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11. 원통 법수(圓通法秀) 선사 / 1027~1090

쪽빛마루 2015. 2. 7. 08:51

11. 원통 법수(圓通法秀) 선사

       / 1027~1090

 

 

 스님은 천의선사의 법을 이었다. 법명은 법수(法秀)이며, 진주사람으로 속성은 신씨(辛氏)다. 스님의 어머니가 노승이 찾아와 잠자는 꿈을 꾸고서 임신하였다. 이에 앞서 맥적산(麥積山)에 한 노승이 있었는데 응건사(應乾寺) 노(魯)스님과 친분이 좋아 늘 노스님을 따라 행각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노스님은 그가 늙었다고 거절하니 그 노승이 떠나면서 “뒷날 죽포파(竹鋪坡) 앞으로 나를 찾아오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얼마 후 죽포파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서 노스님이 그곳을 찾아가보니 어린아이가 노스님을 보고서 한번 씽긋 웃었다. 그 후 세 살 때 노스님을 따라가 귀의하기를 원하였으며 19세에 승과에서 도첩을 얻고 강원에서 부지런히 공부하여 「원각경」과 「화엄경」을 익혀 깊은 뜻을 묘하게 터득하였다.

 때마침 무위(無爲) 땅 철불산(鐵佛山) 천의스님이 법석이 성하다는 말을 듣고 그 길로 달려가 찾아 뵙고 절을 올리자 천의스님이 물었다.

 “좌주는 무슨 경을 강하느냐?”

 “화엄경을 강합니다.”

 “화엄경은 무엇으로 종지를 삼는가?”

 “법계(法界)로 종지를 삼습니다.”

 “법계는 무엇으로 종지를 삼는가?”

 “마음으로 종지를 삼습니다.”

 “마음은 무엇으로 종지를 삼는가?”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천의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이란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천지차이로 벌어지니 그대 스스로 본다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한 스님이 “백조 지원(白兆志圓)스님이 보자 장서(報慈藏嶼)스님에게 ‘알음알이가 생기면 지혜가 막히고 생각이 변하면 본체가 달라진다[情生智隔想變體殊]’하였는데 ‘알음알이가 생겨나기 전에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보자스님은 ‘막혔다[隔]!’라고 답하였다”는 화두를 들어 말하는 것을 듣고 갑자기 깨쳤다. 곧바로 방장실로 찾아가 자신이 깨친 바를 말하니 천의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참다운 법그릇이다. 우리 운문종은 뒷날 그대에 의해 행하여질 것이다.”

 스님은 천의스님을 섬긴 지 8년만에 수좌로 천거되었고 사면산(四面山)의 주지로 세상에 나갔다가 뒷날 본산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 동안 차갑게 앉아 있다가 신광(神光)에게 간파당했으니 이제는 옥인지 돌인지 가리기 어렵고 오직 삼끈으로 행전을 묶고 종이 옷으로 몸을 감쌀 줄만 안다. 알겠느냐! 나를 보고 웃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비웃는 사람은 적다.”

 

 

 대중에게 말하였다.

 “이 산승은 불법을 설할 줄 모른다. 그저 인연따라 서로 부르면 한 잔의 차를 마실 뿐인데 그곳에도 조사의 오묘한 비결은 없다. 참선하는 사람이 만일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저울추를 밟다보면 무쇠같이 딱딱할 것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찬 비는 가늘게 내리고 삭풍은 사납게 불어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구르고 나무뿌리가 뽑히고 가지가 운다. 이럴 때 여러분은 그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해 보아라. 바람은 무슨 색깔이더냐? 만일 안다면 그대가 안목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겠지만 모른다면 서로 속이고 있음을 의심치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생사를 떠나지 않고서도 열반에 들어가고 마귀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고서도 부처의 경계에 들어갑니까?”

 “찰흙으로 소의 젖줄을 발라버려라.”

 “스님의 대답에 감사드립니다.”

 “조금전에 뭐라고 했었지?”

 그 스님이 무어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스님은 ‘악!’ 하였다.

 

 

 스님은 성품이 냉엄하여 총림에서는 스님을 ‘철면(鐵面)’이라 하였다.

 당시 이백시(李伯時)는 말을 잘 그려 거의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스님은 권하기를 “그대는 말 뱃속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보라!” 하니 이백시는 느낀 바 있었다. 이를 계기로 관세음보살 상을 그리도록 바꾸라고 하니, 그는 이 권유를 따랐다. 또한 황산곡(黃山谷 : 黃庭堅)이 남녀의 애정을 노래하는데 능하여 사람들은 다투어 그의 시를 애송했는데 스님이 이를 꾸짖자 황산곡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도 말 뱃속으로 넣으려고 하시오?”

 “공은 연애시를 지어 사람의 마음을 방탕케 하였으니, 말 뱃속에 들어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날까 두렵다.”

 황산곡은 깜짝 놀라 이를 그만두었다.

 

 

 찬하노라.

 

 

아무 것도 거치적거릴 게 없는데

어찌하여 가다 말다 하는가

 

맥적산 꿈속에 몸을 뒤집으니

죽포파에서의 웃음 속에는 독이 담겼네

 

정수리의 바른 안목은

천지를 물거품과 같이 보았고

궁궐에 노니는 마음은

강호를 올가미로 여겼네

 

알음알이 생기면 지혜가 막힌다는 보자스님의 화두를 깨쳐

온몸에 식은 땀 흘렸고

화엄의 법계가 마음을 근본함을 가리키니

헛꽃이 눈을 어지럽혔네

 

현묘한 가운데 스스로 깨달았으니

옥팔찌[玉連環]를 잘 아는 이 몇이나 되었으며

오묘한 경지 전할 수 없는데

한 마리 개미는 실을 끌어 구곡주(九曲珠)를 잘도 꿰누나

 

붉은 흙으로 소 젖줄을 바름이여

불경계 마경계에 들어가니 실 끝에 매달린 목숨같고

생철로 얼굴 가죽을 쌌으나

용과 뱀을 가리는 기봉은 화살촉을 씹듯 하도다

 

금망치 그림자 손바닥 위에서 둥글게 맴도나

모서리가 뽀족하고

보검의 차가운 빛 눈썹에 걸리니

칼날이 촘촘하구나

 

말그림으로 오묘한 경지라도 말 뱃속에 들어간다는 말에

이백시 놀라 잠깨우고

애정시로 사람을 현혹하니 지옥에 떨어진다 하여

황산곡을 두려움에 떨게 했네

 

천의스님의 붉은 용광로 속에서 달궈져나오니

금인지 놋쇠인지 가리지 못하겠고

소림사 깊은 눈 속에 앉았으니

옥과 돌을 가리기 어렵구나

 

나는 불법을 설할 줄 모르고

인연 닿는대로 한 잔의 차나 마신다 하면서

또 언제 비로 모래를 불어 날리고

바람으로 나무뿌리 뽑을 줄 알았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