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2. 대기 43~58.

쪽빛마루 2015. 5. 3. 04:36

43.

 한 비구니가 큰방 앞에 와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몽땅 내 자식들이로다."

 이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했더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나도 그대에게서 태어났다."

 

44.

 한 스님이 바리때를 들고 항상 가는 속인의 집에 갔더니, 속인이 물었다.

 "스님은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무엇을 가리겠소."

 속인이 풀을 가득 바리때에 채워 주면서 말했다.

 "바로 이르면 공양하겠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냥 가시오."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리는 것이니, 안 가리는 것을 갖다 주시오."

 

4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마음과 법 둘다 잊어 성품이 참되면, 그것은 몇째 자리가 되는가?"

 "두번째 자리입니다."

 "어째서 그것을 첫번째 자리라 하지 않는가?"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법을 다 잊었을 때는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닌데 어째서 다시 그렇게 말하는가?"

 그리고는 대신 대답했다.

 "참이 아니면 자리를 얻지 못한다."

 

46.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아비가 젊다는 것입니까?"

 "그대는 나이가 몇이던가?"

 "어떤 것이 자손이 늙었다는 것입니까?"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현묘한 이야기를 했었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그저 신령스럽게 알아차려야지 일을 통해 찾을 수는 없다' 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문으로 들어온 이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기에는 아무도 알아볼 이가 없다."

 

48.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과 법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입으로만 이야기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입으로만 따지지 말고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은 부처님 일이다."

 "무엇이 향상인(向上人) 부처인지 지적해 주십시오."

 "부처가 아니다."

 

49.

 한 스님이 물었다.

 "4대(四大 : 육신)가 화합하여 건강할 때 병들지 않는 이도 있겠습니까?"

 "있다."

 "병들지 않는 이가 스님을 보겠습니까?"

 "나야 그를 볼 자격이 있지만 그야 어찌 나를 짐작하겠는가."

 "스님께서 병들으셨는데 어찌 그를 보겠습니까?"

 "내가 그를 볼 때엔 병들은 것은 보지 않는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바로 이럴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의 굴택이다."

 "이렇지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지 않는 그것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까?"

 "신경쓰지 않거늘 소중히 여길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까?"

 "그대에게 주먹을 날리지는 않겠다."

 "무엇이 제가 소중히 여길 점입니까?"

 "내게 합장하지 말아라."

 "그렇다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대를 알아주겠는가?"

 "결국에는 어떻습니까?"

 "누가 크다 하며 누가 작다 하려 하겠는가?"

 

51.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를 보기 전에 온갖 새가 꽃을 물고 와서 공양했는데 그런 때는 어떻습니까?"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것 같다."

 "본 뒤엔 어째서 꽃을 물고 오지 않았습니까?"

 "온 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52.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입니까?"

 "마음·뜻·의식이 없지 않은 사람이다."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남이 전하는 말을 듣은 적도 없고 남의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

 "가까이 모실 수는 있겠습니까?"

 "그대 한 사람뿐 아니라 나도 할 수 없다."

 "스님께선 어째서 가까이 하시지 못합니까?"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합(大蛤) 속에 구슬이 있는 줄 대합은 압니까?"

 "알면 잃는다."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앞의 말에 의지하지 말라."

 

53.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의 마음으로 허공의 이치에 합한다' 했는데 무엇이 허공의 이치입니까?"

 "확 트여서 겉도 끝도 없다."

 "무엇이 허공의 마음입니까?"

 "사물에 걸리지 않는다."

 "어찌해야 부합되겠습니까?"

 "그대가 그렇게 말하면 부합되지 않는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병[佛病]을 가장 고치기 어렵다' 했는데, 부처가 병입니까, 부처에 병이 있습니까?"

 "부처가 병이다."

 "부처가 어떤 사람에게 병이 됩니까?"

 "그에게 병이 된다."

 "부처가 그를 알겠습니까?"

 "그를 알지 못한다."

 "그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에게 병이 됩니까?"

 "듣지 못했는가? 남의 가풍(家風)에 누를 끼친다 했다."

 

55.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속에서 적중(的中)함을 얻을 때가 어떠합니까?"

 "적중했는데 무엇을 또 취한다 하는가"

 "그렇다면 적중한 것이 아니겠습니다."

 "아닌 데서 적중이 있겠는가."

 

5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천 만의 사람 속에 있으면서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으니 그를 어떤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 사람은 항상 눈앞에 있으면서 경계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이 말은 아비 쪽에서 하는 말인가, 자식 쪽에서 하는 말인가?"

 "제 소견으로는 아비 쪽에서 한 말이라 여겨집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고 다시 전좌[典座]에게 물었다.

 "이게 어떤 사람인가?"

 "그는 얼굴도 등도 없는 사람입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으니, 또 다르게 대답했다.

 "이 사람은 얼굴도 눈도 없습니다."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는 그것이 그대로 얼굴없는 사람인데 하필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있겠느냐?"

 이어 스님께서 대신 대답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나 어긋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이는 아직 닦는[功勳] 쪽의 일이다. 닦을 것 없는 닦음[無功之功]이 있는데 어째서 그것을 묻지 않는가?"

 "닦을 것 없는 닦음은 저쪽 사람 일이 아니겠습니까?"

 "뒷날 그대의 그런 말을 비웃을 안목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하고 자연스럽다[調然]하겠습니다."

 "조연하기도 하고, 조연치 않기도 하고, 조연치 않은 것도 아니다."

 "무엇이 조연한 것입니까?"

 "저쪽 사람이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정연치 않은 것입니까?"

 "가릴 곳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갑자기 시자(侍者)를 불러 시자가 오니, 스님께서는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대중에게 일러라. 추운 자는 불을 쪼이고, 춥지 않은 자는 상당(上堂)하라고."

 

58.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일은 반드시 구절구절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장안(長安)으로 통하는 여러 길이 실오라기같이 가늘지만 끊이지 않는 것 같아야 한다. 만일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길이 있으면 그것은 군주(君主)를 받들지 않는 것이니, 이 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것이다. 설사 훌륭하고 묘한 법을 배웠다하여도 역시 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그밖의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사소한 명리 때문에 큰 일을 놓치지 말라. 이런저런 상(相)을 내서 한 조각의 옷과 밥을 얻는다 해도 모두가 종이 되어 반드시 갚게 되어 있다. 옛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종류마다 각각 분수[分齊]가 있다' 했으니,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옷과 밥에만 매이지 말고 인연에 맡겨 집착을 내지 말라. 나의 가풍은 이럴 뿐이다. 듣고 안듣고는 끝내 관계치 않겠으니 이렇든 저렇든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편히들 쉬어라[珍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