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진헐 청료(眞歇淸了) 선사/ 1089~1151
11. 진헐 청료(眞歇淸了) 선사
/ 1089~1151
스님의 법명은 청료(淸了)이며, 좌현(左縣)사람으로 속성은 옹씨(雍氏)다. 처음 단하스님을 찾아가 종지를 깨치고 그 후 장로 조조(長蘆祖照 : 1057~1124, 운문종 스님)스님으 찾아뵈었다. 조조스님은 첫눈에 큰 그릇임을 알고서 시자로 명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설법좌를 나눠 앉게 하였다. 얼마 후 조조스님이 노병을 이유로 물러나 스님에게 주지자리를 잇도록 명하니, 학인들은 한결같이 귀의하였다.
개당염향(開堂拈香 : 첫 법문을 하기 전에 향을 올려 자신의 법통을 밝히는 의식) 때, 조조스님은 자신의 가사를 전해주면서 자신에게 향을 올려주기를 바랐는데, 막상 단하 자순스님을 위해 향을 올리는 것을 보고서 좌우의 시자들에게 그 가사를 빼앗게 하였다. 스님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무명가사를 소매 속에서 꺼내입고, 마침내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흔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자! 보아라. 3천대천세계가 온통 뒤흔들리는구나. 운문의 문하에서라면 그렇다치겠지만 이곳 설봉(雪峰) 문하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주장자로 한 차례 탁자를 내려치면서 말하였다.
“3천대천세계가 어디로 갔느냐? 알겠느냐! 긴 장마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어린 싹이 파랗게 자라겠느냐.”
상당하여 말하였다.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올라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똑바로 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걸어왔으나 아직도 세인의 발길이 닿았던 곳이다. 만일 투철하게 깨치면 문 밖을 나서지 않아도 몸은 시방세계에 두루 노닐고 문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항상 집안에 안주하리라. 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시원한 곳으로 달려가 땔감이나 져오는 게 좋겠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오묘한 뜻을 캐면 근본을 잃고 깊은 도를 체득하면 종문을 잃어버리니 한마디에 흐름을 끊어야 보이지 않는 연원까지 마르게 된다. 그러기에 금바늘은 은밀한 곳에서는 바늘 끝이 보이지 않다가 옥실을 꿰었을 때야 보이지 않게 이채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 그것은 아직 둘이 서로 밝혀주는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좋은 솜씨니 못난 솜씨니 하는 것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어떻게 하면 몸을 맡길 수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
“구름과 칡덩굴 빼어난 곳에 푸른 그늘 드리워지고
높고 낮은 바위와 나무는 비취색 관문을 깊숙이 닫았구나.”
雲羅秀處靑陰合 巖樹高低翠鎖深
상당하여 말하였다.
“허깨비 빈 몸이 그대로 법신이다.”
그리고는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말하였다. “보이느냐, 보여? 이렇게 볼 수 있으면 다리 건너 온 시골주막에 술맛이 좋다!”
또다시 춤을 추며 말하였다.
“보이느냐, 보여? 이렇게 보지 못하면 저 건너 언덕에 들꽃이 향기롭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이끼가 옛길을 덮으니 텅빈 데에 떨어지지 않고 안개가 싸늘한 숲을 가뒀는데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겠는가. 낚싯바늘을 은밀히 숨겼으니 어부가 있다고 누가 말하랴. 이렇게 알아차리면 그때부턴 언제나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누가 관문을 뚫을 안목을 갖춘 자가 있느냐? 설령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문 밖을 나가지 않은 사람만이야 하겠는가.”
상당하여 말하였다.
“힘씀을 돌려서 과위에 나아감[轉功就位]은 저쪽으로 가는 것이니 구슬은 형산(荊山)에다 감춰두어야 귀하고, 과위에서 나와서 힘씀을 이루는 것[轉位就功]은 이쪽으로 오는 것이니 붉게 달궈진 화로 위에 눈내리는 봄이로다. 힘씀과 과위를 함께 쓰면[功位俱轉] 온몸이 막힘이 없어 손을 뿌리치고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깊은 밤 석녀가 베틀에 오르니 은밀한 방을 아무도 쓸 사람이 없구나.”
상당하여 말하였다.
“오랜 침묵은 긴요한 일이니 성급히 말하려고 애쓸 것 없다. 석가모니께서도 장난해 주기를 기꺼이 기다렸는데, 어이하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들켜버렸네.
자! 말해 보아라. 무엇을 들켰는가를. 나를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찬하노라.
진짜 좌면(左綿) 토박이가
단하 노스님 친견했구나
가슴 헤쳐보면 확 트인 도량은 강물처럼 도도하여
만경창파 흔적 없고
마음 달 호젓하고 둥근데 그림자도 둥글둥글
천 강에 그 빛을 나눈다
사람들 앞에서 주인을 가려내니
무명가사를 들고서 당장에 바꾸어 입고
시끄러운 곳에서 몸을 돌려
바루봉을 한 발에 걷어차 버렸네
작약꽃 피니 보살님의 얼굴이라
옥난간에 동산(洞山)의 옛 봄볕을 간직하고
하늘거리는 수양버들은 목인(木人)의 눈썹이라
보배거울은 조씨네[曹家] 새벽을 비춘다
거듭 내리는 장마비에
한가한 틈을 타 몇 차례나 주장자 내리치는 일을 쉬었던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
시원한 곳 찾아가 땔감이나 져오는 게 좋겠다
푸른 바위 푸른 나무에 구름과 칡넝쿨이 푸르름을 더하니
흐름을 끊는 한마디는 우열을 가리기 어렵구나
다리 건너 주막에 술맛이 좋고 저 건너 언덕에 꽃향기 그윽한데
법신을 보았으나 상당히 찌들었네
텅 빈 곳에 떨어지지 않아서 진흙소는 달을 보고 울부짖는데
옛 길은 이끼낀 그대로요
손 뿌리쳐 의지할 곳 없고 석녀는 베틀에 오르니
고요한 방을 소제해 줄 사람이 없구나
심부름꾼 아이의 미끼는 향기가 좋아
용연에 꼬리 붉은 잉어를 당기니 펄쩍 뛰며 바늘을 삼키고
자그마한 약초는 신령스러워
남산의 별비사(鼈鼻蛇)를 물리치니 깊고깊은 풀 속으로 도망치누나
공을 굴려 과위에 나아가고 과위를 굴려 공으로 나아감은
밑바닥까지 온통 뒤엎는 것이니
누른 얼굴의 석가노인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벌써 스님네들에게 들켜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