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록] 5. 천 화
법안록
5. 천 화
스님은 오랫동안 장경 혜릉(長慶慧稜)스님에게서 공부하였는데, 뒤에 가서는 지장(地藏)스님의 법을 이었다.
장경스님 회상에는 자소(子昭)라는 스님이 있었다. 평소에 스님과 고금의 말씀을 따져 결론을 얻곤 하였는데, 스님의 소문을 듣고는 마음 속으로 분해하였다. 그 문제를 따지려고 하루는 대중을 거느리고 마음먹고 무주(撫州)로 떠났다. 스님께서는 미리 알고, 온 대중과 마중을 나가 특별히 대접을 하였다. 손님자리 주인의 자리에 각자 불자를 하나씩 걸어놓고 차를 마시는데, 자소스님이 갑자기 얼굴색을 붉히며 높은 소리로 물었다.
능스님께선 개당을 하셨는데, "누구의 법을 정통으로 이었소이까?"
"지장스님 법을 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장경선사(先師)를 그토록 외롭게 하셨소이까? 나와 함께 장경스님 회상에서 수십여 년간 고금을 논하며 지낼 때 서로 틈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지장스님의 법을 이었소?"
"제가 장경스님이 던진 인연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물어보시오."
"장경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상 가운데 우뚝이 몸을 드러낸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자소스님이 불자를 세우자, 스님은 이렇게 꾸짖었다.
"수좌여, 그것은 그 해에 배웠던 것이요. 따로 어떻게 해보시겠소?"
자소스님이 말이 막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상 가운데 우뚝이 몸을 드러낸다 하였는데, 만상을 없앤 것이오, 만상을 없애지 않은 것이오?"
"없애지 않았습니다."
"두 개로군요."
그때 그를 따라온 대중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만상을 없앴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상 가운데 우뚝이 몸을 드러낸다. 적(聻 : 싹 쓸어버리는 소리)!"
자소스님은 온 대중과 함께 수치를 당하고 물러났다.
스님은 그가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수좌여, 부모를 죽인 죄는 참회가 통하지만 대반야를 비방한 죄는 진실로 참회하기 어렵다오."
자소스님은 끝내 대꾸가 없었다. 이로부터 스님에게 참례하여 자기의 견처를 밝히긴 하였으나, 다시 개당하진 않았다.
스님의 인연이 금릉(金陵)에 닿아 큰 도량에 세 번 앉아서 아침 저녁으로 선풍을 폈다. 여러 총림에서 모두 그 가풍과 교화를 따랐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스님의 법을 흠모하는 자들이 먼 길을 찾아와 양자강 밖에서 현사(玄沙)스님의 정통적인 가르침이 다시 펼쳐졌다. 스님은 근기를 알아보고 상대에 맞추어 막힘과 미혹을 깨주었다. 제방의 선(禪)을 가르치니 혹은 입실(入室)하여 자기 견해를 밝히거나 혹은 묻고 법을 청하였는데, 모두 병에 따라 약을 써서 근기대로 깨친 자들은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였다.
주(周)나라 현덕(顯德) 5년 무오(戊午) 7월 17일에 병을 보이자, 임금이 몸소 예의를 갖추어 문병하였다. 윤달 5일에 머리 깎고 목욕하고 대중에게 말씀을 마치자 가부좌하고 가시니, 얼굴과 모습은 살아있는 듯하였다. 나이는 74세, 법랍은 54세였다.
성 안의 모든 절에서는 법도를 갖추어 맞이하였으며, 공경(公卿) 이건훈(李建勳) 이하는 소복(素服)을 하였다. 스님의 온전한 몸을 강녕현(江寧縣) 단양(丹陽)에 모시고 탑을 세웠으며, 시호는 대법안선사(大法眼禪師), 탑명은 무상(無相)이라 하였다.
그 뒤 이국주(李國主)가 보자원(報慈院)을 짓고, 스님의 문도로서 깊이 깨치신 행언(行言)스님에게 법을 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대지장대도사(大智藏大導師)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