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호구 소륭(虎口紹隆)선사 / 1077~1136
22. 호구 소륭(虎口紹隆)선사
/ 1077~1136
스님의 법명은 소륭(紹隆)이며, 원오 극근스님의 법제자로 화주(和州)사람이다. 처음 장로 숭신(崇信)스님을 찾아뵙고 선의 대략은 알았는데 누군가 원오스님의 어록을 전해주자 그것을 읽고 감탄하였다.
“식초는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도니, 비록 창자와 위를 채워 주지는 못하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입맛을 당기게 한다. 오직 한스러운 것은 아직까지 내가 직접 그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한 일이다.”
마침내 그곳을 떠나 원오스님을 찾아갔다. 하루는 입실하였을 때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보이는 것을 볼 때 그 보는 것은 옳게 보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보이는 것을 떠나서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이란 완전할 수 없다.”
말을 마치고 주먹을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것이 보이느냐?”
호구 소륭스님이 말했다.
“보입니다.”
“머리 위에 머리를 얹고 있는 놈이로군!”
이 말에 스님은 탁 깨쳤는데 원오스님이 꾸짖었다.
“무엇을 보았다는 말이냐?”
“대나무가 빽빽해도 물이 흐르는데도 지장없습니다.”
그때에 원오스님은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 후 장주(藏主)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말하였다.
“소륭장주는 저처럼 유약하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그는 잠자는 호랑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잡았다 놨다를 자재하게 하더라도 모두 금시(今時 : 수행할 것이 있는 경계)에 떨어지고, 잡았다 놨다 하지 않으면 깊은 구덩이에 떨어진다. 그렇다고 바람이 불어도 들어올 틈이 없고 비가 때려도 몸에 묻지 않는 경지에 있다 하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 듣지 못했는가? ‘싸늘한 연못에 비친 달그림자 같이, 고요한 밤에 울리는 종소리 같이, 치는대로 울리나 종은 변함이 없고 물결따라 흔들리나 달은 부서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직은 생사언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신 말을.”
주장자를 뽑아들고 금을 하나 그으면서 말하였다.
“이 금 하나로 도생(道生)법사의 오랜 갈등을 끊어버렸다. 돌이 고개를 끄덕임에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말해 보아라! 무엇을 보고 웃는가. 뒤통수에서 뺨을 보는 사람과는 거래할 것이 못된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눈앞에 법이 없으면 만상이 널려 있고 생각[意]이 눈앞에 있으면 들쑥날쑥하여 가려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눈앞의 법이 아니라야 부딪치는 곳마다 그를 만나며, 귀와 눈으로 이를 수 있는 경계가 아니라야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긴 하나 최고의 관문 빗장을 밟아야 비로소 되었다 하리라. 그렇기에 말하기를 ‘그물과 새장으로도 그를 붙잡아 놓을 수 없고 소리쳐 불러도 돌아보지 않으니 부처와 조사는 자리를 정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처소가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으면 생각[念]을 거둬들이는 고생을 하지 않고서도 누각의 문이 저절로 열리고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아 모든 성에 이를 수 있다.”
주장자를 휙 뽑아들고 금을 그으면서 말을 이었다.
“길에서 죽은 뱀을 보거든 때려 죽이지 말고 밑 없는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오너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의 참 근원입니까?”
“진흙을 물에 뒤섞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는 어떻습니까?”
“짚신 뒤축을 끊어버린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공경하되 마치 목마른 말이 물로 달려가듯 하고, 기연에 응하기를 성난 사자가 돌을 긁어대듯 해야 한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파리는 항아리 속에서 스스로의 즐거움을 누린다. 예전에 비장방(費長房)은 한 선생이 방 위에 호로병을 매달아 놓은 것을 보고서 그를 찾아가 함께 그 속에 들어가 보니 참으로 신선 경계였다고 한다.”
찬하노라.
가슴속에 품은 마음 가을처럼 싸늘하고
웃음띤 말씀은 봄볕처럼 따사롭다
수극(垂棘 : 지명) 구슬을 꿰짝에 넣어두고 좋은 값을 기다리니
소반 위를 구르는 구슬은 그림자 생겨도 흔적이 없어라
은밀히 전한 소실봉의 심법을 사모하여
목마른 말이 바위 아래 우물로 달려가듯 하였고
설명할 수 없는 벽암록의 말씀을 음미하되
초파리가 옹기 속에서 홀로 하늘을 즐기듯 하였네
길이 멀어 짚신 뒤축이 끊어질 때
대도의 근원을 찾았고
대나무 빽빽해도 물 흐르는 데는 지장없다고 하여
거치른 주먹 세운 것을 보았네
큰지팡이 뽑아 들고
한 획으로 갈등을 끊었다는 말에 돌이 고개를 끄덕여 웃었고
일대장경(一大藏經)을 연설해 내니
잠든 호랑이 새끼줄에 묶였네
깊은 연못 찬 칼날은 싸늘한 서리를 머금었는데
어리석은 놈 목을 베어 방앗돌 위에 눕히더니만
옛 골짝 복사꽃이 붉은 비단족자 같을 무렵
바람결에 예쁜 여인과 이별의 말을 나누었도다
길에서 죽은 뱀을 보거든
밑없는 광주리에 담아 오라하니 어디다 쓸 것이며
봄볕에 온갖 새들이 시끄러운데
부질없이 굽은 난간에 기대어 말이 없어라
동산(오조)의 용봉이며
임제의 자손이라
옥 병에 티끌 하나 묻지 않으니
이것이 하나의 별 세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