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조산록/ 오가어록(五家語錄)] 2. 시중 1~9.

쪽빛마루 2015. 5. 3. 04:41

2. 시 중

 

1.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범부의 마음과 성인의 지견[凡情聖見]이 모두가 오묘한 금사슬 길이니, 그저 회호(回互)하면 될 뿐이다."

 정명식(正命食)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세 가지 함정[三種墮]이 있다.

 첫째는 축생이 되는 것이며[披毛戴角], 둘째는 성색을 끊지 않음이며[不斷聲色], 셋째는 음식을 받지 않음[不受食]이다."

 그러자 그때 법회에서 성긴 베옷을 입은 선승이 물었다.

 "축생이 된다 함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부류에 떨어짐[類墮]이다."

 "성색을 끊지 않음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딸려가는 떨어짐[隨墮]이다." 

 "음식을 받지 않음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존귀함에 떨어짐[尊貴墮]이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본분의 일이다. 본분인 줄 알면서도 취하지 않으므로 이를 '존귀에 떨어짐[尊貴墮]'이라 한다. 만일 처음 마음[初心]에 집착하면 자기와 성인의 지위가 따로 있는 줄 알기에 '부류에 떨어짐[類墮]'이라 한다. 처음 마음을 가질 때는 자기가 있다고 자각하다가도 회광반조(回光返照)할 때에는 소리 · 색 · 향기 · 맛 · 감촉 · 법을 물리치고 평안하고 조용한 것으로 공부를 이루어 더 이상은 6진(六塵) 등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분적으로 어두워져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여섯 외도[六師外道]가 너의 스승이 된다' 하였으니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따라서 떨어지게[隨墮]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어야 할 밥을 가려먹는 것이라야 정명식이다. 그것을 6근의 견문각지(見聞覺知)로도 말할 수 있다. 6근의 그것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는데도 '함정에 빠졌다' 한다면 이는 그것과 균등했던 전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본분의 일도 취하지 않았는데 그 나머지 일이야 어떠하겠는가?

 스님께서 말하는 '함정[墮]'이란 뒤섞어서도 안되고 부류를 같게 해서도 안된다는 의미이고, 또한 '처음 마음[初心]'이라 하는 것은 깨닫고 나서가 깨닫기 전과 같다는 의미이다."

 

2.

 한 스님이 5위군신(五位君臣)의 요지를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위(正位)는 공계(空界)로서 본래 아무것도 없는 자리이며, 편위(偏位)는 색계(色界)로서 만상으로 형태가 나타난 자리다.

 정중편(正中偏)이란 이치를 등지고 현상을 향하는[背理就事]자리이며, 편중정(偏中正)이란 현상을 버리고 이치로 들어가는[舍事入理]자리다.

 겸대(兼帶)란 뭇 인연에 그윽히 감응하면서 모든 유(有)에 떨어지지 않는 자리다.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정위도 아니고 편위도 아니므로 텅 빈 대도(大道)이며, 집착 없는 진종(眞宗)이라 하는 것이다. 옛 큰스님들도 바로 이 자리를 쓰셨으니, 가장 현묘하므로 자세히 살펴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임금[君]은 정위(正位)이며, 신하[臣]는 편위(偏位)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은 편중정(偏中正)이며,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은 정중편(正中偏)이다.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은 겸대(兼帶)라고 한다."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임금입니까?"

 "오묘한 덕은 세상에 드높고 밝아 허공에 환하다."

 "무엇이 신하입니까?"

 "신령한 기틀로 성인의 도를 널리 펴고, 진실한 지혜로 뭇 생령을 이롭게 한다."

 "무엇이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입니까?"

 "이류(異類) 중생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을 모아 성인의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이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입니까?"

 "오묘한 모습 움직이지 않으나 밝은 빛은 본래 빠짐없이 비춘다."

 "무엇이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입니까?"

 "뒤섞여 안팎이 없고, 녹아져 상하가 공평하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임금과 신하, 편위와 정위로써 말한다면 중(中)을 범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므로 신하는 임금을 지칭하는데 감히 배척해서 말하지 않는다 함이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 법문의 요점이다."

 그리고는 게송을 지었다.

 

학인은 무엇보다 자기 종지를 알아야 하니

진리[眞際]로 허공[頑空]을 뒤섞지 말아라

묘하고 밝은 바탕 다하면 상함을 알 것이니

힘써 인연을 만날 뿐 중도를 빌릴 것 없다네

말을 꺼냈다 하면 불타지 못하게 하며

가만히 행함은 옛사람과 같아야 하리

몸 없고 일 있음에 갈림길을 벗어나고

일 없고 몸 없으니 시종에 떨어진다네.

學者先須識自宗  莫將眞際雜頑空

妙明體盡知傷觸  力在逢緣不借中

出語直敎燒不著  潛行須與古人同

無身有事超岐路  無事無身落始終

 

 다시 다섯 가지 모양을 만들고 게송을 붙였다.

 

서민을 재상에 임명하는 일

이 일은 이상할 것 없다네

대대로 내려온 벼슬아치들이여

숨 떨어질 때를 말하지 말라.

