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4. 행록 11~21.
임제록
4. 행 록
11. 용광스님의 낭패
스님이 행각할 때 용광(龍光)에 이르렀는데, 용광스님은 상당하여 설법하고 있었다. 스님은 나와 물었다.
"칼날을 뽑지 않고,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습니까?"
용광스님이 자리에 똑바로 앉자, 스님이 말하였다.
"큰 선지식께서 어찌 방편이 없으시겠습니까?"
용광스님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싹[嗄 : 칼로 물건을 짜를 때 나는 소리]!"
스님이 손가락질하면서 말하였다.
"이 노장이 오늘 낭패를 보았구나."
師行脚時에 到龍光하니 光이 上堂이라 師出問 不展鋒鋩하고 如何得勝고 光이 據坐한대 師云, 大善知識이 豈無方便고 光이 瞪目云, 嗄하니 師以手指云, 這老漢이 今日敗闕也로다
12. 평화상을 만나다
삼보에 갔을 때 평화상(平和尙)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황벽에서 왔습니다."
"황벽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던가?"
"황금 소가 간밤에 진창에 빠져 아직까지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가을 바람에 옥피리를 부니 이 소리 알아들은 다 누구인가?"
"곧바로 만 겹 관문을 뚫으니 맑은 창공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대의 이 물음이 매우 고준(高峻)하구나."
"용이 금빛 봉(鳳) 새끼를 낳았는데, 푸른 창공을 뚫고 날아 갑니다."
"자, 앉아서 차나 들게."
到三峯하니 平和尙이 問 什麽處來오 師云, 黃檗來니라 平云, 黃檗이 有何言句오 師云, 金牛昨夜에 遭塗炭하야 直至如今不見蹤이로다 平이 云, 金風이 吹玉管하니 那箇是知音고 師云, 直透萬重關하야 不住淸霄內로다 平云, 子這一問이 太高生이로다 師云, 龍生金鳳子하야 衝破碧瑠璃로다 平云, 且坐喫茶하라
평화상이 다시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떠나왔는가?"
"용광에서 왔습니다."
"용광스님은 요즈음 어떻든가?"
스님은 그냥 나가버렸다.
又問, 近離甚處오 師云, 龍光이니라 平이 云, 龍光이 近日如何오 師便出去하니라
13. 대자스님을 만나다
대자(大慈)에 갔을 때, 대자스님은 방장실에 앉아 있었는데 스님이 물었다.
"방장실에 단엄히 앉아 계실 때에는 어떠십니까?"
대자스님이 대답했다.
찬 소나무 한결같은 빛깔은 천년토록 빼어났고
촌 늙은이 꽃 꺾어 드니 온 나라에 봄이로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고금에 대원경지의 바탕을 영원히 초월했음이여
삼산은 만 겹 관문으로 갇혀버렸도다
대자스님이 대뜸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도 똑같이 고함을 쳤다. 대자스님이 "어떤가?" 하니 스님은 소매를 뿌리치고 바로 가버렸다.
到大慈하니 慈在方丈內坐어늘 師問, 端居丈室時如何오 慈云, 寒松一色은 千年別이요 野老拈花萬國春이로다 師云, 今古永超圓智體여 三山이 鎖斷萬重關이로다 慈便喝한대 師亦喝하니 慈云, 作麽오 師拂袖便去하니라
14. 화엄스님을 만나다
양주의 화엄(華嚴)에 갔을 때, 화엄스님이 주장자에 기대 조는 시늉을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노스님께서 조시면 어떻게 합니까?"
"훌륭한 선객은 정말 다르구나."
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야! 차를 다려와서 큰스님께서 드시도록 하여라."
화엄스님이 이에 유나를 불러 말하였다.
"이 스님을 세째 자리[第三位 : 後堂의 首座]로 모시도록 하여라."
到襄州華嚴하니 嚴이 倚拄杖하야 作睡勢어늘 師云, 老和尙이 瞌睡作麽오 嚴이 云, 作家禪客이 宛爾不同이로다 師云, 侍者야 點茶來하야 與和尙喫하라 嚴이 乃喚維那호되 第三位에 安排這上座하라
15. 취봉스님을 만나다
스님이 취봉(취봉)에 이르자 취봉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황벽에서 왔습니다."
"황벽스님은 무슨 법문으로 학인을 지도하는가?"
"황벽스님은 법문이 없으십니다."
"어째서 없다고 하는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라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해보도록 하게."
"화살이 인도를 지나가버렸습니다."
到翠峯하니 峯이 問, 甚處來오 師云, 黃檗來니라 峯운, 黃檗이 有何言句하야 指示於人고 師云, 黃檗은 無言句니라 峯이 云, 爲什麽無오 師云, 設有하야도 亦無擧處니라 峯云, 但居間하라 師云, 一箭이 過西天이로다
16. 상전스님을 만나다
스님이 상전(象田)에 이르러 물었다.
"범도 아니고 성도 아니니, 스님께서는 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나는 그저 이럴 뿐이네."
스님이 '악!' 고함치고 말하였다.
"하고 많은 중들이여! 여기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말인가!"
到象田하야 師問호되 不凡不聖하니 請師速道하라 田이 云, 老僧이 祇與麽니라 師便喝云, 許多禿子야 在這裏覔什麽椀고
17. 명화스님을 만나다
스님이 명화(明化)에 이르자 명화스님이 물었다.
