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2. 시중 11~13.
임제록
2. 시 중
11. 3구(三句)
"무엇이 참 부처이며 참법이며 참도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란 마음이 청정한 것이고, 법이란 마음이 밝은 것이며, 도란 어디에나 걸림없는 깨끗한 빛이다. 이 셋은 하나로서 모두가 빈 이름일 뿐, 사실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생각생각 마음에 틈새가 없다. 달마스님께서도 인도에서 오신 뒤 오직 남에게 속지 않은 사람을 찾았을 뿐이다. 뒤에 이조 혜가스님을 만났는데, 혜가스님은 한마디 말끝에 딱 깨닫고, 이제껏 해왔던 공부가 헛된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지금의 내 경계는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다. 만약 첫째 구절에서 깨달으면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고, 둘째 구절에서 깨달으면 인간과 천상계에 스승이 되며, 셋째 구절에서 깨달으면 자기조차도 구제하지 못한 것이다."
問, 如何是眞佛眞法眞道오 乞垂開示하소서 師云, 佛者는 心淸淨이 是요 法者는 心光明이 是요 道者는 處處無礙淨光이 是라 三卽一이니 皆是空名 而無實有니라 如眞正作道人은 念念心不間斷이라 自達磨大師 從西土來로 祇是覔箇不受人惑底人이니 後遇二祖하야 一言便了하고 始知從前虛用功夫니라 山僧今日見處는 與祖佛不別하니 若第一句中得하면 與祖佛爲師요 若第二句中得하면 與人天爲師요 若第三句中得하면 自救不了니라
12. 조사서래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만약 뜻이 있다면 자기조차도 구제하지 못한다."
"뜻이 없다 하신다면 이조께서 어떻게 법을 얻었습니까?"
"얻은 것이 얻지 않은 것이다."
"얻지 않은 것이라 한다면, 얻지 않는다 하는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대들이 어디에서나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애닯다 장부여!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는구나' 하였다. 그대들이 말끝에서 스스로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더이상 다른 데서 찾지 않고, 이 몸과 마음이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서 당장에 아무 일 없게 되면 바야흐로 법을 얻었다고 한다.
대덕들이여! 나는 오늘 부득이한 형편으로 이처럼 너저분한 잔소리를 뇌까리지만 너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처럼 많은 도리는 사실 없는 것이니, 쓰고자 하면 곧 쓰고 쓰지 않으면 곧 쉬는 것이다.
問, 如何是西來意오 師云, 若有意하면 自救不了니라 云, 旣無意인댄 云何二祖得法고 師云, 得者는 是不得이니라 云, 旣若不得인댄 云何是不得底意오 師云, 爲儞向一切處하야 馳求心不能歇일새 所以로 祖師言, 咄哉라 丈夫여 將頭覔頭라하니라 儞言下에 便自回光返照하야 更不別求하고 知身心與祖佛不別하야 當下無事하면 方名得法이니라 大德아 山僧今時에 事不濩已하야 話度說出許多不才淨하니 儞且莫錯하라 據我見處하면 實無許多般道理요 要用便用하고 不用便休니라
제방에서는 6도만행을 불법이라고 말들하지만 나는 이것을 장엄하고 불사를 짓는 일일 뿐, 불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재계(齋戒)를 잘 지키며, 가득 찬 기름그릇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갈 정도가 된다* 해도 도를 보는 안목이 밝지 못하면 모두가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으니 밥값을 치를 날이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도에 들어와 이치를 통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신도의 시주를 갚아야 하니, 장자가 81살이 되자 그의 나무에 버섯이 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나아가 외로운 산봉우리에서 홀로 살며, 아침[卯時] 한때만 공양을 하고, 오래 눕지 않고 앉아서만 정진하며, 하루 여섯때로 도를 닦는다 하여도, 모두가 업 짓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머리 · 눈 · 골수 · 뇌와, 나라 · 성곽 · 아내 · 자식과 코끼리 · 말 · 일곱 가지 값진 보배들을 모조리 다 희사한다 해도 이런 견해는 모두가 몸과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에 괴로운 과보를 다시 부르니, 순일무잡하게 아무 일 없느니만 못하다. 나아가 10지만심(十地滿心)보살조차 이 도인들의 자취를 찾는다 하여도, 마침내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하늘신이 기뻐하고 지신(地神)이 그의 발을 받들며, 시방 부처님들도 모두 칭찬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 법문을 듣는 이 도인이 작용하는 곳에는 아무 자취도 없기 때문이다."
