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85~107.
85.
“푸르고 푸른 대나무가 그대로 다 법신이다.” 한 법신설법(法身說法)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것도 강령을 곧바로 제기하는 경계는 아니다.”
86.
“유위(有爲)엔 삼세가 없고 무위(無爲)엔 삼세가 있다” 한 말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유위는 단멸법(斷滅法)인데 어디서 삼세를 찾겠으며, 무위엔 삼세가 있으니 고요함을 지키는 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87.
“실다운 공부란 구구한 이론이다” 한 것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우는 경우라 해도 실다운 공부에 있어선 아직 도중에 있을 뿐이다.”
88.
“세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은 설법을 듣고 깨달았고,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끝에 깨달았으며, 세 번째 사람은 거량(擧兩)하는 것을 듣고 바로 되돌아가버렸다” 한 것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말해보라. 바로 돌아가 버린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말씀하셨다.
“그래도 족히 몽둥이 30대쯤은 맞아야겠구나.”
89.
“법신이 밥을 먹는다 해도 벌써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격이다” 한 것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그럴 법한 말이라고 여겼더니…”
90.
어떤 스님이 운거(雲居)스님에게 묻기를, “깊고 깊을[湛然] 땐 어떻습니까?” 하니 “흐르지 않겠지”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흐르지 않는데 무슨 깊고 깊음을 말하느냐?”
다시 말씀하셨다.
“이는 무쇠를 끊는 말이다.”
91.
“약과 병이 서로를 다스려 온 누리가 약인데 그렇다면 무엇이 그대 자신이냐?” 한 것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천한 사람을 만나면 귀해지리라.”
그러자 한 스님이 가르쳐 주기를 청하자 스님은 박수를 한번 치고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주장자를 받아라.”
그 스님이 주장자를 받더니 꺾어서 두 쪽을 내버리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설사 그렇다 해도 몽둥이 30대 감이다.”
92.
취암(翠巖)스님이 여름 결재 끝무렵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여름 한 철을 스님네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지냈는데 이 취암의 눈썹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는가?”
이에 대해 보복(保福)스님은 “남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놈아!” 하였고, 장경(長慶)스님은 “생겼다[生]”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닫혔다[關].”
93.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감히 그대들 가운데 물결을 거슬리는 파도가 있기를 바라진 않겠다. 그저 물결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진 자도 만나보기 어렵구나.”
이어서 스님은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양수(良遂)스님이 처음 마곡(麻谷)스님을 참례하였을 때 마곡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풀을 매러 가버렸다. 양수스님이 풀 매는 곳까지 찾아갔더니 마곡스님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방장실로 되돌아가 문을 닫아버렸다. 양수스님은 연 사흘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사흘째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마곡스님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양수스님은 ‘스님은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스님께 찾아와 절하지 않았더라면 경론(經論)에 일생을 속아 지낼 뻔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물결을 거슬리는 파도이더니 이제 물결을 따라주는 마음에 들었[得入]구나. 그것은 또한 거슬리고 따라주는 양쪽을 다 놓아주는 경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마곡스님이 ‘누구냐’고 물은 것과 양수스님이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한 것은 마곡스님과 만난 순간 알고 타파한 경계는 아니다. 또 ‘스님께 찾아와 절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경론에 속아 지낼 뻔 하였습니다’ 한 것도 사람을 속인 곳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뒤 양수스님은 서울로 돌아갔다가 황제와 좌우가(左右街 : 승려의 관직)를 하직하였는데, 대사와 대덕들이 재삼 머물기를 권하여 차를 마시게 된 자리에서 말하기를, ‘여러분이 아는 것은 이 양수가 모조리 알지만 양수가 아는 경계를 여러분은 모른다’ 하였다. 자, 무엇이 양수만이 안다 한 것이냐?”
94.
「심경(心經)」에 “눈 · 귀 · 혀 · 몸 · 뜻이 없다” 한 것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그대에겐 눈으로 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제 무엇인가를 볼 땐 없다 말하지 못하리라. 그렇긴 하나 모든 것을 보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으며, 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 · 향기 · 맛 · 감촉 · 법이 있겠느냐?”
95.
“고요하면서도 비추는 [寂照] 빛이 항하사 세계에 두루하다” 한 말을 들려주면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는 수재(秀才) 장졸(張拙 : 五代宋初의 居士)의 말이 아니더냐?” 그 스님이 “그렇습니다” 하니 스님이 “실언을 했구나” 하셨다.
