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5. 설두 명각(雪竇明覺) 선사 / 980~1052

쪽빛마루 2015. 2. 7. 08:44

5. 설두 명각(雪竇明覺) 선사

     / 980~1052

 

 

 스님은 지문스님의 법을 이었다. 법명은 중현(重顯)이며 수주(遂州) 사람으로 속성은 이씨(李氏)다. 처음 취미사(翠微寺)에 살다가 그 뒤 설두산에 머물렀는데 그의 법과 도가 널리 퍼져 마침내 운문종의 중흥조라 일컬어졌다.

 

 

 스님이 예전에 대양 경현(大陽警玄)스님 회하에서 지객승으로 있을 때, 객승과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화두를 논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대백(韓大伯)이 옆에 있다가 보이지 않게 가만히 웃었는데 객승이 떠난 후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웃었느냐?”

 “지객스님은 고금을 판가름할 언변은 있으나 고금을 결택할 안목이 없으니 그래서 웃었습니다.”

 “한번 말해보지 않겠나.”

 한대백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토끼 한 마리가 옛길에 튀어나오니

보라매가 보자마자 산 채로 낚아채 갔네

뒤쫓아온 사냥개는 신통한 수 없어서

괜스레 토끼가 있던 고목나무만 쫓아간다.

一兎横身當古路  蒼鷹見便生擒

後來獵犬無靈驗  空向枯樁舊處尋

 

 

 이에 스님은 그를 남달리 생각하여 친교를 맺었다.

 

 

 이전원(李殿院 : 李遵勗 ?~1038)이 지난날 복엄 양아(福嚴良雅)스님을 방문하였을 때 스님은 그곳에 장주(藏主)로 있었다. 마침 이전원과 이야기하던 차에 도사 한 사람과 유학자 한 사람이 찾아오자 이전원이 말하였다.

 “3교(三敎 : 유 · 불 · 선) 가운데 어느 교가 가장 높은가?”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쪽으로 비켜서자 이전원이 말하였다.

 “입이 있는데 왜 말을 하지 않는가?”

 “공자 앞에서 문자쓰기 어렵습니다.”

 “그만! 그만!”

 이전원이 일어서니 스님이 말하였다.

 “조금 전에는 두서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대룡(大龍 : 智洪)스님이 ‘법신이 견고하다[堅固法身]’*는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물음도 알지 못했고

대답 또한 알지 못했네

달빛 차갑고 바람소리 사나울 때

옛 바위에 싸늘한 회나무라

우습구나! 길에서 도 통한 사람을 만나

말과 침묵으로 대하지 않고

손에는 백옥 채찍을 잡고서

여의주를 모조리 깨부수니

깨부수지 않으면 구슬에 흠집만 더한다.

죄를 다스리는 나라 법에는 3천 조항이 있느니...

問會不知   答還不會

月冷風高古巖寒檜   堪笑路逢達道人

不將語默對   手把白玉鞭

驪珠盡擊碎 不擊碎增瑕類

國有憲章三千條罪

 

 남양혜충(南陽慧忠)국사의 ‘무봉탑(無縫塔)’ 공안*을 송하였다.

 

 

무봉탑이여! 보기도 여려우니

맑은 연못에는 푸른 용이 머뭄을 허락하지 않는다

높고 높은 욕계에 그림자 뚜렷하니

천고만고에 사람들에게 보여주네.

無縫塔見還難   澄潭不許蒼龍蟠

層落落影團團   千古萬古與人看

 

 자신의 초상화에 찬을 지었다.

 

 

 

위 아래로 세 번을 가리키고*

피차가 칠마(七馬)*인데

꽃을 들어도 미소짓지 않았음은 무슨 까닭인가

돌을 옥이라 하면 그 그릇은 반드시 갈라지니

물이 하늘로 솟는 것이지 달이 밑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다

알 수 없구나, 누가 구경꾼인지

上下三   指彼此七馬

拈花未曾微笑何也   石謂玉兮器必分

水凌虛兮月非下   不知誰是旁觀者

 

 중곡스님[重郜禪者]을 떠나 보내며 송을 지었다.

