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2. 대기 29~42.

쪽빛마루 2015. 5. 3. 04:35

29.

 한 스님이 와서 뵈니, 스님께서 그의 특이함을 보시고 일어나 절을 받고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천(西天)에서 왔습니다."

 "언제 서천을 떠났는가?"

 "공양[齋]하고 떠났습니다."

 "너무 더디군."

 "산과 물을 구경하느라 그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그가 앞으로 나서서 차수(叉手)하고 섰으니, 스님이 허리를 굽혀 인사[揖]하고 말했다."

 "차나 마시라."

 

3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산 구경을 하고 옵니다."

 "산꼭대기까지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산꼭대기엔 안 갔었구나."

 "산꼭대기까지 가지 않았으면 어찌 아무도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어째서 거기에 살지 않았는가?"

 "살기는 사양치 않으나 서천(西天)의 누군가가 긍정치 않을 것입니다."

 

31.

 스님께서 운거(雲居)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다녀오는가?"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어느 산이 살 만하던가?"

 "어느 산인들 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唐)나라 안의 모든 산을 몽땅 그대가 차지해야 되겠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들어갈 문턱을 얻었구나."

 "길[路]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는가?"

 "길이 있다면 간격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뒷날 천 만 사람이 잡아도 머물지 않을 것이다."

 

32.

 스님께서 늑담(泐潭)에 갔더니 정상좌(政上座)가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그것 참 신기하구나! 불가사의한 도의 세계[道界]여,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경계[佛界]여!" 하였다. 그것을 보고 스님께서 불쑥 물었다."

 도계다 불계다 하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도계다 불계다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가? 이 한 마디만 하여라."

 상좌가 잠자코 말이 없으니 스님이 재촉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는가?"

 "다투면 얻지 못합니다."

 "하란 말도 못하고서 어째서 다투면 얻을 수 없다 하는가?"

 상좌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그저 이름뿐이다. 경전을 인용해서 대답해 보겠는가?"

 "경전에선 무어라 했습니까?"

 "뜻을 얻고는 말은 잊으라 했다."

 "아직도 경전의 뜻을 마음에다 두어 병을 만드시는군요."

 "도계다 불계다 하는 자는 얼마나 병이 들었는가?"

 상좌는 그 일로 목숨을 마쳤다.

 

33.

 스님께서 설봉(雪峯)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흠대[槽]를 파고 옵니다."

 "도끼를 몇 번 찍어서 만들었는가?"

 "한 방에 다 해냈습니다."

 "저쪽 일[那邊事]은 어찌 되었는가?"

 "손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쪽 일[這邊事]이다. 저쪽 일은 어찌되었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거늘 소산(踈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낫과 도끼가 없는 경지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단칼에 들어가 스님의 머리를 끊으려 할 때엔 어찌합니까?"

 "당당하여 표면도 끝도 없느니라."

 "지금은 약하고 열세임을 어찌합니까?"

 "사방 이웃에 어딘들 없으랴. 잠시 주막거리에 머물렀다 간들 괴이할 일이 있겠느냐?"

 

35.

 스님께서 또 학인들에게 분부하셨다.

 "천지 사이 우주 안에 보배 하나가 산덩이 속에 숨겨졌는데, 신통하게 사물을 알아보나 안팎이 공적하여 어디에 있는지 찾기란 매우 어렵다. 깊고 깊으니 다만 자기에게서 구할 일이지 남에게서 빌리지 말라. 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모두가 남의 마음이니, 제 성품만 못하다. 성품이 청정하면 이것이 법신이다.

 초목에서 나왔도다.

 견해가 이와 같다면 머무를 때엔 반드시 벗을 가려서 때때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멀리 갈 때엔 반드시 좋은 벗에 의탁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밝힐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완성해 주는 이는 벗이라' 하였다. 선한 이를 가까이하면 마치 안개 속을 다니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이 젖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눅눅해지고 쑥이 삼[麻]이나 대[竹]속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흰 모래가 진흙과 함께 있으면 함께 검어지니, 하루 스승이 되면 종신토록 하늘 같이 존중하고, 하루 주인이 되면 종신토록 아버지같이 존귀하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36.