96.
한 스님이 석상(石霜)스님을 하직하자 석상스님이 물었다.
“배로 가려느냐, 육지로 가려느냐?”
“배를 만나면 배로 가고 뭍을 만나면 뭍으로 가겠습니다.”
“내가 말하겠는데 앞길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말씀하셨다.
“30년 뒤에 이 말이 매우 널리 퍼질 것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떠날 때의 한마디는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97.
“허공을 두드리니 메아리가 일어나고 나무를 치니 아무 소리 없어라”고 한 도생(道生)법사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로 공중을 두드리면서 “아야야!” 하셨다.
다시 널판을 두드리더니 “소리가 나느냐?” 하셨다.
한 스님이 “소리가 납니다” 하자 스님은 “이런 속인같으니!” 하고는 다시 널판을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무엇을 가지고 소리가 난다 하느냐?”
98.
한 스님이 석상(石霜)스님에게 물었다.
“교(敎) 중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있지.”
“무엇이 교 가운데 조사의 뜻입니까?”
“책 속에서 구하지 말라.”
이에 대해 스님께서 대신(석상스님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나를 저버려선 안된다. 그렇게 똥구덩이 속에 앉아서 무엇 하려느냐?”
99.
석상스님이 말씀하셨다.
“경전 밖에 별도로 전하신 한마디가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경전 밖에 별도로 전한 한마디입니까?”
“한마디가 아닌 것이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한마디가 아닌 것[非句]이라야만 비로소 한마디[是句]일 수 있다.”
100.
동산(洞山)스님이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향상사(向上事)가 있음을 꼭 알아야만 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향상사입니까?”
“부처가 아닌 것이지.”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이름도 붙이지 못하며 모양으로도 그려내지 못하니 그러므로 아닌 것이라 하였다.”
101.
“티끌 세상 속에서 물들지 않아야 대장부이다” 하신 동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장자를 주장자라고 부를 뿐이며 모든 것을 다 그렇게 부를 뿐이다.”
102.
“ ‘법신을 청정하고 모든 빛과 소리는 다 구차한 말이다’ 한 것에서 구차한 말에 끄달리지 않는다면 무엇이 청정이며 또 무엇을 법신이라 하느냐?” 한 것을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6(6근, 6경, 6식 따위)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시 말씀하셨다.
“33천(天) 28수(宿)다.”
103.
“내 몸이 비었고 모든 법도 공하듯 천품만류가 다 그러하다” 하신 옛사람의 말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시기를, “자기 몸도 찾을 곳 없는데 일체 모든 법이 어찌 있으랴.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무정(無情)에게 불성(佛性)이 있다’ 하였던 것이다” 하셨다.
다시 말씀하셨다.
“무정이 법신설법을 한다 해서는 안된다.”
104.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 병통이 있으니, 사방이 어두워서 눈앞에 무엇인가가 있는 경우와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꿰뚫었다 해도 가물가물 물상이 있는 듯한 경우이다.
법신에도 두 가지 병통이 있다. 하나는 법신에 도달했으나 법집(法執)을 놓지 못해서 나는 법신을 알았노라는 생각을 붙잡고 법신 쪽에 눌러앉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설사 법신을 깨쳤다 해도 놓아버려서도 안되니, 자세히 점검해 보아 어떠한 기미라도 있기만 하면 역시 병통이다.”
105.
한 스님이 국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본신(本身)인 노사나(盧舍那)입니까?”
“노승에게 물병을 가져 오너라.”
그 스님이 물병을 가져 오자 국사는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제자리에 두고 와서 물었다.
“무엇이 본신인 노사나입니까?”
“부처님 가신 지가 오래되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흔적도 없구나.”
106.
한 스님이 관계(灌溪)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인데 와서 보니 삼[麻] 담그는 연못만 보일 뿐이군요.”
“그대는 삼 담그는 연못만 보았을 뿐 아직 이 관계는 모르는구나.”
그 스님은 다시 물었다.
“무엇이 관계입니까?”
“벽력같이 빠른 화살이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으뜸가는 경계[第一機]로 대꾸하지 않았을까.”
107.
위감군(韋監軍)이 휘장[帳]을 보더니 소가 나무를 들이받는 그림을 그리고는 한 스님에게 물었다.
“소가 나무를 들이받는가, 나무가 소를 들이받는가?”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말씀하셨다.
“불법승에 귀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