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 對機) 2~3.

쪽빛마루 2015. 5. 14. 09:04

2.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보이셨다[示衆].

 “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당장에 아무 일 없어진다 해도 벌써 서로를 매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을 쫓아 이해하려 하며 천차만별로 질문과 논란을 던지려 한다면 한바탕 말재주만을 늘릴 뿐, 도에서는 더더욱 멀어지리니 어느 때나 쉴 날이 있으랴.

 이 일이 말에 달렸다면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를 설해놓고도 어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였겠으며, 무엇 때문에 교외별전을 말하였겠는가. 배워서 이해하는 지혜[機智]로 치자면 비나 구름같이 자재하게 설법하는 10지(十地) 보살도 견성(見性)에 있어서는 비단으로 한 겹 가리고 보는 격이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므로 어쨌든 마음에 무엇이라도 있으면 모두가 천지처럼 벌어진다는 것을 알겠다.

 그렇긴 하나 체득한 사람이라면 불을 말해도 입을 태우지 못하듯, 종일토록 무엇을 말해도 입을 뗀 일이나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으며, 종일 옷 입고 밥 먹어도 쌀 한 톨 씹거나 한 오라기 실도 걸친 적이 없다. 그렇다 해도 이것은 아직 가깝다 할 정도의 얘기니, 반드시 실지로 체득해야만 하리라.

 납승 문하로 치자면 말[句] 속에서 기미[機]를 챈다 해도 부질없이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며, 설사 한마디 말 끝에 바로 알아차린다 해도 까맣게 잠들어 있는 놈이다.”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그 한마디입니까?”

 “들어보이는 것이다.[擧].”

 “말하면서 침묵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맑은 기[淸機]가 손바닥을 스친다.”

 “무엇이 침묵하면서 말하는 것입니까?”

 “어험, 어험.”

 “그렇다면 침묵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을 땐 어떠합니까?”

 스님은 방망이로 그 스님을 쫓아버렸다.

 

 “무엇이 운문의 칼입니까?”

 “조사(祖師)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의 해탈처입니까?”

 “다른 질문 하나 해 보아라.”

 

 “무엇이 큰길가의 흰 소[露地白牛]*입니까?”

 “근기를 살펴보니 고칠 길이 없다.”

 “어디에다가 놓아줍니까?”

 “두 번을 얘기해 주어도 티끌만큼도 넘어서지 못하는구나.”

------------------------------------

* 큰길가의 흔 소 [露地白牛] : 「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말로서 2승과 보살을 사슴수레 양수레에 비유하는 데 비하여 흰 소는 일승(一乘)을 비유한다.

------------------------------------

 

 “티끌마다 삼매[塵塵三昧]란 무엇입니까?”

 “물통에는 물, 발우에는 밥이다.”

 

 “무엇이 한결같고[一如] 현묘한 자체입니까?”

 “그대의 한마디 질문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현묘한 가운데 분명한 것입니까?”

 “안[裏]이다.”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빨리 나가거라, 빨리 나가. 남 질문하는 데 방해될라.”

 

 “어떤 경계가 사량하지 않는 경계입니까?”

 “알음알이[識情]로는 헤아리기 어렵지.”

 

 “벽을 뚫고 빛을 훔쳐보는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좋다[恰].”

 

 “한마디 말을 다 했을 땐 어떻습니까?”

 “조각조각 찢어버린다.”

 “그렇다면 스님께선 어떻게 손을 써서 수습하시렵니까?”

 “쓰레받기와 비를 가져 오너라.”

 

 “어떻게 설명해 이끌어주면 찾아오는 근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그래도 온 마음은 알아주시려는지요?”

 “우선 서둘지 말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3승 12분교에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고, 세상의 모든 큰스님들도 이리저리 자재하게 말해 주셨으니, 그 설명한 도리를 바늘만큼이라도 끄집어내어 내게 가져와 보라.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해도 죽은 말[死馬]이나 붙들고 고치는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긴 하나 이 경계에 도달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대들에게 말 속에 메아리가 있고 말마디 속에 칼끝을 감추는 근기가 되기는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저 바람 잠잠하니 물결이 고요하구나. 귀신들아, 마음껏 먹어라[伏惟尙饗, 제사 끝에 붙이는 축원].”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한마디입니까?”

