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 對機) 32~45.

쪽빛마루 2015. 5. 14. 09:22

3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눈동자는 시방에 길게 뻗쳤으며, 눈썹은 위로 하늘을 뚫고 아래로는 황천(黃泉)까지 뚫었으며, 수미산은 그대의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알아낸 점이 있느냐? 알았다면 점파국(占波國 : 서역)을 이끌고 가 신라국과 한판 붙어보아라.”

 

3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강서(江西)에서는 군신부자를 설명하고 호남에선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한참 잠자코 있다가 “벽이 보이느냐?” 하셨다.

 

3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가거라, 가. 서로 번갈아 바보짓해서 언제 끝날 날이 있겠느냐?”

 다시 대중들에게 물었다.

 “내 말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느냐?”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한 가지도 물어서는 안된다.”

 “녜” 하고 대답하자 스님은 혀를 차면서 “말귀도 못 알아듣는군” 하셨다.

 

 “오늘은 나한에게 공양을 할텐데, 나한이 오실까요?”

 “그대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도 말하지 않았으리라.”

 “말씀해 주십시오.”

 “3문(三門) 앞에서 합장하고 법당 안에서 향을 사룬다.”

 

 “무엇이 납승의 본분사입니까?”

 “남쪽엔 설봉이 있고 북쪽엔 조주가 있다.”

 “스님께선 복잡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질문한 취지를 놓쳐서는 안된다.”

 학인이 “녜” 하고 대답하자 별안간 후려쳤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알면 일이 한 집안을 같겠지만 모르면 어금니가 빠져 앞니를 뺀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한 집안일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마구 다녀서 무얼하려느냐?”

 

3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옛부터 있어온 것은 무슨 일이겠느냐? 이제 부득이 여러분에게 말해주겠다.

 온 누리에 그 무엇이 있어 그대와 관계를 맺고 상대하고 하느냐? 만일 바늘이든 쇠막대든 그대 앞에 거리적거리는 것이 있거든 어디 가져와 보라. 무엇을 부처라 하고 조사라 하며, 무엇을 산하대지 일월성신이라 하겠느냐, 또 무엇을 4대 5온(四大五蘊)이라 하겠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촌노파의 시시껄렁한 말일뿐이니 홀연히 참되게 행각하는 납자가 이런 말을 듣고 다리를 붙들어 뜰 아래로 끌어낸다 한들 무슨 죄가 되겠느냐. 그렇긴 하나 무슨 도리에 의거하길래 그렇겠느냐? 그 달변으로 여기에서 어지럽게 말하지 말지니, 납자라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홀연히 내 발밑에서 보살핌을 받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다리를 분질러버린들 무슨 죄가 있으랴.

 이런판에 여기서 종승(宗乘)의 이야기를 묻겠느냐? 한마디로 딱 깨치게 해 줄 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 이리저리 다녀라.”

 그러자 한 스님이 막 질문을 하려는데 스님은 주장자로 입을 딱 때리면서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사자가 기지개를 켤 땐 어떻습니까?”

 “기지개는 우선 그만두고 포효 한번 해 보아라.”

 그 스님이 “녜” 하자 스님은 “늙은 쥐가 찍찍대는구나” 하셨다.

 

3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에게 한마디가 있는데, 굳이 그대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래도 누가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다” 하고는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3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부득이하여 우선 쓸데없는 짓을 하나 하겠다. 그들에게 말하노니, 이게 무엇이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있느냐 없느냐, 보느냐 듣느냐, 향상이냐 향하냐, 그러냐 안 그러냐, 이런 것을 몇 집 안되는 촌구석 노파의 말이라고 한다. 그대들 중에 몇 사람이나 이 경계에 도달하였느냐? 나올테면 나와바라. 나오지 않겠거든 조용히 있거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3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제방의 노스님들은 ‘성색(聲色) 밖에 어떤 일이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나, 이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말이다. 세 칸 법당 안에서 저 혼자 망상만 부릴 뿐, 한번도 꿈에서나마 우리 부처님[本師]의 종지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자기 신도의 시주를 받을 수 있으랴. 죽는 날에 낱낱이 꼭 그들에게 갚아 주어야 될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기뻐 뛰는 그대들 각자 노력에 달렸다. 몸 조심하라.”

 

 “목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라면 생사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는 영원히 면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 도(道)입니까?”

 “가거라.”

 “알아듣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화상!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거듭 판결을 하는가?”

 

 “유마거사의 침묵 한 번이 말을 한 것이나 같습니까?”

 “이 한마디 질문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말을 한 것과 같군요.”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했지?”

 

 “무엇이 청정법신입니까?”

