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록/ 조당집(祖堂集)] 2. 시중 · 대기 1~17.
2. 시중 · 대기
1.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큰 지혜[大智]만을 얻었고, 큰 작용[大用]은 얻지 못했다.”
한 수좌가 산 밑에 살고 있었는데 앙산(仰山)스님이 아래서 올라오다가 그에게 물었다.
“스님(위산)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수좌가 말했다.
“다시 그 일을 말해 보시오.”
앙산스님이 다시 거론하기 시작하여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수좌에게 걷어채여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절로 돌아와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훔훔(吽吽)하고 웃었다.
2.
스님께서 앙산(仰山)스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나와라! 보고 싶구나!”
앙산스님이 차나무[茶樹]를 흔들어 대답하니, 스님께서 말했다.
“용(用)만 얻었고, 체(體)는 얻지 못했다.”
앙산스님이 도리어 물었다.
“저는 그렇다치고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스님께서 한참 잠자코 있으니, 앙산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체만을 얻었고, 용은 얻지 못하셨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20방망이는 맞아야 되겠구나.”
3.
스님께서 도오(道吾)스님에게 물었다.
“불[火]을 보는가?”
“봅니다.”
“보는 성품이 어디에서 일어나던가?”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일을 떠나서 한 가지 물어 주십시오.”
4.
한 스님이 절을 하니 스님께서 일어나려는 시늉을 하자 그 스님이 말했다.
“스님, 일어나지 마십시오.”
“앉은 적도 없다. 절을 할 필요가 없느니라.”
“저도 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어째서 인사도 없느냐.”
5.
스님께서 입적하기 직전에 대중에게 말했다.
“노승(老僧)이 죽은 뒤에 산 밑에 가서 한 마리 물빛소[水牯牛]가 되어 겨드랑이에다 ‘위산의 중 아무개’라고 두 줄의 글을 쓰겠다. 그럴 때 여러분은 물빛소라 무르겠는가, 위산의 중 아무개라 부르겠는가? 위산의 중이라 한다면 물빛소임을 어찌하며, 물빛소라 한다면 위산의 중 아무개라 한 것을 어찌하랴. 그대들은 어찌하겠는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운거(雲居)스님에게 이야기하니, 운거스님이 말했다.
“스님에게는 다른 이름[號]이 없다.”
조산(曹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물빛소라 부르겠습니다.”
6.
스님께서 언젠가 앙산(仰山)스님에게 물병을 건네주려다가 앙상스님이 받으려 하자 얼른 팔을 오므리고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스님께선 무엇을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받으려 하는가?”
“그렇긴 하나 인간의 도리로는 스승을 위해 병을 받아 물을 떠다 드리는 것이 본분이라 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물병을 건네주었다.
7.
앙산스님이 또 물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등롱(燈籠)이 아주 좋구나.”
“그것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라니, 무엇인가?”
“아주 좋은 등롱 말입니다.”
“과연 보지 못하는구나!”
8.
스님께서 앙산스님과 길을 가다가 마른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그저 마른 나무일 뿐입니다.”
스님께서 등뒤의 농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이도 뒷날엔 5백 대중을 거느리게 될 것이다.”
9.
은봉(隱峯)스님이 위산에 와서 상좌(上座)의 자리에다 의발(衣鉢)을 풀어놓았다. 스님께서 사숙(師叔)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은봉스님은 벌렁 누워 자는 시늉을 하니, 스님은 그냥 방으로 돌아갔고, 은봉스님도 떠나버렸다.
스님께서 시자에게 물었다.
“사숙님은 아직 계시느냐?”
“벌써 떠나셨습니다.”
“가실 때 무슨 말씀이 없으시더냐?”
“말씀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었다고 하지 말아라. 그 소리가 우뢰 같았다.”
10.
덕산(德山)스님이 행각할 때 위산에 와서 3의(三衣)를 갖춰 입고 법당으로 올라와 동쪽을 기웃, 서쪽을 기웃하다가 그냥 떠나버리니, 시자가 스님께 사뢰었다.
“지금 새로 온 객승이 스님께 뵙지도 않고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나는 벌써 그를 만났다.”
11.
스님께서 시자더러 제1좌(座)를 불러오라 해서, 시자가 제1좌를 불러오니, “나는 제1좌를 불렀는데 그대가 무슨 관계가 있어 왔는가?” 하셨다.
조산(曺山)스님이 제1좌를 대신하여 말했다.
“스님께서 시자더러 불러오라 하셨다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12.
스님께서 운암(雲岩)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약산(藥山)에 오랫동안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 약산스님의 거룩한 모습이던가?”
“열반 뒷몸[涅槃後身]입니다.”
“무엇이 열반 뒷몸인가?”
“물에도 젖지 않습니다.”
운암(雲岩)스님이 똑같이 물었다.
“백장스님의 거룩한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뚝하고 당당하며 환희 빛나서 소리 전에 있되 소리가 아니고 빛 뒤에 있되 빛이 아니다. 마치 무쇠소 등에 붙은 모기가 침을 꽂을 곳이 없는 것과 같다.”
13.
스님께서 손에 물건을 들고서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이럴 때엔 어찌해야 되는가?”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스님께서 긍정치 않고, 도리어 앙산스님더러 ‘이럴 때엔 어찌해야 됩니까?’라고 묻게 하고는 대답을 했다.
“그럴 때라지만 역시 어찌한달 것도 없느니라.”
스님께서 한마디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이다.”
그리고는 그만두셨다. 몇해를 지난 뒤에 앙산스님이 스님께 거론하였다.
“절대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스님께서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감옥살이 하는 동안 꾀가 제법 늘었구나.”
14.
앙산스님이 위산에서 소를 지키는데 제1좌의 스님이 말했다.
“아까 말하기를 ‘백 억 털끝에 백 억 사자가 나타난다’ 하지 않았소?”
“그렇소”
“털 앞에 나타나는가, 털 뒤에 나타나는가?”
“나타날 때엔 앞뒤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에 앙산스님이 나가버리자 스님께서 말했다.
“사자가 허리가 부러졌도다.”
15.
동산(洞山)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선(禪)을 배워서 깨달은 이는 누구입니까?”
“내가 처음으로 이 산에 살기 시작했을 때 한 사람이 있었으니 석두(石頭)의 손자이며, 약산(藥山)의 아들이다.”
16.
앙산(仰山)스님이 밭에서 돌아오니 스님께서 물었다.
“밭에는 몇 사람이나 있던가?”
앙산스님이 삽을 땅에 던지고는 차수(叉手)하고 서자 스님께서 말했다.
“오늘 남산(南山)에서 많은 사람들이 띠풀을 베더라.”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순덕(順德)스님에게 물었다.
“위산스님이 말하기를 ‘남산에서 여러 사람이 띠를 벤다’한 뜻이 무엇입니까?”
순덕스님이 대답했다.
“개가 왕의 사면장을 물고 가니, 신하들이 모두 길을 피한다.”
17.
스님께서 운암(雲岩)스님에게 물었다.
“평소에 무엇이라 이르는가?”
“저는 부모가 낳아 준 입으로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