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태 덕소(天台德韶) 선사 / 891~972
2. 천태 덕소(天台德韶) 선사
/ 891~972
스님의 법명은 덕소(德韶)이며, 법안스님의 법제자로 처주(處州) 용천 진씨(龍泉陳氏) 자손이다. 어려서 용귀사(龍歸寺)에 귀의하여 출가였고 18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용귀사를 떠나 용아 거둔(龍牙居遁 : 835~923)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웅웅지존(雄雄之尊 : 第六天의 魔王)은 어찌하여 가까이 할 수 없습니까?”
“불에다 불을 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갑자기 물이 밀려오면 그땐 어떻게 합니까?”
“그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또 물었다.
“하늘이 만물을 덮어주지 않고 땅이 실어주지 않는다 하니 이는 무슨 이치입니까?”
“원래 그런 것이다.”
스님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가르침을 청하자 용아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을 그대 스스로가 깨닫게 될 것이다.”
그 후 스님은 통현봉(通玄峰)에서 목욕을 하다가 그 뜻을 깨치고 용아산을 바라보며 향을 올리고 절하면서 말하였다.
“그 당시 용아스님이 나에게 이치를 설법해 주었더라면 오늘 날 나는 분명히 그를 욕했을 것이다.”
소산 광인(疏山匡仁)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백겹 천겹으로 둘러쌓인 곳은 누구의 경계입니까?”
“왼쪽으로 꼬아만든 가시돋힌 오랏줄로 귀신을 묶는다.”
“고금에 떨어지지 않는 경지를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말하지 않겠다.”
“무엇 때문에 말해주지 않으십니까?”
“그 속에는 유무(有無)를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스님께서 좋은 설법을 하셨습니다.”
이에 소산스님은 깜짝 놀랐다.
이와같이 54명의 선지식을 찾아 뵙고 나서 법안스님을 찾아뵙자 법안스님은 한번 보고 큰 그릇이라 여겼다. 그러나 스님은 그만 참문을 게을리하고 그저 대중에 섞여 있을 뿐이었는데 하루는 법안스님이 법당에 오르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계의 한 방울 물입니까?”
“조계의 한 방울 물이로구나.”
스님은 그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법안스님에게 아뢰자 법안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뒷날 국왕의 스승이 되어 조사의 도를 크게 빛낼 것이니 내 그대만 못하다.”
그 후로 여러 총림의 갖가지 주장과 고금의 난해한 관문을 함께 풀어가며 조금도 미진함을 남겨놓지 않았다.
건우 원년(乾祐元年 : ?~948) 충의왕(忠懿王)이 왕위를 계승하자 스님에게 사신을 보내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대중에게 말하였다.
“옛 성인께서 학인을 가르치신 방편은 마치 항하수 모래알처럼 많지만 육조대사께서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 움직인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곧 무상(無上)의 심인(心印)이며 지묘한 법문이다. 육조 문하의 선객이라 자처하는 우리들로서 어떻게 해야 조사의 뜻을 알겠는가? 만일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 망령되게 움직이는 것이다’라거나 ‘바람과 깃발을 들추지 말고 바람과 깃발이 있는 곳에서 통하여라’라거나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곳은 어디냐?’라거나 ‘다만 사물을 통해 마음을 밝힌 것이니 사물을 인식할 필요가 없다’라거나 ‘색 그대로가 공이다’라거나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데에서 깨쳐야 한다’는 말들은 조사의 뜻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알아야 하겠는가? 여기에서 깨치면 어느 법문이나 모두 밝히게 될 것이며 수많은 부처님의 방편도 일시에 환히 깨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기서 깨치지 못하면 설령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괜스레 마음만 고될 뿐, 하나도 올바른 깨침이 없게 될 것이다.”
통현봉(通玄峰)에 주석하면서 게송을 지었다.
통현봉 마루턱은
인간세상 아니어니
마음 밖엔 법이 없다 하건만
눈에 보이는건 푸른 산뿐일세.
通玄峰頂 不是人間
心外無法 滿目靑山
법안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는 “이 게송만으로도 우리 종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다.
대중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만일 한 법만 모자라도 법신을 이룰 수 없고 한 법만 남아도 법신을 이루 수 없다. 또한 한 법이 있어도 법신을 이룰 수 없고 한 법이 없어도 법신을 이룰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반야의 참 종지이다.”
또 말하였다.
“모든 문답은 마치 바늘과 칼끝을 던져 맞추는 것과 같아서 털끝만한 어긋남도 없으니 통하지 못할 일이 없고 갖추지 못할 이치가 없다. 진실로 모든 언어와 모든 삼매, 가로 세로와 깊고 얕음, 숨고 드러남, 가고 오는 모두가 많은 부처의 실상이 나타나는 문이다. 다만 당장에 몸소 체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몸조심 하여라.”
또 말하였다.
