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록/ 사가어록(四家語錄)] 2. 상당 26~32.
2. 상 당
26.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이 모시고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 현재 · 미래에 부처마다 같은 길이며 사람마다 모두 해탈의 길을 얻었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무엇이 사람마다 얻은 해탈의 길입니까?”하니 스님께서 향엄스님을 되돌아보며 “혜적이 지금 바로 묻고 있는데, 왜 그것을 말해주지 않느냐?”하셨다.
향엄스님이 “과거 · 현재 · 미래를 말하라면 저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니 스님이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려는가?”하고 묻자 향엄스님은 “안녕히 계십시오”하고는 바로 나가버렸다. 스님은 다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한이 이처럼 대꾸했는데 혜적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찌하려는가?”
앙산스님도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나가버리자, 스님은 ‘껄껄’하고 크게 웃으시며 “물과 우유가 섞이듯 하는군” 하셨다.
27.
스님께서 하루는 한 발로 서 계시면서 앙산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이것에 실려 있지만 이것을 철저히 알지 못하겠다.”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당시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도 이와 다름이 없었을 겁니다.”
“한마디 더 해 보거라.”
“추울 때에 그것에 버선을 신긴다고 말해도 도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않습니다.”
“애초부터 실려 있지 않았는데 그대는 벌써 철저히 알아버렸네.”
“그렇다면 어찌 다시 대답하라 하십니까?”
“말해 보게나.”
“정말 그렇습니다.”
“옳지, 옳지.”
28.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을 그대는 알겠는가?”
“한 생각이 일어날 때에도 생 · 주 · 이 · 멸이 전혀 없습니다.”
“그대는 어찌 법을 버릴 수 있는가?”
“스님께서 조금 전에 무엇을 질문하셨습니까?”
“생 · 주 · 이 · 멸이라고 말했지.”
“도리어 스님께서 법을 버리셨군요.”
29.
스님께서 앙산스님에게 물으셨다.
“오묘하고 청정하고 맑은 마음[妙淨明心]을 그대는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입니다.”
“그대는 겨우 그것만 알았느냐?”
“스님께서는 조금 전에 무얼 물으셨습니까?”
“오묘하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에 대해 물었네.”
"겨우 스님께서는 그것만 알았습니까?"
“그렇지. 그래.”
30.
석상(石霜)스님의 회상에 있던 두 선객이 찾아와서는 말하기를 “여기에는 선(禪)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 하였다. 나중에 대중 운력으로 땔감을 운반하다가 앙산스님은 두 선객이 쉬는 것을 보고서는 장작개비 하나를 들고서 이렇게 물었다.
“자, 말할 수 있겠소?”
둘 다 대꾸가 없자 앙산스님은 말하였다.
“선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리고는 스님께 돌아와서 말씀드렸다.
“오늘 두 선객이 저에게 속셈을 간파당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했길래 그대에게 간파당하였는가?”
앙산스님이 앞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혜적은 다시 나에게 속셈을 간파당하였군.”
운거 청석(雲居淸錫)스님은 말하였다.
“어디가 위산이 앙산을 간파해 버린 곳이냐?”
31.
스님이 졸고 앉아계신데 앙산스님이 문안을 드리자 스님께선 돌려 앉으시더니 벽을 향했다.
“스님, 어찌 그러십니까?”
하고 묻자 스님이 일어나시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해몽해 주게나.”
앙산스님이 물 한 대야를 가지고 스님의 얼굴을 씻겨드렸다. 조금 있다가 향엄스님이 와서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혜적이 나를 위해서 해몽을 해주었다네. 그러니 그대도 해몽을 해보게.”
향엄스님이 차 한 잔을 달여다 바치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견해가 지혜제일의 사리불보다 더 훌륭하구나.”
장산 근(蔣山懃)스님은 말하였다.
꿈 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니
위산은 참으로 인정할 만하다
묘용(妙用)과 신통(神通)은
모름지기 두 사람에게 돌리게나
차를 올리고 세숫물 떠다드려
고금에 빛나도다
늙어져서 마음 외로우니
아이들을 가련하게 아끼네
납승의 문하에서
한 사람은 문 밖에 있고
한 사람은 문 안에 있는데
다시 한 사람 있어
이 넓은 세상에도 감출 수 없고
불안(佛眼)으로도 엿보지 못하네.
남당 원정스님은 말하였다.
무명초(無名草)를 헤쳐 본지풍광(本地風光) 바라보고
고봉(孤峯)에 홀로 잠자며
줄 없는 거문고 뜯고
남이 없는[無生] 곡조를 노래하네
위산, 앙산, 향엄이여!
마치 솥의 세 발과 같아라
중생을 만나 털끝만한 힘도 쓰지 않고
천백억 세계에 마음대로 분신(分身)하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님은 다만 불자(拂子)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 일이 있은 뒤 그 스님은 상시(常侍) 벼슬을 하는 왕경초(王敬初)거사를 만났는데 왕거사는 이렇게 물었다.
“위산스님께서는 요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 스님이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더니 왕거사가 또 말하였다.
“그 쪽 문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건[色]을 통해 마음을 밝히고 사물을 가지고 이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닐 것입니다. 스님은 속히 돌아가야 좋을 겁니다. 제가 감히 편지 한 장을 드릴 터이니 위산스님께 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편지를 받아들고 되돌아가서 스님께 올렸다. 편지를 열어 보았더니, 일원상(一圓相)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날일자[日]가 써 있었는데 써 있었는데 스님은 말씀하셨다.
“천리 밖에 나의 심중을 헤아리는 자가 있을 줄이야 뉘라서 알았으랴.”
앙산스님이 뫼시고 있다가 그것에 대해 말하였다.
“비록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속인일 뿐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앙산스님이 즉시 일원상을 그리고 그 가운데 날일자[日]를 썼다가 발로 쓱쓱 문질러 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크게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