가 있고

거룩하게 길러온 몸에는 병이 없구나

 

집안 대대로 유교를 연구하여

일찍이 공자에게 경전을 배우다가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깊은 뜻을 찾으려고

동산 노스님의 심술 궂은 가르침에 고생고생했다네

 

나는 모른다 하신 뜻을 깨닫고 급히 돌아와 좌선하다가

화롯불 휘저어 방편을 찾았고

옛사람이 이르지 못한 경지에 이르러 운력하고 차마시니

맑은 찻단지에 눈같은 파도 일렁인다

 

신선의 손에 들린 붉은비단 부채여

불감스님이 보라는 곳에 눈을 두어 친해짐이 기뻤고

제석궁중에 대사령(大赦令) 선포하니

청림산에서 꼭 죽을 사람을 마음 다해 풀어주었네

 

용문산 만길 낭떠러지에

개인 하늘에 꼬리 태우는 번개가 번뜩이고

천길 되는 깊은 공수(邛水)에

강물을 가로질러 향기뿜는 코끼리를 낳는다

 

방앗공이에 꽃이 핌이여

설당스님이 선재동자의 행각에 비유함을 허락하고

독사에 물린 스님이여

고암스님 대인상이 나타났다 하는 말을 듣는다

 

마음을 설하고 성품을 설함에

다른 사람 관계없이

‘삼자성(三自省)’ 한 편을 지으니

만고 총림에 납자의 표본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