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108~131.
108.
어떤 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설봉스님에겐 나무공을 굴리는 화두*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가?”
“그런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스님들이 멋대로 들먹였을 뿐이겠죠.”
“그러면 멋대로 들먹이지 않는 일은 어떤 것인데?”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말씀하셨다.
“저는 이제 막 와서 아직 큰방에 들어가지도 못하였습니다.”
-------------------------------------* 설봉(雪峯)스님은 세 개의 나무 공[木毬]을 밟고 섰다가 납자가 오는 것을 보면 하나를 차내기도 하고 때로는 둘을 차내기도 하였다. …(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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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부처님이 한 외도에게 묻기를, “그대의 이론[義]에서는 무엇이 주된 내용[宗]이오?”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외도를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이 늙은 화상아, 나는 그대를 안다.”
외도가 말하기를,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하였는데 스님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한 수 놓아 드리겠습니다” 하셨다.
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가?”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외도를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구담(瞿曇 : 부처님)이여, 질문한 뜻을 놓치지 마십시오.”
110.
“온 누리가 그대 자신이니 따로 무엇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하신 설봉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중생들이 전도되어 자기인 줄 모르고 다른 사물을 쫓으니 사물을 굴릴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지리라’ 한 「능엄경」의 말씀을 보지도 못했느냐?”
111.
“모든 법의 적멸상(寂滅相)을 말로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 교학[敎]의 말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견해가 분명 지금 한 말과 같다면 말을 하느니 않느니 할 여지가 어디 있겠느냐. 듣지도 못했느냐, ‘가도 갈 곳에 이르지 못하며, 와도 올 데에 이르지 못한다” 한 말을.’
112.
“모든 진여가 모든 것을 머금었다” 한 말을 들려주며 “무엇을 산하대지라고 하겠느냐?” 하고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법의 빈 모습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113.
스님께서는 간혹 주장자를 잡고 시중하셨다.
“주장자가 용으로 둔갑하여 천지를 삼켜버렸다. 이제 어디서 산하대지를 찾겠느냐?”
스님은 혹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누가 빠져 나올 사람 없느냐?”
114.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고 한 교학[敎]의 말을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석가부처님은 어디 갔느냐?”
115.
한 스님이 투자(投子)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이 경전입니까?”
“유마경 · 법화경이다.”
다시 물었다.
“티끌에 물들지 않는 대장부일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틀렸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법신이라 하지도 못하며 으뜸가는 이치[第一義]라 하지도 못하나 설법도 하며 진공(眞空)을 설하기도 한다.”
116.
스님께서는 재(齋)를 지내는 차에 숟가락을 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남쪽 스님에겐 공양하지 않고 북쪽 스님에게 공양한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째서 남쪽 스님에겐 공양하질 않습니까?”
“그들을 바보로 만들고 싶어서 그런다.”
“그러면 어째서 북쪽 스님에게만 공양을 하십니까?”
“화살 한 발에 두 표적이다.”
한 스님이 이 문제를 끄집어 내어 물었다.,
“앞의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좋은 일은 함께 누린다.”
117.
스님께서 혹 주장자로 법당 앞의 돌기둥을 한 번 치면서 말씀하시기를, “3승 12분교로 설명해 낼 수 있을까?” 하고는 스스로 “설명해 내지 못하지” 하셨다.
다시 말씀하셨다.
“쯧쯧, 이 여우같은 망상꾸러기야.”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장씨[張公]가 술을 마시니 이씨[李公]가 취한다.”
118.
옛사람이 “사람을 놀라게 할만한 한마디 말이 있다”고 하자 한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사람을 놀라게 할만한 한마디입니까?”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메아리.”
119.
“점교(漸敎)로 말하자면 영원한 도에 돌아가 부합한다 하겠으나 돈교(頓敎)로 치자면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하신 국사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우며 손가락을 튕기는 경계라 해도 점점해 보면 모두 역시 자취가 없진 못하다.”
120.
스님께서 어느 땐가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셨다.
“하늘 땅 온 누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모두 이 안에 있다.”
그러자 한 스님이 불쑥 나와서 물었다.