祇如諸方이 說六道萬行하야 以爲佛法하나 我道 是莊嚴門佛事門이요 非是佛法이니라 乃至持齋持戒하며 擎油不㴸하야도 道眼不明하면 盡須抵債하야 索飯錢有日在니라 何故如此오 入道不通理하면 復身還信施하나니 長者八十一에 其樹不生耳라하니라 乃至孤峯獨宿하며 一食卯齋하며 長坐不臥하며 六時行道하야도 皆是造業底人이요 乃至頭目髓腦와 國城妻子와 象馬七珍을 盡皆捨施하야도 如是等見은 皆是若身心故로 還招苦果하나니 不如無事하야 純一無雜이니라 乃至十地滿心菩薩도 皆求此道流蹤跡하나 了不可得이니 所以로 諸天이 歡喜하며 地神이 捧足하야 十方諸佛이 無不稱歎하나니 緣何如此오 爲今聽法道人이 用處無蹤跡일새이니라
13. 대통지승불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10겁 동안 도량에 앉아 있었으나 불법이 나타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대통(大通)'이란 것은 자기 자신이 어디서나 만법이 그 성품과 모양이 없음을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지승(智勝)'이라 하는 것은 어디서나 아무 법도 얻을 것이 없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불(佛)'이라 하는 것은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법계를 사무쳐 비추는 것을 이름한다. '10겁 동안 도량에 앉았다'고 하는 것은 10바라밀을 닦은 것이다. '불법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10바라밀을 닦은 것이다. '불법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부처는 본래 나지 않고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거기서 무엇이 나타나겠는가.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가 다시 부처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이르기를, '부처님은 항상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問, 大通智勝佛이 十劫을 坐道場호되 佛法이 不現前이라 不得成佛道라하니 未審此意如何오 乞師指示하노이다 師云, 大通者는 是自己於處處에 達其萬法無性無相을 名爲大通이요 智勝者는 於一切處에 不疑하야 不得一法을 名爲智勝이요 佛者는 心淸淨光明이 透徹法界를 得名爲佛이요 十劫坐道場者는 十波羅蜜이 是요 佛法이 不現前者는 佛本不生이며 法本不滅이라 云何更有現前이리요 不得成佛道者는 佛不應更作佛이니 古人이 云, 佛常在世間 而不染世間法이라하니라
도 배우는 이들[道流]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니,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부처도 없고 법도 없어서, 나타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명칭과 말, 개념과 문장일 뿐이니, 어린 아이를 달래고 병에 따라 약을 쓰는 것과 같다. 명칭과 개념이 아니고 도리어 그대들 눈앞에 소소영령하게 비추어 느끼고 듣고 알며 반조해 보는 그것이 모든 것에 명칭과 개념을 붙이는 것이다.
대덕들이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을 지어야 바야흐로 해탈하게 된다."(「정명경」 제자품에 이르기를 '오역죄의 모양으로써 해탈을 얻는다'고 하였다)
道流야 儞欲得作佛인댄 莫隨萬物하라 心生하면 種種法生하고 心滅하면 種種法滅이라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니라 世與出世에 無佛無法도 亦不現前하며 亦不曾失이니라 設有者라도 皆是名言章句니 接引小兒하난 施設藥病이며 表顯名句니라 且名句는 不自名句요 還是儞目前昭昭靈靈하야 鑑覺聞知照燭底가 安一切名句니라 大德아 造五無間業하야사 方得解脫이니(淨名經第子品에 云, 以五逆相而得解脫이라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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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격하게 수행할 것을 비유함. 「대반열반경」 고귀덕왕품(高貴德王品)에 나오는 이야기.
* 중인도 한 장자집의 나무에 버섯이 났는데, 그 버섯은 그의 시주를 받았던 스님이 몸을 바꿔 빚 갚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