白衣須拜相  此事不爲奇

積代簪纓者  休言落鼻時

 

자시(子時)가 정위(正位)에 해당하니

밝음과 올바름이 임금과 신하에 있어라

도솔세계를 떠나지 않았는데

검은 닭은 눈 위로 간다네.

子時當正位  明正在君臣

未離兜率界  烏雞雪上行

 

불꽃 속에 찬 얼음 맺히고

버들꽃은 9월에 날리네

진흙소는 물 위에서 포효하고

목마는 바람따라 울부짖네.

燄裏寒氷結  楊花九月飛

泥牛吼水面  木馬逐風嘶

 

황궁에 처음 강생(降生)하신 날

하늘 나라를 떠날 수 없었네

쓸 것[功]없는 종지를 얻지 못하니

인간 · 천상은 어찌 그리 더딜까.

王宮初降日  玉兎不能難

未得無功旨  人天何太遲

 

이치와 현상을 섞어 갈무리하니

그 조짐 끝내 밝히기 어려워라

위음왕불(과거불)도 깨닫지 못했는데

미륵불(미래불)이 어찌 깨닫겠는가.

渾然藏理事  朕兆卒離明

威音王未曉  彌勒豈惺惺

 

3.

 스님께서 행각할 때에 오석 관(烏石觀)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따로 있는 것이 된다."

 스님께서 동산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좋은 대화이긴 하다만 그대가 한 마디를 덜 했구나. '어째서 말씀해주지 않습니까' 하고 왜 묻질 않았더냐."

 스님께서 다시 가서 앞 말에 이어 묻자 오석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셈이며, 말을 했다고 한다면 나를 말더듬이로 만드는 것이다."

 스님께서 돌아와 동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깊이 수긍하셨다.

 

4.

 운문(雲門)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절 밥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나가고 있을 땐 어떻습니까?"

 "쌓아 모을[畜]수도 있느냐?"

 "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으려느냐?"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어려움 있겠습니까?"

 "왜 털 쓰고 뿔 달린 축생이라고 말하질 않느냐?"

 그러자 운문스님은 절하였다.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제방에서는 모두들 격식을 붙들고 있는데, 어째서 딱 깨치게 해 줄 한 마디를 던져 그들의 의심을 없애주지 않느냐."

 운문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어째서 있는 줄을 모릅니까?"

 "바로 그 부사의함 때문에 있는 줄을 모른다."

 

설두스님은 달리 대답[別語]하였다.

"달마가 왔군."

 

 운문스님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가까이 하지 말게."

 "매우 부사의한 곳에서가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비로소 가까이 할 줄 안다 하겠네."

 운문스님은 녜, 녜 하였다.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탁한 기름에 다시 검은 등심지를 붙이는군."

 

 운문스님이 "뒤바뀌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스님께서는 맞이하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조산은 그런 쓸데없는 짓은 안한다."

 

5.

 미화상(米和尙)이 찾아와 만나보기도 전에 선상에 앉자 스님께서는 아예 나와보지도 않았고 미화상도 그냥 떠나버렸다. 그러자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물었다.

 "스님, 선상에 어째서 다른 사람이 앉게 되었습니까?"

 "떠난 뒤에 다시 돌아올걸세."

 미화상은 과연 돌아와서 스님을 만났다.

 

6.

 지거(智炬)스님이 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옛사람은 저쪽 사람을 이끌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체득해야 하겠습니까?"

 "뒤로 물러나 자기에게 나아가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다."

 지거스님은 말끝에 현묘한 이해[玄解]를 싹 잊었다.

 

7.

 금봉 지(金峯志)스님이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하러 왔느냐?"

 "지붕을 덮으러 왔습니다."

 "다 했느냐?"

 "이쪽은 끝냈습니다."

 "저쪽 일은 어찌 되었느냐?"

 "공사 끝나는 날 스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 그렇지" 하셨다.

 

8.

 청세(淸稅)라는 스님이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오니 스님께서 구제해 주십시오."

 "청세는 이리 가까이 오게나."

 청세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청원(淸原) 백가(百家)의 석 잔 술을 마시고서 입술도 축이지 못했다 하는구나."

 

현각(玄覺)스님은 말하였다.

"어느 곳에서 그에게 술을 마시라고 주었느냐."

 

9.

 경청(鏡淸)스님이 물었다.

 "맑고 텅 빈 이치라서 아예 몸이 없을 땐 어떻습니까?"

 "이치[理]로야 그렇다치고 사실[事]은 어떡하려고."

 "이치로나 사실로나 여여합니다."

 "나 한 사람 속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치고 여러 성인의 눈은 어찌하겠느냐?"

 "여러 성인의 눈이 없다면 그렇지 않은 줄을 어찌 비춰보겠습니까?"

 "법으로야 바늘만큼도 용납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레도 통할 수 있는 법이지."

 

 대위 철(大潙喆)스님이 말하였다.

 "조산이 비록 옥을 잘 다듬기는 하나 경청의 옥에는 본래 흠집이 없었는데야 어찌하랴. 알고 싶으냐. 잽싼 솜씨를 빌리지 않으면 결국 못쓰는 그릇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