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위앙록潙仰錄

[앙산록/ 조당집(祖堂集)] 2. 상당 · 감변 14~26.

쪽빛마루 2015. 4. 28. 08:27

2. 상당 · 감변

 

14.

 스님께서 언젠가 마침 눈을 감고 앉았는데 한 스님이 가만히 곁에 와서 모시고 섰다. 스님께서 문을 열고 땅 위에다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원상 안에다 수(水)자를 쓴 뒤에 그 스님을 되돌아보았으나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1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의 뜻입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불(佛)자를 써서 대답했다.

 

16.

 한 행자(行者)가 법사를 따라서 법당에 들어갔다가 부처님에게 침을 뱉으니 법사가 꾸짖었다.

 “행자가 버릇이 없구나! 어째서 부처님에게 침을 뱉는가?”

 “저에게 부처님이 없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거기다가 침을 뱉겠습니다.”

 위산스님이 듣고 말했다.

 “훌륭한 이가 도리어 변변치 못했고, 변변치 못한 이가 도리어 훌륭하게 되었구나!”

 스님께서 법사를 대신하여 말했다.

 “행자에게 침을 뱉아서 행자가 무어라 하거든 ‘나에게 행자가 없는 곳을 보여 주면 거기다 침을 뱉겠노라’ 했어야 할 것이다.”

 

17.

 한 관리가 위산에 종(鐘)을 사는데 쓰라고 물건을 보냈는데 위산스님이 스님께 말했다.

 “속인이 복을 탐해서이다.”

 스님께서 말했다.

 “스님께서는 무엇으로 그들에게 보답하렵니까?”

 위산스님이 주장자를 들어 선상 모서리를 두세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이것으로 그들에게 보답하려는데 되겠는가?”

 “그것이라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대는 무엇에 불만인가?”

 “저로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의 일입니다.”

 “그대는 이미 대중의 것임을 알고 있는데 다시 나에게서 무슨 그에 대한 보답을 찾는가?”

 “저는 스님께서 대중의 것을 가지고 인사치레에 쓰시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합니다.”

 “보지 못했는가. 달마가 인도에서 오실 때에도 이것을 가지고 인사를 차리셨다. 그대를 모두가 그 신표를 받은 무리들이다.”

 

18.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문을 하셨다.

 “그럴 때는 그만두고, 그렇지 않을 때엔 어찌하는가.?”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위산스님께 이야기하니, 위산스님이 말했다.

 “혜적이가 너무 조급하게 사람들을 위하는구나.”

 

19.

 위산스님이 스님과 함께 산 구경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물[色]을 보면 곧 마음을 본다.”

 스님께서 물었다.

 “지금 ‘사물을 보면 마음을 본다’ 하셨는데 나무들은 사물이니, 어느 것이 스님께서 사물을 보는 마음입니까?”

 “마음을 본다면 어찌 사물을 보겠는가? 사물을 보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니라.”

 “그렇다면 먼저 마음을 본 뒤에 사물을 보라고 할 것이지 어찌하여 사물을 본 뒤에 마음을 보라고 하십니까?”

 “나는 지금 나무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들리느냐?”

 “스님께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시면 그저 나무와 이야기를 하실 일이지, 다시 저에게 듣는가 못 듣는가는 물어서 무엇하시렵니까?”

 “나는 지금 그대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듣는가?”

 “스님께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그저 저와 이야기를 나누실 일이지, 또 저에게 듣는가 못 듣는가를 물으시려거든 나무에게 듣는가 못 듣는가를 물으셔야 될 것입니다.”

 

20.

 스님께서 위산에 있을 적에 어느 눈 오는 날, 이렇게 물었다.

 “저 색(色) 말고 딴 색(色)이 있겠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그 색(色)입니까?”

 위산스님이 눈을 가리키니, 스님께서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이치가 옳으면 그리 가면 될 뿐이다. 이 색 말고 다른 색이 있겠는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런 색인가?”

 스님께서 얼른 눈을 가리켰다.

 

21.

 동산(洞山)스님이 스님께 사람을 보내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옳고, 어떻게 하면 옳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옳으면 다 옳고, 옳지 않으면 다 옳지 못하다.”

 이에, 동산스님이 스스로 말했다.

 “옳으면 모두가 다 옳지 않고, 옳지 않으면 모두가 다 옳다.”

 이에 대하여 스님께서 이렇게 송했다.

 

법신은 작위(作爲)가 없고 화신은 작위가 있으니

부처님은 오묘하게 모든 병의 약으로 응하신다

‘애시(啀喍)’에서 메아리를 들음은 개짖는 소리[皥吠]에 견주고

여울지는 물결 속에서 고기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학일레라.

法身無作化身作  薄伽玄應諸病藥

啀喍聞響擬皥吠  焰水覓魚癡老鶴

 

22.

 스님께서 사미(沙彌)였을 때, 종(宗)화상의 회하에서 산 적이 있었다. 동자들의 방에서 경을 읽고 있었는데, 종화상이 와서 물었다.

 “누가 여기서 경을 읽고 있는가?”

 “제가 혼자서 경을 읽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종화상이 꾸짖었다.

 “무슨 경 읽는 소리가 마치 노래 부르는 소리 같으냐. 그렇게도 경을 읽을 줄 모르느냐!”

 “저는 그렇지만 스님께서는 경을 읽을 줄 아십니까?”

 “나는 경을 읽을 줄 안다.”

 “스님께선 어떻게 읽으십니까?”

 종화상이 ‘여시아문(如是我聞)…’하고 시작하자 스님께서 말했다.

 “그만, 그만 두십시오.”

 

23.

 어떤 이가 물었다.

 “오늘 위산스님의 재(齋)를 마련했는데 위산스님께서 오십니까?”

 “오면 가는 일이 있고, 가면 오는 일이 있게 된다.”

 

24.

 위산스님이 부르기에 스님께서 대답하니, 이렇게 말했다.

 “얼른 말해라, 얼른 말해. 어디 갔느냐?”

 스님께서 대답했다.

 “저는 아직 신심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신심도 내지 않았는가?”

 “제가 누구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그대는 알기 때문에 신심을 내지 않았는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심을 내지 않았는가?”

 “신심을 내지 않았으니 알았다, 알지 못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꼼짝없이 성문[定性聲聞]밖에 안되겠구나.”

 “저는 부처도 보지 않습니다.”

 

25.

 스님께서 어떤 물건을 들고서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이럴 때가 어떠합니까?”

 “분별은 색진(色塵)에 속하니, 나는 그러한 경지에서는 그렇게 하기도 하고, 그렇게 않기도 한다.”

 “스님께서는 몸이 있어도 쓸모가 없으시군요.”

 위산스님이 물었다.

 “공부 잘 되느냐?”

 스님께서 대답했다.

 “저는 신심도 내지 않습니다.”

 “어째서 신심도 내지 않았는가?”

 “제가 누구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있음을 믿지 않는가? 없음을 믿지 않는가?”

 “믿지 않으면 있다 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결정코 성문[定性聲聞]밖에 안되겠구나.”

 “저는 이 경지에 이르러 부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가 뒷날 나의 가르침을 펴면서 활개를 치고 다니면 나도 그대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26.

 스님께서 사미 적에 탐원(耽源)스님의 회상에서 창례(唱禮)를 맡고 있었는데 탐원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창례를 맡고 있습니다.”

 “예문(禮文)에 무엇이라 했는가?”

 “모두를 공경하라 하였습니다.”

 “갑자기 깨끗치 못한 것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不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