“말이 나와도 소리가 없고 색 이전이라 형체[物]지울 수 없어야 비로소 천하가 태평하고 대왕이 장수하게 될 것이다. 오래 서 있느라 수고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스님이 말하기를 ‘하늘을 오르는데 사다리를 쓰지 않고 온누리를 다녀도 다니는 길이 없다’고 하셨는데 무엇이 하늘을 오르는데 사다리를 쓰지 않는 것입니까?”
“터럭끝만한 틈도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이 온 누리를 다녀도 다니는 길이 없는 것입니까?”
“조금 전에 내가 너에게 무어라고 말하였더냐?”
“법안스님의 보인(寶印)을 스님께서 친히 받으셨는데 오늘 이회중에서 누구에게 전하시겠습니까?”
“두둥둥 북을 칠 때 한 쪽을 치면 양쪽에서 소리가 울린다.”
“옛말에 ‘허공을 두드려 딱 딱 소리가 나니 돌사람과 나무사람이 함께 대답을 하며, 유월에 어리럽게 눈이 내리니 여래의 대원각(大圓覺)이라’하였는데 무엇이 허공을 두드리는 경지입니까?”
“곤륜(崑崙 : 곤륜산에 사는 까만 인종)이 무쇠 바지를 입었는데 몽둥이로 칠 때다 한 발자국씩 걷는다.”
“그렇게 하면 돌사람과 나무사람이 함께 대답을 합니까?”
“네가 그들이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느냐?”
“음광불(飮光佛 : 가섭)이 석가의 한 발 여섯 자되는 가사를 손에 들고 계족산에서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다가 한 발 여섯 자되는 가사를 천 자나 되는 미륵의 몸에 걸쳐주어도 매우 잘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석가의 키는 한 발 여섯자, 미륵은 천 자인데 그렇다면 미륵의 키를 짧게 하는 법을 알았던 것입니까, 짧은 가사를 길게 하는 법을 알았던 것입니까?”
“그대가 더 잘 알 것이다.”
이때 영명스님이 소맷자락을 떨치며 나가버리자 이렇게 말하였다.
“어린 아이야! 이 산승이 만일 너의 말에 대답했다면 마땅히 인과의 업보를 받을테지만, 만일 네가 내 말을 부정하다면 내 너를 보겠다.”
영명스님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7일간 피를 토하자 부광(浮光)스님이 속히 가서 참회를 하라고 권하였다. 영명스님이 방장실을 찾아가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스님의 자비로 저의 참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땅에서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서는 법이다. 나는 너를 넘어뜨리거나 일으켜 세워 준 적이 없다.”
“저의 참회를 허락해 주신다면 죽을 때까지 스님을 모시겠습니다. 저를 위해 한마디 해주십시오.”
“부처님마다 도는 똑같지만 높고 낮음이 분명하고 석가와 미륵은 진흙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천태종에 의적(義寂)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가 곧 나계(螺溪)스님이다. 나계스님은 여러 차례 말하였다.
“지자(智者 : 538~597)대사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에 많이 유실되어 걱정이었는데 오늘날 신라에는 천태 교본(敎本)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스님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누가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왕에게 아뢰어 바다 건너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교본을 모두 베껴오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그 교본이 세상에 널리 전해오고 있다.
찬하노라.
마음도 법도 모두 잊고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걸으니
하늘을 오르는데 사다리를 빌리지 않고
온 누리를 누벼도 다니는 길이 없도다
번갯불이 번뜩이는 기봉으로
석두(石頭)산성을 불사르고
손에는 천검을 거머쥐고
웃으며 용귀사를 나온다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데
용아스님 무른 밥 올려 쓸모없는 신에게 제사드림이 괴롭고
백겹 천겹으로
소산스님 왼쪽으로 꼬는 가시 오랏줄에 귀신을 묶었도다
가고 옴과 숨고 나타남에 많은 부처의 실상을 밝혔으나
요는 겉치레만 번지르르하였고
모자라고 남고 있고 없는 것으로 반야의 참 종지를 말했으나
쓸모없는 일에 아무런 상관 없구나
조계의 한 방울 물이라는 말에
현묘한 기틀을 깨쳐 완두콩을 진주라 하고
통현봉 가리키며 눈에 가득한 청산이라 하니
종문을 일으켜 세워 단 참외가 쓴 박이 되었구나
조사 문하의 객으로
바람과 깃발을 구별함은 진창에 처박히는 일이요
대왕은 장수하는 사람이나
소리와 색을 벗어났다 함은 모래를 던지고 흙을 뿌리는 것일세
법안스님이 친히 전한 보배 도장 받아서
가죽 북 잡으니 양쪽에서 울리고
나무사람이 대답하여 허공을 두드리니
곤륜이 무쇠 바지 입었구나
남악의 천태교종이 없어질까 염려하여
신라국을 찾아가 교본을 베껴오고
석가와 미륵의 몸과 옷의 짧고 긴 것을 논하여
흥교승(興敎僧)을 피 토하게 하였도다
제방의 갖가지 주장과 고금의 어려운 관문들을 해결하는데
자취 남기지 않았으니
한 나라의 스승되어 천하에 명성을 전함이 헛되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