"왔다갔다해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그저 쓸데없이 짚신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결국 어쩌겠다는 말인가?"
"이 노인네가 말귀도 못 알아듣는군."
到明化하니 化問, 來來去去作什麽오 師云, 祇徒踏破草鞋노라 化云, 畢竟作麽生고 師云, 老漢이 話頭也不識이로다
18. 노파를 만나다
스님이 봉림(鳳林)에 가다가 길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가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봉림으로 갑니다."
"마침 봉림스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어딜 가셨소?"
노파가 그냥 가려는데 스님이 불렀다. 노파가 고개를 돌리자 스님이 후려쳤다.
往鳳林타가 路逢一婆하니 婆問, 甚處去오 師云, 鳳林去니라 婆云, 恰値鳳林不在로다 師云, 甚處去오 婆便行이라 師乃喚婆하니 婆回頭어늘 師便打하다
19. 봉림스님을 만나다
스님이 봉림에 이르자 봉림스님이 물었다.
"물어볼 것이 있는데 괜찮겠는가?"
"무엇하러 긁어부스럼을 만드십니까?"
"바다에 비친 달 맑아서 그림자 하나 없는데, 노니는 고기가 제 스스로 미혹할 뿐이다."
"바다에 비친 달 원래 그림자 없거늘, 노니는 고기가 미혹할리 있겠습니까?"
"바람을 보아 이는 물결을 알고, 물을 가늠하여 작은 배에 돛을 올린다."
"외로운 달 홀로 비추어 강산은 고요한데, 혼자서 웃는 소리 천지를 놀라게 하는군요."
"세 치 혀를 가지고 천지를 비출지라도 기틀에 맞는 한 마디를 던져 보게."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칼을 바쳐야 하고, 시인이 아니거든 시를 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봉림스님이 거시서 그만두자 스님이 송(頌)을 지었다.
큰 도는 동등함도 끊겨 동쪽 서쪽 마음대로 향하니
부싯불도 따라잡지 못하고 번갯빛도 통하지 못하네.
到鳳林하니 林이 問, 有事相借問得麽아 師云, 何得剜肉作瘡고 林이 云, 海月이 澄無影이어늘 游魚獨自迷로다 師云, 海月이 旣無影이어늘 游魚何得迷오 鳳林云, 觀風知浪起하고 翫水野帆飄로다 師云, 孤輪이 獨照에 江山靜하니 自笑一聲天地驚이로다 林云, 任將三寸輝天地하나 一句臨機試道看하라 師云, 路逢劍客須呈劍이요 不是詩人莫獻詩로다 鳳林이 便休하니 師乃有頌호대 大道絶同하야 任向西東이라 石火莫及이요 電光罔通이로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전광석화도 따라잡거나 통하지 못한다는데, 옛부터 모든 성인들께서는 무엇으로 학인을 지도하였느냐?"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은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공적(公的)으로는 바늘 하나도 용납치 못하지만, 사적(私的)으로는 수레 · 말까지도 통합니다."
潙山, 問仰山호되 石火莫及이요 電光이 罔通이어늘 從上諸聖이 將什麽爲人고 仰山이 云, 和尙은 意作麽生고 潙山이 云, 但有言說이요 都無實義니라 仰山이 云, 不然하니다 潙山이 云, 子又作麽生고 仰山이 云, 官不容針이나 私通車馬니다
20. 금우스님을 만나다
스님이 금우(金牛)에 이르자 금우스님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주장자를 가로 누이고 문에 걸터앉았다. 스님께서 손으로 주장자를 세 번 두드리고는 큰방에 돌아가서 첫번째 자리에 앉으니 금우스님이 내려와 보고는 물었다.
"손과 주인이 만나면 각기 예의를 차려야 하는데, 상좌는 어디서 왔길래 이다지도 무례한가?"
"노스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금우스님이 입을 열려는데 스님은 그대로 후려쳤다. 금우스님이 넘어지는 시늉을 하자 스님은 또 치니 금우스님이 말하였다.
"오늘은 낭패로다."
到金牛하니 牛見師來하고 橫按拄杖하야 當門踞坐라 師以手로 敲拄杖三下하고 却歸堂中第一位坐하니라 牛下來見하야 乃問 夫賓主相見은 各具威儀어늘 上座從何而來건대 太無禮生고 師云, 老和尙은 道什麽오 牛擬開口어늘 師便打한대 牛作倒勢라 師又打하니 牛云, 今日에 不著便이로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이 두 큰스님 중에 누가 이기고 진 사람이 있느냐?"
"이겼다면 다 이겼고, 졌다면 다 졌습니다."
潙山, 問仰山호되 此二尊宿이 還有勝負也無아 仰山이 云, 勝卽總勝이요 負卽總負니다
21. 정법안장
스님께서 임종(臨終)하시려는 차에 자리에 바로 앉으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자 삼성(三聖)스님이 나와서 아뢰었다.
"어찌 감히 큰스님의 정법안장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이 다음에 누가 너한테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말해주겠느냐?"
삼성스님이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한테서 없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말을 마치시고 단엄하게 열반을 보이셨다.
師臨遷化時에 據坐云, 吾滅後에 不得滅却 吾正法眼藏이어다 三聖이 出云, 爭敢滅却和尙正法眼藏이니고 師云, 已後에 有人問儞하면 向他道什麼오 三聖이 便喝한대 師云, 誰知吾正法眼藏이 向這瞎驢邊滅却고 言訖하고 端然示寂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