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2. 대기 1~12.

쪽빛마루 2015. 5. 3. 04:34

2. 대 기

 

1.

 한 스님이 동산(洞山)스님에게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으란 말씀이 퍽이나 좋은데 어째서 의발을 얻지 못했습니까?"*

 "설사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했더라도 의발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의발을 얻겠습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가 얻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받겠습니까?"

 "받지는 않으나 그에게 주지 않을 수는 없다."

 

2.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데 구해줘야 합니까, 구해주지 말아야 합니까?"

 "구해주자니 두 눈이 멀겠고, 구해주지 않자니 형상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겠구나."

 

3.

 운암(雲巖)스님의 재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스승[先師]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다."

 "받은 것이 없다면 재는 차려서 무엇합니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스승을 저버릴 수는 없다."

 

4.

 또 재를 차리는데 물었다.

 "스님께서 스승의 재를 차리시니, 스승을 긍정하는 것입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는다."

 "어째서 전부를 긍정치 않으십니까?"

 "만일 전부를 긍정하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안국사(安國師)에게 물었다.

 "전부를 긍정하면 어째서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안국사가 대답했다.

 "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중하나 '아들을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백련(白蓮)스님이 말씀하셨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봉지(鳳池)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반만 긍정하는 것입니까?"

 봉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오늘로부터 향해 들어가되 친히 뵙는 것은 우선 보류해 두게."

 "무엇이 반은 긍정치 않는 것입니까?"

 "행여 그대는 긍정하는 것이 아닌가?"

 "전부를 긍정하는 것이 어째서 도리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합당한 것을 붙들고 있으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중에 어느 부처가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하였다."

 그 스님이 조산(曹山 : 840∼901)스님에게 물었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했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산스님이 대답했다.

 "내 머리가 필요하거든 찍어 가거라."

 그 스님이 설봉(雪峯 : 822∼908)스님에게 가서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로 입을 쥐어박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동산(洞山)에 다녀온 적이 있다."

 

6.

 어느날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서서 설법을 청하거늘 스님이 시자에게 '등불을 켜라' 하였다. 시자가 등불을 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아까 이야기를 청하던 스님은 나오라."

 그 스님이 나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밀가루 두서너 홉을 이 스님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는데 그후 이 일로 깨친 바 있어 의발을 받고 한차례 공양을 차렸다. 삼사년을 지나 하직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잘 가라, 잘 가라."

 이때 설봉스님이 곁에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저 납자가 떠났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한 번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오는 것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에 가서 의발을 자리에 풀어놓고, 천화(遷化)하였는데 설봉스님이 보고서 알리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는 3생쯤 뒤졌다 하리라."

 이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길동무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병이 나서 열반당(涅槃堂 : 절 안에 늙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집)에서 쉬고 한 사람은 간호했다. 어느날 병난 스님이 길동무에게 말하였다.

 "내가 떠나려는데 같이 갑시다."

 그러자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병도 없는데 어째서 같이 가겠소?."

 "아직까지는 동행했다 할 수 없고, 이제부터 같이 가야 비로소 동행입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스님께 가서 하직을 고하고서 가겠소."

 그리고는 스님께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대가 할 일이니, 잘 다녀오라."

 그 스님이 다시 열반당으로 가서 둘이 마주 앉아 온갖 일을 이야기하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초연히 떠났다.

 설봉스님이 이 법회(法席)에서 공양주[飯頭]를 맡고 있었는데, 그들이 차례로 떠난 것을 보고 스님께 가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까 와서 스님께 하직을 고하고 간 스님 둘이 열반당에서 마주 앉아 죽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갈 줄만 알았고 전해 올 줄은 몰랐다. 내게 비한다면 3생이 뒤졌다 하리라."

 

7.

 스님께서 어느 때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나에게 헛된 명성이 자자한데 누가 없애 주겠는가?"

 어떤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스님께서 법호를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백퇴(白褪)를 치면서 말씀하셨다.

 "이제 나의 헛된 명성은 사라졌다."

 

 이에 석상 경제(石霜慶諸 : 807∼888)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아무도 그를 긍정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헛된 명성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장삼이사(長三二四)는 남의 일이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헛된 명성이 있으면 우리 스승이 아니지요."

 

 조산(曹山)스님이 말씀하셨다.

 "옛부터 오늘까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산 광인(山匡人 : 唐末五代人, 曹洞宗)스님이 말씀하셨다.

 "용은 물에서 나오는 기개가 있건만 사람에게는 알아내는 기능이 없습니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런 이가 묻는다면 스님께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대가 묻는 것은 물음이 아니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병(病)입니까?"

 "깜빡 일어나는 것이 병이다."

 "무엇이 약입니까?"

 "계속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

 

10.

 동산(洞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삼조의 탑전에서 옵니다."

 "조사의 곁에서 왔다면서 나는 만나서 무엇하려는가?"

 "조사는 학인과 다르지만 스님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의 본래 스승을 만나고 싶은데 되겠는가?"

 "저의 스승이 나오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1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맹세코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고서 내가 성불하리라'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마치 열 사람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한 사람이 급제하지 못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치 못하거니와, 한 사람이 급제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하는 것과 같다."

 "스님께서는 급제를 하셨습니까?"

 "나는 글을 읽지 않았다."

 

1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라 합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인가?"

 "지금 스님 앞에서 응대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애닯어라! 요즘 학인들은 거의가 이렇구나! 그저 당나귀 앞이니 말 뒤니 하면서 자기의 안목을 삼고 있으니 이래서 불법이 침체되지 않을 수 없구나. 객 가운데 주인[客中主]을 가려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가 말해 보라."

 "제가 말하면 객 가운데 주인[客中主]이 됩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계속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것이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제가 만일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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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조가 의발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신수(神秀)상좌는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懃拂拭 莫使有塵埃'라는 게송을 지어 바쳤으나 법을 전수받지 못하고, 노행자가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하는 게송으로 6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