 “약초밭이다.”

 “그렇게 이해했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금빛 사자이지.”

 

39.

 상당하였는데 마침 종이 울리자 소리를 듣고 말씀하셨다.

 “세계가 이토록 드넓은데 종소리는 어째서 서까래에 닿으냐?”

 

40.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설상가상이 되게 해서는 안되다. 몸 조심하라”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4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제방에서는 머리 빠진 늙은 중들이 굽은 나무토막 선상에 앉아 명예와 이익을 구한다. 그러면서 부처를 물으면 부처를 답하고, 조사를 물으면 조사를 답하며, 똥 오줌을 싸고 있다. 이는 촌구석 노파가 구령(口令)을 전하는 꼴이니, 무엇이 좋고 나쁜 것임을 알랴. 이런 작자들은 모두 물 한방울도 받기 어려울 것이다.”

 

42.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누구나 자기에게 밝은 빛이 있는데, 볼라치면 보이지 않고 깜깜할 뿐이다”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43.

 스님이 서울에 들어가 수춘전(受春殿)에 있을 때 왕[聖上]이 물었다.

 “무엇이 선(禪)입니까?”

 “왕께서 칙명을 내리시니 저[臣僧]는 대답합니다.”

 

 스님이 문덕전(文德殿)에 계실 때 재(齋)에 갔더니 국상시(鞠常侍)가 물었다.

 “신령한 나무[靈樹]에 열매가 익었는지요?”

 “어느 때나 도에 대한 신심이 생겨나겠느냐?”

 

4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별일없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무엇을 찾느냐? 나는 그저 밥 먹고 똥 오줌 쌀 줄만 알 뿐이다. 별달리 안다 한들 무엇을 하겠느냐? 그대들은 제방에서 참선하며 도를 묻는데, 그러면 제방에서 참구한 일이 무엇이냐? 한번 꺼내 보아라.”

 다시 말씀하셨다.

 “중간에 너의 집안 아버지를 속여서야 되겠느냐? 내 뒷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흘린 침이나 받아 씹어새겨 자기 것이라 하고서는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고 말한다. 설사 그대가 일대장경을 외운다 한들 무엇에 쓰려 하느냐?

 옛사람은 그대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고는 마지못해 ‘보리와 열반’을 말씀하셨으나, 그것은 그대를 매몰하거나 말뚝을 박아 묶어두는 것이다. 또 그대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보리 열반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나, 이런 일은 애당초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데도 게다가 그 사람들의 주해(注解)나 찾고 있으니, 이러한 사람은 부처의 종족을 멸하는 부류이다. 옛날에도 다 그러했다면 무슨 수로 오늘에 이르렀겠는가.

 지난날 행각할 때 어떤 사람이 내게 주석서를 하나 주었는데, 비록 그가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런것은 아니었으나 하루는 내가 그것을 보고는 한바탕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내 3, 4년 죽지 않고 산다면 부처 종자를 없애는 이런 놈은 도끼 한 방에 다리를 찍어서 부러뜨리리라.

 요즈음 제방에는 떠들썩하게 세상에 나와서 허세를 부려 사기치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들은 어째서 그리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무슨 마른 똥막대를 찾느냐?”

 그리고는 바닥으로 내려와 주장자로 몽땅 후려쳐서 쫓아내버렸다.

 

 “무엇이 만법을 한 번에 결판하는 것입니까?”

 “질문한 뜻을 놓치지 말라.”

 

 “죽었다 살아났을 땐 어떻습니까?”

 “아침에 3천리, 저녁에 8백리를 가는구나.”

 

 “대중이 많이 모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습니까?”

 “오늘은 그냥 보내도록 하라.”

 그 스님이 절을 올리자 스님은 갑자기 후려쳤다.

 

 “어떤 것이 제 자신입니까?”

 “내가 모를까봐 그러느냐.”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말입니까?”

 “바다는 잔잔하고 강은 맑다.”

 도사(道士 : 노장의 도를 닦는 사람)가 물었다.

 “보고 들어도 소리 없고 모양 없다 한 것은 노자(老子)의 말씀이니다만 운문의 한마디는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인도로 가는 아득히 먼 길이다.”

 대꾸가 없으므로 스님이 법좌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도사가 말하였다.

 “스님께서 종지를 보여 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오너라.”

 대중이 대꾸가 없자 스님은 “그렇다면 법문을 청한 장본인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45.

 상당하여 대중이 모여앉자 스님께서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 우선 여기에서 알아차리도록 하라. 저것 좀 보아라. 3문(三門)이 법당 앞 큰 기둥[露柱] 위에 있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