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록] 4. 거량 33~47.
법안록
4. 거 량
33.
덕산(德山)스님이 시중하였다.
"오늘 밤에는 물음에 답하지 않을 것이니, 묻는 사람은 몽둥이 30대를 때리겠다."
그때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자 덕산스님이 그 자리에서 후려쳤더니, 그 스님이 말하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때리십니까?"
그러자 덕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 사람이냐?"
"신라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배에 오르기 전에 30대쯤 맞았어야 좋았을 것을."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형편없는 덕산스님의 말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구나."
34.
한 스님이 설봉(雪峯 :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백추(百槌)를 잡고 불자를 세워도 선문에는 맞지 않습니다. 스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봉스님이 불자를 세우자 그 스님은 머리를 싸 쥐고 나갔는데, 설봉스님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이 대장 한 사람을 보라."
35.
설봉스님이 경청(鏡淸 : 864~937)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큰스님 한 분이 관리를 맞이하여 큰 방을 안내하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다 불법을 배우는 스님들이요' 하자, 관리는 '금가루가 귀하긴 하나 그래서 어찌하겠소'라고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그러자 경청스님께서 대신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벽돌을 던지고 옥(玉)을 갖습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관리는 어찌 귀만 중요하게 여기고 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36.
한 스님이 협산(夾山 : 805~881)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협산의 경계입니까?" 하자,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으로 돌아가고, 새는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잎을 물고 오네." 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나는 20년 동안 경계를 말하는 줄로만 생각해왔다."
37.
용아 거둔(龍牙居遁 : 835~923)스님이 덕산스님에게 묻기를, "제가 막야(鏌鎁)의 보검을 차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 할 땐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니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가까이 가면서 '왁!' 하고 소리쳤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어디다 손을 대려는가?"
38.
투자(投子)스님이 한 스님에게 "오랫동안 소산(疏山)스님의 생강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아니냐?"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전부터 점점 더 스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39.
다시 어떤 스님이 묻기를, "한결같은 물인데, 어째서 바닷물은 짜고 강물은 싱거울까요?" 하니 "하늘에는 별, 땅에는 나무라네" 하였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였다.
"서로 매우 다른 것 같다.
40.
또 협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어디서 오느냐?" 하니, "이산 저산 다니며 조사를 찾아뵙고 옵니다" 하였다.
협산스님이 "조사는 이산 저산에 있질 않다" 하니,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조사를 아시는군요."
41
백마 담조(百馬曇照)스님이 평소에는 "즐겁구나, 정말 즐거워" 하였는데 임종할 때 가서는 "괴롭다 괴로워" 하면서 "염라대왕이 와서 나를 잡아간다!"고 소리치자, 원주(院主)가 물었다.
"언젠가 절도사(節度使)가 스님을 물속에 밀어 넣었을 때도 까딱 안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퇴침[枕子]을 들고 말하기를, "말해보라. 그때가 옳으냐, 지금이 옳으냐?" 하니 원주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럴 땐 귀를 막고 나오면 된다."
42.
강남의 상빙연사(相憑延巳)가 몇몇 스님들과 종산(鍾山)에 유람하던 차에 한 사람 마실 정도의 샘에 이르자 물었다.
"한 사람 마실 샘으로 많은 사람이 어떻게 배를 채울 수 있겠소?"
한 스님이 대꾸하였다.
"부족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연사는 인정하지 않고 달리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부족하더냐?"
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누가 부족한 사람이냐?"
43.
홍주(洪州) 태수(太守) 송령공(宋令公)에게 하루는 대령사(大寧寺) 대중이 두번째 자리[第二座]에서 설법[開堂]해 달라고 청하자, 송공은 말하였다.
"왜 첫번째 자리에서 해달라고 하지 않소?"
대중들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이처럼 수고롭지 않다."
44.
용아스님이 취미(翠微)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법석을 찾아온 뒤 늘 상당하였으나 아무 법도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마음으로 그러시는지요?"
그러자 취미스님이 "무엇을 의심하느냐?" 하였다.
용아스님이 그 뒤 동산(洞山)에 가서 그대로 말하자, 동산스님이 "어찌 나를 의심하는가?" 하였다.
그 뒤 다시 법안(法眼)스님에게 묻자, 스님께서는 "조사가 오셨구나" 하셨다.
설두 중현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두 노스님은 이 납승에게 한 방 먹었고 법안스님만이 그와 동참하였다. 가령 이 설두의 문하라면 방망이로 때려 쫓아냈으리라."
45.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협산스님에게 물었다.
"눈앞에 아무 법도 없고
의식은 눈 앞에 있네
눈 앞의 법이 아니므로
보고 들을 수 없네.
目前無法 意在目前
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라고 하였으니, 스님의 말씀이 아니신지요?"
"그렇지."
그러자 북원스님이 선상(禪床)을 번쩍들어 뒤엎어버리고는 차수(叉手)하고 서 있었다. 협산스님이 일어나 주장자로 한 번 후려치자 북원스님은 바로 내려갔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북원스님은 어째서 선상을 번쩍 들어 뒤엎어버리고 바로 내려가지 않고 기어코 협산에게 한 대 맞고 내려갔을까? 그 속셈이 무엇이겠는가?"
46.
수산주(修山主)스님이 징원(澄源)스님에게 물었다.
"건달바왕이 음악을 연주하면 수미산이 기우뚱하고 바다에선 파도가 높이 일며, 가섭은 춤을 춘다 하였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가섭은 과거 세상에 음악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습기(習氣)를 아직 없애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수미산이 기우뚱하고 파도가 높이 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징원스님은 그만두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 습기이다."
47.
스님께서 수산주스님에게 물으셨다.
"앙산(仰山)스님은 네 가지 감관이 툭 틔여 눈으로 볼 때도 온 몸이 귀이고, 귀로 들을 때도 온 몸이 눈이었다던데, 사형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시오?"
"눈속이 귓속이 되어 쓰이고, 귓속이 눈속이 되어 쓰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망상을 놀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이 앞에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들려주자 수산주스님은 그제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