“무엇이 죽이는 것입니까?”
“일곱 번 자빠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살리는 것입니까?”
“밥 짓는 공양주[飯頭]가 되고 싶으냐?”
“죽이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스님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말씀하셨다.
“마하반야바라밀.”
121.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사람을 만나면 길을 가다가도 상대[受用]해 준다.”
이어서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주장자도 길이 아니며, 지금 하는 말도 길이 이니다.”
122.
“법신이 밥을 먹으니 허깨비로 나타난 부질없는 몸 그대로가 법신이다” 한 말을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하늘 땅 온 누리가 어느 곳에 있느냐. 그 어디에도 그것이라 할 곳이 없으니, 허공으로 허공을 보는 격이다. 가령 자세히 따져 보는 입장에서라면 그럴 법한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123.
“응신(應身) · 화신(化身)은 진짜 부처가 아니며, 설법하는 자도 아니다” 한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응신 · 화신의 설법이 그대로 법신의 설법이며 또한 보는 족속 완전한 진실이라고도 하니, 이는 법신을 법신이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밥도 법신이 아니며, 주장자도 법신이 아니다.”
124.
스님께서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문(宗門)은 자유자재하여 죽이고 살리기를 그때그때 맞춰서 한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물엇다.
“무엇이 죽이는 것입니까?”
“겨울이 가니 봄이 오는구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땐 어떻습니까?”
“주장자를 비껴 지고 동서남북 마음 내키는대로 다니며 썩은 나무 등걸을 한번 친다.”
125.
스님께서 시중하셨다.
“그대가 종횡무진으로 자재하게 말할 수 있다 해도 아직 종문의 자손은 아니니, 종문 자손으로 치자면 이 무슨 헛소리겠느냐.
3승 12분교도 꿈을 말하였고,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도 꿈을 말하였으니, 가령 어떤 큰스님이 개당하여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한다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백천만 명의 사람을 죽인들 무슨 허물이 있으랴.”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할 만한 도리가 있음직하리라 생각했더니….”
126.
스님께서 하루는 말씀하셨다.
“백추를 잡거나 불자를 세우거나 손가락을 튕기거나 눈썹을 드날리거나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하는 것이 모조리 종승(宗乘)의 본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종승의 본분인지요?”
“지하 염부제까지도 여러분들은 모두 말할 수 있다. 시끄러운 시장 안에 앉아 있는 아침 나절에, 돼지고기 파는 탁자와 썩은 거름 구덩이 속의 벌레에도 불조를 뛰어넘는 이치가 있더냐?”
“어떤 사람은 긍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긍정하지 않는 사람을 헤아릴 땐 있다가도 헤아리지 않을 땐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말하는 입장은 본체[體]의 입장에서 현상[事]을 이해한 것이니, 그것을 놓고 도달하지 못했다고만 말한다면 고루하고 막힌 견해일 것이다.”
127.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나는 평소에 ‘온갖 소리가 부처님의 소리이며, 모든 색이 부처님의 색이다’라고 하였다. 온누리 그대로가 법신인데도 부질없이 부처니 법이니 중도니 하는 견해를 지었으나 지금에는 주장자를 보면 주장자라 하고 집을 보면 집이라 할 뿐이다.”
128.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해도 한다[作] 할 것이 없고 써도 쓴다[用] 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써도 쓴다 할 곳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주장자라고 부르겠느냐?”
129.
“온갖 뼈는 다 썩어지지만 어떤 것 하나만은 영원히 신령하다” 한 단하(丹霞)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주장자도 신령하지 않다 하지 못하리니 무엇을 온갖 뼈라 부르겠으며, 어디서 그것을 찾겠느냐?”
130.
“현성(賢聖)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無爲法]을 바탕으로 하기에 차별이 있다” 한 말씀을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주장자도 무위법이 아니며, 그 어느 것도 무위법이 아니다.”
131.
“축시(丑時 : 새벽 1시 ~ 3시)에 닭이 우니 한덩이 두렷한 빛이 벌써 밝았다” 한 지공(誌公)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뒷통수[腦後]는 묻지 않겠다. 3천리 밖에서 한마디 가져와 보라.