 “북두 속에 몸을 숨긴다[北斗藏身].”*

----------------------------------

* 북두장신(北斗藏身) :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로 일상을 뛰어넘은 도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

 

 “무엇이 근본 뜻[宗]입니까?”

 “묻지 않으니 답하지 않는다.”

 

 “‘3계는 오직 마음이며 만법은 다 식이다[三界唯心萬法唯識]’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대답하지 않겠다.”

 “어째서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어느 세월에 알겠느냐?”

 

 “무엇이 취모검(吹毛劍 : 머리카락을 놓고 훅 불면 베어진다는 날카로운 칼)입니까?”

 스님께서는 “깡마른 뼈다귀다” 하더니 다시 “썩은 살이다” 하셨다.

 

 “어떤 것이 안팎으로 비추는 빛입니까?”

 “누구에게 묻는 말이냐?”

 “어떻게 해야 분명히 알 수 있을까요?”

 “홀연히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묻는다면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분명하게 안 뒤엔 어떻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안다는 것부터 가져와 봐라.”

 

 “무엇이 급하고 간절한 한마디입니까?”

 “에, 에(吃 : 말 더듬는 소리)”

 

 “무엇이 본래 마음입니까?”

 “들어보이니 분명하다.”

 

 “무엇이 납승의 면목입니까?”

 “한 번은 놓아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소[牛] 앞에서 비파를 타는 격이다.”

 

 “무엇이 대승의 수행입니까?”

 “손에 물통[榼] 하나를 들었다.”

 

 “무엇을 ‘모든 것을 아는 청정한 지혜’라 합니까?”

 “승당(대중이 기거하는 집)에서 법당[佛殿]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입을 떼지 않고 하는 한마디 입니까?”

 “개 아가리 닥치는 게 좋겠다.”

 

 “무엇이 해인삼매(海印三昧)입니까?”

 “그대는 절만 하다가 내가 오락가락하면 그때 가서 묻거라.”

 

 “어떻게 해야 움찔했다 해도 차별[階級]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남두성(南斗星)*은 일곱, 북두성(北斗星)*은 여덟이다.”

---------------------------------------

* 남두성 : 남쪽에 있는 별자리. 국자모양으로 6개로 되어 있다.

* 북두성 : 북쪽에 있는 별자리. 국자모양으로 7개로 되어 있다.

---------------------------------------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모두가 제방에서 선지식을 참례하여 생사를 결택하였을텐테, 간 곳마다 어찌 큰스님이 베푸신 방편의 말씀이 없었으랴. 거기서 꿰뚫지 못한 말이 있느냐? 나와서 꺼내놓고 이 늙은이가 그대들과 함께 평하기를 기대해 보아라. 있느냐, 있어?”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질문을 하려는 차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거라, 가. 서천(西天) 길은 아득히 십만여 리나 된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와버렸다.

 

 “지금 하시는 법문이 무엇입니까?”

 “말하긴 어렵지 않다만 무슨 수로 살펴보겠느냐[鑑]?”

 

 “잠들지 않는 눈은 어떤 눈입니까?”

 “모르겠다.”

 

 “무엇이 범해서는 안되는 법령입니까?”

 “저 스님이 보이느냐?”

 

 “대인(大人)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주먹을 높이 들었다.

 

 “제가 매우 간절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내가 모를까 봐서 그러느냐?”

 

 “불법의 요점이 무엇입니까?”

 “부처님 한 분에 두 보살이다.”

 

 “눈쌓인 산고개에서 진흙소가 포효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산도 달리고 물도 달린다.”

 “그러면 운문의 목마(木馬)는 어떻게 웁니까?”

 “천지가 온통 암흑이다.”

 

 “무엇이 사형 ⋅ 사제들이 10자(十字 : 차별, 분별사량)을 보태는 것입니까?”

 “내가 그대와 구구한 말을 나누는구나.”

 

 “스님께서 납자를 지도하는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속으로 남을 저버리지 않으니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빨리 3배(三拜) 하라.”

 

 “무엇이 자연스러운 일입니까?”

 “앞으로 내딛여 무엇하려느냐?”

 

 “무엇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뜻입니까?”

 “혀끝에서 더듬거리는구나. 질문 하나를 다시 던져 보아라.”

 

 “무엇이 자유자재[七縱八橫]함입니까?”

 “그대를 한 번 놓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