 

 

봄비는 기름같이 촉촉하고

봄 구름은 학처럼 펼쳐졌는데

이쪽에서 저쪽에서

갑자기 그쳤다가 다시 쏟아지니

메마른 풀줄기에는 물이 오르고

바람은 유우자적히 불어는구나

그윽한 돌은 조각조각 흩어지니

먼 하늘 또한 위태롭구나

한 송이 꽃에서 나온 다섯 잎새는 서로 닮지 않았고

홀로 떠가는 외로운 달은 스스로를 알고 있었네

스스로를 알고서 위나라 지나서 양나라 간 것은 부질없는 일이요

자취를 감추려 하나 자국은 저절로 남는 것

예전에 동정호를 사랑함은

물결 속에 일흔 두 봉우리가 푸르렀기 때문인데

이제 한가히 누워 옛일을 생각하니

노행자(육조스님) 돌 병풍에 기대어 계셨음이 기억에 새롭다.

春雨如膏  春雲如鶴

忽此忽彼  乍休乍作

枯荄離離  維風太遲

幽石片片  遼空亦危

一花五葉兮不相似  獨運孤明兮還自知

還自知歷魏遊梁徒爾  爲晦跡自貽圖畫

當年愛洞庭  波心七二峯靑

如今高臥思前事  添得盧公倚石屛

 

 

 찬하노라.

 

 

위나라 제후의 열두 수레를 비추던 구슬이요

조나라의 열다섯 성과 맞바꾸려던 구슬이로다

 

 

민산과 아미산(峨眉山)의 빼어난 정기 타고나

빛나는 눈썹 지니셨고

경수 위수 흐름을 나누어

마음의 근원에 이었네

 

 

만상의 껍질을 벗겨

비단 문장 구사하는 소동파의 재주를 독차지했고

5종(五宗)을 칭찬하고 깎아내리니

공자의 춘추필법보다도 풍부하네

 

 

수부(遂府)의 바리때에 자루를 붙이고

황매산 한밤중의 전법이 정통이 아님을 비웃으며

냉천사(冷泉寺)의 똥막대기[智門光祚]에서 빛이 뻗어나옴을 보고

운문스님의 한마디 말씀에 받들 만한 진실이 담겨있음을 믿었노라

 

 

백옥의 채찍으로 여의주를 친다 해도 흠집이 생기지 않으니

그 빛은 밝은데 차갑기는 재[灰]와 같고

무봉탑은 맑은 연못 같아서 용이 사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그림자는 또렷한데 까만 옻칠을 한 것 같구나

 

 

고금을 평하는 안목 없어

보라매가 한대백의 길목을 지키다가 나꿔채 갔고

유 · 불의 높낮이를 구분하여

이전원의 늙은 호랑이가 온몸에 땀나게 하였네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일찍이 염화미소한 일 없었는데

삼지(三指) 칠마(七馬)는 말하여 무엇하며

소림사 눈내리는 밤에 애당초 팔 자르고 마음 편히 한 일 없었는데

오엽일화(五葉一花)는 부질없이 정통을 지적한 일이로다

 

 

취봉사에 주지해도 좋고 설두산에 주지해도 좋으나

끓는 가마솥 기름을 개가 핥는 일이며

조사선을 말하고 문자선을 말하나

새로 바른 흙벽에 달팽이가 기어가는듯 하구나

 

 

천길 높이에서 뿜어내는 눈가루가 폭포 이루어

가슴속에 쌓인 회포 흘려보내고

동정호 일흔두 봉이 돌병풍 이룸을 사랑하여

그림책에 수록해 돌아왔네

그 높은 풍모 뛰어난 운치는

옛부터 여지껏 오직 한 사람

북두같고 태산같아

우러러보면 더욱 높아지고

바라보나 따라갈 수 없구나.

----------------------

* 한 스님이 대룡스님에게 “육신[色身]은 허물이 없어지는데 무엇이 견고한 법신입니까?”하고 물으니, “산에는 비단같이 꽃이 피고 개울물은 쪽빛으로 잔잔하다”하였다.

* 혜충국사가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깨닫고 대종(代宗)에게 하직을 고하니 대종이 말하였다. “국사께서 열반에 드신 후 저는 무엇을 기억해 두어야 하겠습니까?” “시주에게 고하노니, 하나의 무봉탑(無縫塔)을 세워주시오.”“스승께서 탑을 만들 본을 떠 주십시오.”국사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알겠는가?”“모르겠습니다.”“내가 떠난 뒤에 응진(應眞)이라는 시자가 도리어 이 일을 알 것이오.”

* 하늘 땅 자신을 가리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말했던 석존의 탄생이야기.

* 7가지 번뇌를 모두 벗어난 사람. 유가에서는 순양(純陽)을 간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