 스님께서 병든 스님을 문병하며 "힘들겠구려" 하니, 병든 스님이 말하였다.

 "생사의 일이 큽니다. 스님이시여."

 "어찌 차조밭으로 가지 않는가?"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훌쩍 떠났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려도 오히려 나기 전과 같을 때가 어떠합니까?"

 "누군가는 그대 손이 빈 줄을 알지 못할 것이다."

 

38.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다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한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하셨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이리 오너라. 그대 뼈도 깎아 주겠다."

 "이쪽 저쪽 다 깎아 주십시오."

 "깎지 않으리라."

 "그 좋은 솜씨로 어째서 깎아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세상의 명의(名醫)는 손을 쓰지 않는다 하였다."

 운문(雲門)스님이 서봉(西峯)에 이르니, 서봉스님이 물었다.

 "나는 동산스님이 뼈를 깎아 준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그대가 자세히 말해 주지 않겠는가?"

 이에 운문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니, 서봉스님이 합장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구나."

 운문스님이 다시 이 일을 서봉스님에게 물으니, 서봉스님이 대답했다.

 "동산스님이 앞에서 했던 말을 해보아라. 너의 뼈를 깎아 주겠다. 나그네 제2기[賓家第二機]가 왔을 때엔 어째서 깎아 주지 않는다 하였겠느냐?"

 서봉스님이 한참 읊조린 끝에 "상좌야!" 하고 불러 상좌가 대답하니 "쓰레기더미로구나!" 하셨다.

 

39.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손을 펴서도 배우고, 새의 길에서도 배우고, 현묘한 길에서도 배운다."

 이에 보수(寶壽)스님이 수긍치 않고 법당 밖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저 노장은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는가?"

 이에 운거스님이 스님께로 가서 말했다.

 "스님의 그런 말씀을 어느 한 사람은 수긍치 않습니다."

 "수긍하는 이를 위해서 말했지 수긍치 않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수긍치 않는 자를 나오라 하라. 내가 만나 보겠다."

 운거스님이 말씀하셨다.

 "수긍치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대는 금방 말하기를, '누군가 한 사람은 수긍치 않는다' 하더니, 어째서 다시 '수긍치 않음이 없다' 하는가? 어서 나서게 하라."

 "나서면 수긍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수긍하는 것이 수긍치 않는 것이고, 나서는 것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싱싱하게 푸른 대가 모두 진여요. 빽빽한 국화는 반야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두루하지 않은 빛이다."

 "어째서 두루하지 않은 빛이라 하십니까?"

 "진여도 아니고 반야도 없다."

 "드러나기는 합니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어째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습니까?"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아니란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기에 모른다고 대답하는가?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해 주겠다."

 "스님께선 어째서 가르쳐주지 않으십니까?"

 "어찌 어찌 하다보니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어째서 알아들을 수 없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남의 말에 막히는가?"

 "그렇다면 말이 없으리이다."

 "말이 없지 않느니라."

 "말이 없는데 어째서 아니라 하십니까?"

 "말 없는 것이 아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마음을 움직였다하면 알아차린다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손을 머리까지 올려 합장하였다.

 보자(報慈)스님이 이 일을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입 속으로는 그렇게 말해놓고, 그렇게 한 것이 합장정대인가?"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맥(脈) 하나로 양쪽을 잡았다."

 

42.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에는 무슨 풀이 있습니까?"

 "싹트지 않는 풀이다."

 "강을 건너간 이는 어떻습니까?"

 "온갖 것은 다한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싹트지 않는 풀이 어째서 큰 코끼리[香象]를 갈무리하는가. 큰 코끼리라 함은 지금[今時]의 공부가 결과를 이루는 것이요, 풀이라 함은 본래 싹트지 않는 풀이요, 갈무리한다 함은 본래(本來) 행상(行相) 채워나가는 것을 인정치 않으므로 갈무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