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위앙록潙仰錄

[위산록/ 조당집(祖堂集)] 2. 시중 · 대기 18~22.

쪽빛마루 2015. 4. 27. 08:01

2. 시중 · 대기

 

18.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스님의 시봉을 들고자 하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번뇌를 끊기만 하면 된다고 그에게 말해라.”

 “그러면 높으신 뜻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하지는 말라.”

 

19.

 운암(雲岩)스님이 위산에 왔는데 스님께서 벽을 바르고 있다가 물었다.

 “ 유구(有句) · 무구(無句)가 나무에 의지한 등(藤)과 같은데 나무가 쓰러지고 등이 마를 때는 어찌되는가?”

 운암스님이 대답을 못하고 도오(道吾)스님에게 가서 이야기 하니, 도오스님이 당장에 위산으로 갔다. 스님께서 같은 질문을 하는데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오스님이 말을 가로막고 물었다.

 “나무가 쓰러지고 등이 마를 때는 어찌됩니까?”

 스님께서는 대답을 않고 방장실로 들어가버렸다.

 

20.

 스님께서 앙산(仰山)스님에게 말했다.

 “적[慧寂]아, 반드시 선을 배워야 한다.”

 앙산스님이 “녜” 하고는 이어 물었다.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

 “단도직입(單刀直入)하여라.”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석문(石門)스님에게 물었다.

 “위산스님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석문스님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21.

 서울의 어떤 큰 스님이 스님께 와서 인사를 나눈 뒤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가 이렇게 물었다.

 “이 절에는 대중이 몇이나 됩니까?”

 “1천 6백 명이 있습니다.”

 “그 1천 6백 명 가운데서 스님 같은 이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

 “큰스님께서 그런 것을 물어서 무엇하시렵니까?”

 “스님의 덕화를 알려고 그럽니다.”

 “그 중에는 물속에 숨은 용도 있고 드러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에 큰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3계로 북을 삼고, 수미산으로 망치를 삼았다. 누가 그 북을 치겠는가?”

 앙산스님이 나서서 대답했다.

 “설사 친다 해도 그런 찢어진 북을 누가 치겠소?"

 큰 스님이 찢어진 곳을 찾다가 찾지 못했고, 그리하여 누더기를 입고 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보자(報慈)스님에게 물었다.

 “어디가 찢어진 자리입니까?”

 “언제 그대에게 그런 소리를 하던가?”

 “결국 어찌해야 합니까?”

 보자스님은 한 대 갈겨 주었다.

 

22.

 스님께서 앙산스님과 산 구경을 다니다가 한 곳에 앉아서 쉬는데 늙은 까마귀가 홍시(紅柿) 하나를 물고 와서 스님 앞에다 떨어뜨렸다. 스님께서 집어들어 반쪽을 앙산스님에게 나누어 주니, 앙산스님이 받지 않고 말했다.

 “이는 스님께 감응한 물건입니다.”

 “그렇긴 하나 이치는 같은 이치다.”

 앙산스님이 송구스러운 듯이 받아 절을 하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