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5. 4. 22. 07:23

법안록

 

3. 감 변

 

6.

 백장 도항(百丈道恒 : ?~991)스님이 스님을 참례하고,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물었던 것을 가지고 법문을 청하면서 묻기를, "말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하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만 두어라, 그만둬. 그대는 세존께서 말이 없으셨던 데서 헤아리려 하느냐?"

 백장스님은 여기서 딱 깨쳤다.

 

7.

 하중부(河中府) 영명 도잠(永明道潛 : ?~961)스님이 처음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었다.

 "그대는 참례하고 법문을 청하는 일 말고는 무슨 경전을 보았는가?"

 "「화엄경」을 보았습니다."

 "총(總), 별(別), 동(同), 이(異), 성(成), 괴(壞), 이 6상(六相)은 어느 부분에 속하던가?"

 "문장은 십지품(十地品)에 있으나, 이치로 보면 세간 · 출세간의 일체법에 모두 육상을 갖추었습니다."

 "공(空)에도 육상을 갖추었던가?"

 도잠스님이 멍하니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질문하라. 내가 대답하리라."

 그리하여 도잠스님이 물었다.

 "공에도 육상을 갖추었습니까?"

 "공(空)이라네."

 도잠스님은 이에 깨닫고 뛸듯이 기뻐하며 절하고 감사드리자, 스님께서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고 물으니 "공입니다" 하자,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뒷날 사부대중 남녀들이 절에 들어오자, 스님은 도잠스님에게 물었다.

 "계율에서는 담장 너머로 비녀와 팔찌소리만 들어도 그것을 파계(破戒)라 하였는데, 금은이 뒤섞이고 벼슬아치들이 가득 찬 것을 마주보면 이는 파계인가 아닌가?"

 "도에 들어가는 좋은 길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뒷날 오백의 벼슬아치를 거느리고 왕후의 존경을 받을걸세."

 

8.

 항주(杭州) 문수(文遂)스님은 지난날 「수능엄경(首楞嚴經)」을 연구하였다. 스님을 뵙고는 자기가 해왔던 공부가 경전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능엄경에는 여덟가지 환원하는 이치[八還]*가 있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밝음은 어디로 환원되는가?"

 "밝음은 해로 환원됩니다."

 "해는 어디로 환원되는가?"

 문수스님은 멍하니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그가 주해한 글을 불사르도록 훈계하니, 그 일을 깊이 간직하고 법문을 청하여 비로소 알음알이를 떨어버리게 되었다.

 

9.

 활주(滑州) 위남(衛南) 현칙(玄則)스님이 처음 청봉(靑峯)스님을 뵙고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 하고 물으니, "병정(丙丁)동자가 불을 찾는구나" 하였다.

 그 뒤 스님을 찾아뵙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청봉스님에게서 옵니다."

 "청봉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더냐?"

 현칙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병정(丙丁)은 5행(五行) 중 불[火]에 속합니다. 그런데 다시 불을 구하는 것은 마치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알겠느냐?"

 "저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니 스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가 묻거라. 내가 말해 주겠다."

 그리하여 현칙스님이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 하자, "병정동자가 불을 찾는구나" 하였다.

 현칙스님은 말끝에 깨달았다.

 

10.

 근(謹)스님이 곁에서 시봉할 때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를 떠나 어디를 갔다 왔느냐?"

 "영남에 갔다 왔습니다."

 "쉽지 않았을텐데."

 "괜히 숱하게 산 넘고 물 건넜습니다."

 "숱하게 산 넘고 물 건넜다니, 괜찮았겠구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고 근스님은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11.

 귀종 현책(歸宗玄策)스님은 조주(曹州) 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혜초(慧超)였는데 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혜초는 스님께 묻사오니,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가 혜초일세."

 혜초는 여기서 딱 깨쳤다.

 

 원오(圓悟)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혜초가 바로 부처였기 때문에 법안스님이 그렇게 답변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소 타고 소 찾는 꼴이다' 하며, 어떤 사람은 '질문한 곳이 바로 이것이다' 라고들 하나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렇게들 이해한다면 자기를 저버릴 뿐 아니라 옛사람을 매우 욕되게 하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강에는 봄바람 일지 않고

자고새는 깊은 꽃 속에 울도다

세 구비 높은 폭포에 고기가 용되었는데

둔한 이는 아직도 밤에 못물 퍼내는구려.

 

江國春風吹不起  鷓鴣啼在深花裏

三汲浪高魚化龍  戽人猶癡夜塘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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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환(八還) : 능엄경에서는 현상계의 대표적인 것 8가지를 들어 그것들의 제1원인을 추적하여 환원하는 이치를 설하고 있다. 즉 밝음은 해에, 어둠은 깜깜한 밤에, 뚫림은 문에, 막힘은 담장에, 연(緣 : 능엄경 본문에서는 法을 듣고 緣慮하는 마음을 말함)은 분별(分別)에, 텅 빈 것은 허공에, 뿌연 것은 티끌에, 맑은 것은 갬에 환원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